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리랑카는 인도 동남쪽에 있는 대한민국 3분의 2 크기의 섬나라다. 인도 남단에서 조금 떨어진 물방울 모양의 지형 탓에 ‘인도의 눈물’로도 불린다. 스리랑카는 고대부터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의 여러 왕국과 인적 교류가 활발했다. 해상 루트 외에 ‘아담의 다리’(Adam’s Bridge)라는 육로로 15세기까지 인도에 연결돼 있었다. 양국은 인종·문화적 유사점이 많은데, 남아시아를 찾는 여행자들은 스리랑카가 인도와 비슷하면서도 한층 차분한 분위기를 지닌 여행지로 평가한다.
스리랑카의 차분한 분위기는 종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각기 전통을 이어온 인도와 달리, 스리랑카는 불교 전통을 깊이 계승·발전시켜온 상좌부(소승)불교의 종주국이다. 이는 사회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대륙의 인도인이 낙천적이고 역동적이며 협상과 흥정에 능한 반면, 섬나라 스리랑카인은 차분하고 섬세하며 무리 없는 타협을 선호한다. 인도의 국화(國花)인 연꽃은 수면 위로 한껏 꽃을 띄워 뽐내지만, 스리랑카의 국화인 수련(睡蓮)은 수면 위에 낮게 피고 밤이 되면 꽃잎을 오므린다. 이는 양국의 서로 다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대비이다.
두 나라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듯, 양국의 인지도와 경제력 측면에서도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인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6위에 인구 14억 명의 거대 시장을 보유한 정보기술(IT) 강국이다. 인도의 63분의 1 수준인 2200만 명 인구에 노동집약 산업과 원자재에 주로 의존하는 스리랑카의 경제를 인도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인도는 1991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 6~7%의 고성장을 이어왔지만 스리랑카는 정치·경제적 상흔에 아직 시달리고 있다.
구제금융 ‘17전 18기’
인도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와 북반구 저위도의 개발도상국들)는 우리 수출기업의 유망한 진출 대상으로 자주 지목된다. 반면 스리랑카는 글로벌 사우스의 일원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도 앞에 나온 차이점의 영향이 크다. 기업들이 관심을 덜 돌리는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스리랑카가 국가부도 이후 현재까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제하에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스리랑카의 2022년 국가부도 사태는 일련의 악재가 장기간에 누적된 결과였다. 1983년 민족 갈등으로 발발한 스리랑카 내전은 26년간 스리랑카 경제를 약화했다. 외채를 동원한 군사비 조달로 재정이 악화되고, 불안정한 국내 정세로 관광업이 위축됐다. 2009년 종전 이후 6~8%에 이르는 큰 폭의 경제 반등을 보였지만, 2019년 부활절 연쇄 테러 사건과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국가 간 봉쇄로 관광업이 다시 타격을 입었다. 경제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2022년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과 감세정책 등으로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서 국가부도 상황으로 이어졌다.
스리랑카는 2023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약 3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있다. IMF 권고 사항에 따라 부가세를 인상하는 등 조세제도를 개편하고, 유류세 등 에너지 보조금을 삭감하며, 스리랑카전력청·스리랑카항공 등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고통스러운 긴축재정을 감내하고 있다. 우리 기억 속에도 존재하는 고달픈 IMF 시절을 겪고 있지만, 현 상황이 스리랑카에 낯설지는 않다. 이번이 17번째이기 때문이다.
1965년부터 시작된 스리랑카의 IMF 구제금융은 각기 촉발 원인은 달랐지만, 만성적 무역적자와 취약한 산업구조라는 구조적 문제가 항상 바탕에 있었다. 16번째까지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반복적으로 개선 대책을 요구받았지만, 근본적 조치 없이 위기를 넘겼다. 현재 17번째 IMF의 개선 요구 조건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며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한다. 이는 스리랑카에 고통스러운 과제인 동시에, 고질적인 무역·산업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정부는 IMF의 요구 조건을 성실하게 이행 중이다. 이행 여부를 점검해 순차적으로 분할 지급되는 구제금융을 현재 7번째까지 수령했으며, 현재까지 지원액은 24억달러에 달한다. 외환보유고는 2026년 4월 기준으로 67억달러까지 상승하며 부도 사태 당시 18억달러 수준보다 3배 이상 늘었다. 향후 극복해야 할 난관이 많겠지만, 이를 통해 그간 미뤄왔던 구조개혁까지 성취한다면 IMF와의 인연을 ‘17전 18기’로 매듭지을 수 있을 것이다.
스리랑카를 부르는 또 다른 별칭인 ‘인도양의 진주’는 온화한 기후, 수려한 자연경관, 풍부한 보석 매장량과 잘 어울린다. 이 명칭은 13세기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 스리랑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기록한 데서 유래했다. 이 명칭은 꼭 시각적 아름다움만을 뜻하지 않는다. 동서양 해상무역의 주요 기항지 역할을 해온 스리랑카의 지정학적 가치와 정통 불교문화가 빚어낸 사회적·인적 우수성을 아우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지정학적 요충지
스리랑카는 동서양을 잇는 주요 항로와 불과 몇 해리 떨어지지 않은 요충지에 있다. 세계 천연 항구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와 수심을 자랑하는 트링코말리 등 대형 항구들을 보유해 예로부터 전략적 가치가 컸다. 15세기 명나라 정화의 원정대가 해상 실크로드의 무역 통제권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곳을 찾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의 서진을 막기 위한 연합군 최후의 보루로 활용됐다.

현대에도 스리랑카는 항구들을 통해 지정학적 장점을 살리고 있다. 수도와 인접한 콜롬보항은 연간 80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 이상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남아시아 최대의 물류 허브다. 수심이 깊어 대형 컨테이너선이 정박할 수 있고, 인도로 들어가는 해상 화물의 40~45%가 콜롬보항을 거친다. 스리랑카 남부에 있는 함반토타 항구도 큰 성장세를 보인다. 2025년 약 400만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했는데, 전년 대비 8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항구를 통한 물류 흐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리랑카는 이웃 남아시아 국가들의 거대 시장으로 진출하는 관문으로서 활용도가 크다. 스리랑카는 인도와 2000년에, 파키스탄과 2005년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인도 및 파키스탄과 양자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스리랑카에서 제조하거나 스리랑카를 원산지로 하는 제품을 양 지역으로 수출하는 경우 동시에 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스리랑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타밀족과 그들의 기원지인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사이에 언어·문화 장벽이 낮다는 점도 양국 교류에 장점으로 작용한다.
스리랑카의 사회적 안정성과 우수한 인적 자원도 큰 자산이다. 융합과 조화를 중시하는 불교 교리의 영향으로 스리랑카는 세계평화지수(GPI)에서 부탄에 이어 남아시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꼽힌다. 성인 문해율은 93~97%이고, 영어를 구사하는 인구 비율도 약 20%로 남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평균 기대수명이 78살로 몰디브에 이어 남아시아 2위인 점도 돋보인다.
최근 스리랑카 경제는 양호한 반등을 보인다. 구제금융이 시작된 2023년 마이너스 성장이던 경제가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연이어 5%대 성장세를 보였고, 최근 발표된 2026년 1분기 성장률도 5.1%를 기록했다. 최근의 경제성장은 2025년 말 발생한 사이클론 피해, 중동전쟁으로 인한 유가 급등과 환율 하락 등 악재 속에 이뤄진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2024년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남아시아 최초로 5천달러를 넘어서면서 ‘상위 중소득국’(Upper-Middle Income Country)에 진입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경제구조 개선 주력
스리랑카 정부는 경제 전반의 구조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가 수출 개발계획’(NEDP)을 보면 현재 주력 산업인 의류·차(茶) 중심에서 벗어나 자동차부품·광물·해양 등 8대 유망 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2030년까지 수출액을 현재의 2배인 360억달러까지 늘린다는 야심 찬 산업 재편 계획을 담고 있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유지해온 일부 품목의 수입금지 조치도 현재는 모두 해제했다. 스리랑카의 연간 수입액은 2024년 222억달러를 기록해 국가부도 직전 연도인 2021년 215억달러를 넘어섰다.
스리랑카는 아직 회복 과제가 남아 있지만 글로벌 사우스를 주목하는 우리 기업들이 놓쳐서는 안 될 매력을 지닌 지역이다. 스리랑카 정부는 자국 경제 회복과 활성화를 위해 2027년 1월14~17일 콜롬보에서 종합 무역전시회인 ‘스리랑카 엑스포’(Sri Lanka EXPO)를 개최한다. 스리랑카 무역에 종사하는 현지 핵심 기업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이니, 남아시아 지역 진출에 관심을 둔 우리 기업이라면 잠재력을 직접 확인해보길 추천한다.
이경석 KOTRA 콜롬보무역관장 kris@kotra.or.kr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6개국에 132개의 국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국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국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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