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 기자
한승동 기자
광고

“점령이란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고 박탈당하는 걸 말한다. 그들의 재산이 파괴당하고 그들의 혼이 파괴당하는 일이다. 점령이 노리는 핵심은 (…) 자신의 존재를 결정할 권리, 자신의 집에서 일상생활을 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의 인간성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점령이란 치욕이며 절망이다.”(사라 로이 <홀로코스트와 더불어 살아간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에 관한 일본 내 논란은, 일본 지배세력 대다수가 아직도 인간성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와 인간(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250만부 이상)는 15권짜리 연작 <로마인 이야기>의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77)가 보수우파 성향의 일본 대표 월간지 <문예춘추>(2014년 10월호)에 이런 글을 썼다.

광고

“사람은 부끄럽거나 나쁜 짓을 했다고 느낄 경우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얘기를) 되풀이하다 보면 자신도 그걸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증언을 두고 쓴 이 글은, 한마디로 할머니들 얘기는 나쁜 짓을 한 자가 자기합리화를 위해 저지른 일종의 자기기만, 심리적 방어기제가 만들어낸 허구(거짓말)일 뿐 사실이 아니란 얘기다. <문예춘추>의 권두언 ‘일본인에게’를 연재해 온 시오노가 10월호 글 ‘아사히신문의 고백을 넘어서’에서 한 얘기다. ‘아사히신문의 고백’은, 일제 때 부하 9명과 함께 제주도에서 200여 명의 어린 여자를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갔다는 내용을 담은 <나의 전쟁범죄> 지은이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1980년대부터 자세히 보도한 아사히가, 30여년이 지난 올해 8월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다며 철회한 걸 가리킨다.

광고
광고

당사자 요시다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지금, 아사히는 나중에 자신의 얘기에 ‘허구적 요소가 있었다’고 한 그의 증언 전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죄까지 했다. 이는 위안부 강제동원이 날조라고 주장해 온 아베 총리 등 일본 우파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마고사키 우케루 전 일본 외무성 국제정보국장은 최근 ‘국경없는 기자단’이 발표한 ‘2014년 세계의 보도 자유’ 순위에서 일본이 한국(57위)보다 못한 59위를 차지했다면서 아베 정권의 노골적인 언론통제를 비판했는데, 아사히의 고백이 이런 일본 내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광고

시오노는 아사히 관계자들과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 발표에 관여한 자민당 정치인들을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하라고 했다. 특히 미국 내 여론 동향에 신경을 쓴 시오노는 네덜란드 여성들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 얘기가 퍼지면 일본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며 정부에게 재조사하라고 촉구했다. 마치 거짓말에 놀아나 억울하다는 듯이.

시오노 안중에 피해 당사자는 없는 듯하다. 그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구미인들의 시선이다. 그에겐 군대 내 ‘위안소’ 설치와 재산과 자존을 파괴당한 피식민지 어린 여성 모집 자체가 강제를 예비한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없다. 식민지배 자체가 강제요 박탈이며 치욕이자 절망이라는 사라 로이의 인식은 그에겐 너무 먼 걸까.

거짓말도 되풀이하다 보면 사실이라 믿게 된다는, 나치 선전상 괴벨스를 떠올리게 하는 시오노의 얘기는 “강제연행은 없었어!”만 계속 되뇌는 그와 일본인 자신들에게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