
인조의 첫째 아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 8년 동안 볼모로 잡혀갔다가 1645년 2월 귀국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귀국한 지 석달 뒤에 죽었다. 인조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은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이었다. 이가 곧 효종이다. 효종은 10년 왕위에 있다가 1659년(기해년)에 사망했다. 왕이 죽으면 장례를 치르고 새 왕이 즉위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엉뚱한 시비가 일어났다.
당시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가 살아 있었다. 계모이기는 하지만, 효종에게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일정 기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데, 그 기간을 만 2년으로 할 것인가 1년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년은 남인의, 1년은 서인의 주장이었다. 2년을 입는다면 효종을 맏아들로 보는 것이고 1년을 입는다면 둘째 아들로 보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격렬한 논쟁 결과 서인이 이겼다. 남인은 정계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1674년에는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죽었다. 인선왕후는 장렬왕후의 며느리다. 며느리의 상에 시어머니인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는 기간을 두고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1년일 수도 있었고, 9개월일 수도 있었다. 효종을 인조의 맏아들로 본다면 1년이었고, 둘째 아들로 본다면 9개월이었다. 1년은 남인이, 9개월은 서인이 주장했다. 효종의 아들 현종은 남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왕이었던 아버지가 둘째 아들로 여겨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남인은 서인을 밀어내고 권력의 핵심부를 차지했다.
이상은 이른바 1차 예송(기해예송)과 2차 예송(갑인예송)의 간략한 줄거리다. 당시 논쟁은 복잡했지만, 내용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당시는 물론 지금 학계에서도 두차례 예송을 중요한 사건으로 여기고, 또 사뭇 복잡하고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예송은 당시 지배계급들만의 문제였던 것이 아닌가? 현대의 연구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닌가. 예송이 일어났던 17세기 후반 대부분 농민이었던 백성의 입장에 서 보자. 허구한 날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고, 곡식을 거두는 농부들에게 왕의 어머니가, 왕비의 시어머니가 상복을 2년을 입건, 1년을 입건, 9개월을 입건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었을까? 1차 예송과 2차 예송 사이에 경신대기근(1670~1671년)이 있었다. 사망자는 140만명 안팎이었다. 굶어 죽는 백성들은 조정에서 그런 시비가 벌어지고 있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1674년 숙종 즉위 이후 남인은 권력을 단단히 잡았다. 1680년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許積)이 할아버지 허잠(許潛)의 시호(諡號)를 받는 것을 기념하는 잔치를 열었다. 허적은 왕실에서 사용하는, 기름칠한 천막을 왕의 허락 없이 가져가 사용했다. 분노한 숙종은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른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다. 다시 권력을 잡은 서인은 얼마나 오래갔을까? 9년 뒤 숙종은 장희빈의 아들(뒤의 경종)을 원자(元子)로 삼았다. 반대하는 서인을 축출하고 다시 남인을 불러들였다. 이것이 기사환국이다. 그러면 남인은 얼마나 갔을까? 5년 뒤인 1694년 숙종은 폐비 민씨를 다시 정비(正妃)로 복귀시키면서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을 불러들였다. 곧 갑술환국이다.
갑술환국 직후인 1695~1696년에 을병대기근이 일어났다. 경신대기근 때와 비슷하게 인구가 140여만명 줄어들었다. 두차례 대기근은 예외적으로 규모가 큰 것이기는 했다. 다만 이 시기 기근은 흔하디흔한 것이었다. 17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 동안 비교적 규모가 큰 기근이 52회에 걸쳐 일어났다. 영양상태가 부실해진 사람들은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쉽게 전염병에 걸렸다. 17, 18세기에는 평균 2년에 한번 이상 발진티푸스, 천연두와 홍역, 장티푸스, 이질 등 여러 전염병이 동시에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왕의 어머니가 상복을 입는 기간과 누가 원자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왕과 지배계급에게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배계급의 당파들이 평소 가뭄과 흉작에 대비하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면, 그 ‘당쟁’은 의미 있는 것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당쟁의 결과 서인이 집권하건, 남인이 집권하건, 노론과 소론이 집권하건 그것은 백성의 고통 해결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만이 정승과 판서가 되고, 대제학과 대사헌이 되어 권세를 누렸을 뿐이다. 이들이 달달 외고 있던 ‘논어’에는 정치를 하려면, 재물을 절약해서 쓰고 백성을 사랑하라고 했고, 백성을 먼저 부유하게 만들고 그다음에 가르치라고 했지만, 그건 책에만 있는 이야기였을 뿐이다.
신문,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이름과 얼굴을 익숙하게 알게 된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이 있다. 뉴스로 전해지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그들이 만들고 싶은 새로운 세상이 어떤 것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이 범민(凡民)의 복리(福利)를 위한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지, 또 그것의 실현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하고 있는지 모른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의 정치 뉴스가 전하는 것은 오직 허접한 드라마 같은 정쟁(政爭)일 뿐이다. 2026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을 정치라고 부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당쟁’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말 해봐야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지만, 제발 당쟁이 아닌 정치를 하시라.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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