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 개발로 쪽방촌 사람들이 주거 안정을 이루는 것을 보고 나가려고 했는데요.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개발을 약속한 지 5년이 넘어도 아직 지구 지정조차 안 되었으니 건강도 좋지 않아 영 못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올해 79살인 조문호 사진가는 꼭 10년 전 봄날,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에 월 23만원 달방을 얻었다. 지난 10년 그는 쪽방집 4층 방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그들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그는 한두달에 하는 공공개발 촉구 연대집회에 참석해 현장 사진과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다.
요즈음 숨 쉬기도 불편하고 오래 걷기도 힘든 그가 동자동에 계속 머무는 것은 쪽방촌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려고다. 하지만 작업 목표는 ‘탁월한 사진’이 아니라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진기도, 찍히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려고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카메라를 쓴다.
그가 1980년대에 서울 청량리 ‘성 노동자들’ 사진을 찍을 때도 1년 넘게 이 여성들과 교류하며 속을 터놓을 정도가 된 뒤 셔터를 눌렀다. ‘동강 백성들’(2001년), ‘두메산골 사람들’(2004년) 사진전 역시 그가 앞서 오랜 기간 강원도 산골에서 농민들과 생활한 뒤 나온 결과물이다.
지난 18일 동자동 쪽방에서 조 작가를 만났다.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그 사람(피사체)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죠. 그렇게 해야 (사진이) 사람의 삶이나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
그의 이런 사진 철학은 자신을 사진으로 이끈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최민식 작가(1928~2013)를 1978년 처음 만났을 무렵부터 싹텄단다. 당시 조 작가는 부산에서 직원이 다섯이나 되는 국악주점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단골인 최 작가의 사진집 ‘휴먼 1집’을 보고 바로 사진을 해야겠다고 맘먹었단다. “본래 사람을 좋아해 맨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곤 했던” 음악 마니아 조문호의 마음속으로 최민식의 사람 사진이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스승과는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최 선생님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니 상대방(피사체)과 교류 없이 스냅으로(연출 없이 빠르고 즉흥적으로) 찍어요. 사실 최 선생님이 스냅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이 빈민들의 삶에 기여한 바 크지만, 그때는 어떻게 찍고 바로 (피사체를) 지나칠 수 있는지, 그런 작업이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었죠. 나중에 사진을 공부해보니 다큐 사진이라는 게 결국 다 사람의 삶을 개선할 목적이더군요. 로버트 프랭크(1924~2019) 등 다큐 사진 대가들이 다 그렇게 사진을 찍었어요.”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사업 첫 단계인 지구 지정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공공개발 약속이 더 많은 이익을 바라며 민간 개발을 선호하는 토지 소유주 목소리에 밀려 6년째 허언에 그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초 이재명 대통령에게 동자동 공공개발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을 주문하는 편지를 부쳤다. 부동산 문제 해결 의지를 드러내는 이 대통령을 보고, “동자동 공공개발을 (부동산 문제 해결의) 불쏘시개로 삼아 강력하게 추진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십년 동안 4층 쪽방에만 살았는데, 여름이면 옥상의 열기로 도저히 버티기 어렵습니다. 옆방에 살던 연영철씨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죽었고, 맞은편 방에 살던 박종근씨는 더위에 시달리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 나갔습니다. 이번 겨울에도 동자동에서 여섯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편지 내용 중 일부다. “아직 답이 안 왔어요.”
그는 이 편지에서 서울시가 3년 전부터 시행하는 ‘동행식당 카드’ 제도의 확대 시행도 제안했다. 쪽방촌 주민이 9천원 한도에서 하루 한끼를 주변 식당에서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쪽방 사람들이 갈수록 방에만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아요. 1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카드가 나온 뒤에는 하루 한번은 나옵니다. 그날 쓰지 않으면 혜택이 사라지거든요. 그렇게라도 몸을 움직이니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10년 전 약 1200명이던 동자동 쪽방 주민이 지금은 약 800명이다. “다 죽어 나갔어요. 여기 들어오면 수명이 짧아요. 오래 못 삽니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정부가 공공개발을 약속한 뒤로도 154명이 죽었죠.”
쪽방 빈민들의 삶 개선할 의도로
2016년 봄부터 동자동 달방살이
블로그 열어 사진으로 이웃들 기록
공공개발 촉구 현장 목소리도 전해
이재명 대통령에게 최근 편지 보내
“공공개발 강력 추진해달라” 요청
‘제2 고향’ 인사동 알리는 데도 열정
지난 10년 쪽방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역시 ‘죽음’이다. “내가 사는 4층 오르는 계단에 손잡이가 없어요. 술 한잔이라도 먹으면 오르다 주저앉기 일쑤입니다. 옆방 연씨도 그렇게 죽었어요.”


그는 지난 2~3년 쪽방 사람들 초상 사진도 100여장 찍었다. 2년 전에는 인근 공원에서 초상 사진 전시를 하고 당사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반빈곤 사회단체인 홈리스 행동 등에서 매년 동짓날 홈리스 추모제를 합니다. 한해 홈리스 300명 정도가 죽어요. 그런데 행사에 홈리스 사진이 없어요. 사람이 죽은 뒤 적어도 자기 얼굴은 남겨야 할 것 아닌가 생각해 찍기 시작했죠.” 하지만 지금은 초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 “사진을 주고 나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어요. 보관이 제대로 안 됩니다. 동사무소에 있는 주민등록 사진 파일이라도 추모제 때 출력해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어요.”
“사진은 기록”이라는 그의 블로그에는 동자동 쪽방촌 관련 게시글이 400건 이상이다. 대부분 여러 장의 사람 사진이 담겼다.
동자동 사진으로 어떤 기록을 남기고 싶냐고 하자 그는 “여기 사람들 편하게 살면 그만이다”고 답했다. 사진가는 좋은 사진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앞서지 않냐고 하자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내가 죽은 뒤 사람들이 평가할 일”이란다. 이런 말도 했다. “이젠 동자동 생활이 익숙해졌어요. 다른 곳보다 편해요. 나이 때문에 다른 사진 작업을 새로 할 수도 없어요.”
그가 동자동에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쪽방촌 이웃의 궂긴 소식을 바로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주민조합이나 쪽방상담소에서 사람이 죽거나 중요한 일이 생기면 문자메시지라도 좀 보내주면 좋을 텐데 잘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아는 분이 죽어도 장례를 지켜보지 못할 때가 많아요.”
사진을 하려고 1980년 부산에서 서울로 온 조 작가는 열성적인 인사동 기록자이기도 하다. 인사동 주요 전시와 사람들 활동을 생생하게 전하는 그의 글을 블로그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다. 역시 소형 카메라로 민첩하게 찍은 사진들과 함께. 그는 앞서 눈빛 출판사에서 천상병 추모 사진집과 인사동 사람들 사진집도 냈다.
“인사동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 찍습니다. 술을 먹으면서도요. 죽은 사람을 추모할 게 사진밖에 더 있나요? 인사동 사람들이 죽으면 내가 찍은 사진을 찾아서 블로그에 올리죠. 사진이 필요해 달라고 해도 언제든 줍니다.”
그는 최근에도 작고한 시인 김신용과 광부 화가 황재형을 추모하는 글과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인사동에서 자주 어울렸던 친우들이다. 서울살이 초기부터 김신용 시인 등 고향 사람들과 자주 만난 곳이 바로 인사동 ‘실비집’이다.
“인사동은 제2의 고향이죠.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인사동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요. 인사동에 오면 누구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죠.”
인사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천상병(1930~93) 시인이다. “천 선생은 가식이 없어요. 표정이나 이야기를 해보면 알 수 있죠. 시를 잘 쓰고 사람이 재밌고 술을 좋아해 정신병원에도 들어갔던 적음 스님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는 4년 전부터 주말은 충남 아산의 작업실에서 지낸다. 블로그에서 그의 작업을 눈여겨보던 한 젊은 농업인이 마련해주었단다. “나보다 더 내 사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죽은 뒤 남은 사진 처리도 그에게 맡기려고 합니다.”
그는 음악실을 할 때 돈을 제법 벌었고 앞서 농협에도 5년 다녔지만 평생 저금이란 것을 해본 일이 없단다. 지금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용 통장 하나가 있다. “나는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거지였어요. 지금은 매달 정부에서 돈을 주니 오히려 형편이 나아요. 하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왜 사진을 찍느냐고 하자 답은 “남는 건은 사진밖에 없잖아요”이다.
사진을 만난 게 잘 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받았다. “사진을 안 만났으면 이렇게 거지가 안 되었을 텐데 생각할 때도 있지만, 사진 안 하고 돈을 벌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진을 잘 했다 싶어요. 돈 벌면 대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하기 마련이거든요. 인사동에서도 돈을 버는 과정에서 사람을 속이거나 그런 안 좋은 일을 한 사람을 많이 봅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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