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지난 1월3일 미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위치한 안전가옥을 급습,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하여 미국으로 강제 이송한 사건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작전명 ‘확고한 결의’(Firm Resolve)로 알려진 이 사건은 불과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전광석화 같은 것이었다. 마두로 정권은 2013년 우고 차베스 사망 이후 집권하여 13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해왔다. 미국 법무부는 그를 마약 테러 혐의로 기소하며 1500만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있었다. 그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남미 지역 내 반미 연대를 끊어내고 석유 자원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고 여겨진다. 마두로의 체포는 단순한 범죄자 검거를 넘어, 남미 지정학적 질서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신호탄일지 모른다.
이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침공으로부터 주권국을 보호하는 국제법 원칙을 어겼다는 점이다. 미국은 아무런 사전 통고나 관련 국제법상의 적법절차 없이 다른 나라의 국가 원수를 납치했다. 한 국가 내에서 사법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의적으로 타인을 체포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은 정당방위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지된다. 이번의 경우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영토에 허락 없이 들어가 그 나라의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해당국의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납치해 온 것이므로 위법성의 정도가 심하다. 그런데 당사국인 베네수엘라는 미국을 비난만 할 뿐 특별한 대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미 전역을 방어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인 이른바 ‘골든 돔’ 구상 실현을 위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하여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도 있다.
비록 우리나라 밖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번 미국의 초국제법적 행위는 분쟁 지역에서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국제법 질서에서 그 예를 찾기 쉽지 않다.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해야 할 법치주의는 냉엄한 국제 사회의 이해관계에서 한낱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번 납치 때 사용된 군사력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등 최첨단 기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마두로 대통령을 경비하는 베네수엘라 군은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였지만, 공격하는 미군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그 가공할 군사력이 장차 국가 간 또는 국지적 분쟁에 사용된다면 인류는 전쟁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지 모른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비단 전쟁 무기로서의 활용뿐만이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위험한 일을 사람보다 더 민첩하고 안전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 진보가 더욱 가속화되면 장차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하는 이른바 빅데이터 기업이나 국가에 의해 다른 나라 또는 국민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더 커질지 모른다.
인공지능의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현실적인 문제로 일자리 감소를 걱정한다. 지난 1월22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달 초 세계 최대 정보기술 전시회에서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겨냥한 것으로, 향후 생산 현장에서 로봇 투입이 본격화하면 노조와 갈등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방송(KBS)이 국내 주요 기업 110곳(3227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근로자 1천명 이상 사업장의 75.5%가 휴머노이드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26.4%가 실제로 활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도입의 긍정적인 효과로 생산성 향상(96.4%), 인건비 절감과 제품·서비스 품질 개선(각각 84.5%), 작업자 안전과 건강(73.6%) 등을 꼽았다. 반면 근로자들의 59%는 일자리 상실과 인공지능의 통제 불가능성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는 답변이 62.9%에 달했다.
새해 들어 점차 대두되는 이런 어려운 과제들을 사회 통합과 ‘집단지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는 집단지성을 일컬어 오늘날 기업, 학교, 대학,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지식의 나무’라고 설명하면서, 집단지성에 대해 “그것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이라고 정의한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는 지난 1월20일 한국행정연구원과 공동으로 수행한 ‘5대 사회갈등 주요 이슈 및 데이터 분석 연구’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전국 12개 주요 일간지에 보도된 사회갈등 관련 기사 1만415건을 분석해, 최종 6725건을 정치·이념, 양극화, 세대, 지역, 젠더 등 5대 갈등 유형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정치·이념 갈등이 전체의 49.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양극화 갈등이 28.8%로 뒤를 이었다. 두 갈등 유형이 전체의 78.5%를 차지하면서, 한국 사회 갈등이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두 축으로 압축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월21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내란 방조죄 선고에서 12·3 비상계엄을 형법상 내란으로 인정하고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이 선고는 법원이 12·3 내란에 대해 처음으로 사법적 판단을 한 것이다. 이는 비상계엄으로 잠시 흔들렸던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 나가기 위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법치주의는 12·3 내란 후 국민의 용기에 바탕한 저항과 국회의 신속한 비상계엄 해제 의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비상계엄과 관련한 특검의 설치와 그에 따른 사법 절차 등을 통해 점차 회복해 가는 중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아 온 검찰도 공소청 설치와 검사의 직무에서 수사를 분리하는 등 권한 남용 방지를 위한 입법적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들 노력의 결실 여하에 따라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가 제자리를 잡아 가느냐가 가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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