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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1년 만의 한국 국빈방문과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관계를 전면적으로 복원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대통령실은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1일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회담을 하면서 민생·경제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비핵화’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해선 중국이 명확한 호응을 하지 않았다.

한중 FTA 2단계 진전 속도 내기로

이날 한중 정상의 100분간의 정상회담과 70분간의 만찬이 끝난 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한중 관계 발전에 부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내·외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국권 피탈 시기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왔던 한중 공동의 역사적인 경험과 양국 모두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호혜적인 협력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또 “11년 만에 이루어진 국빈 방한은 우리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 추진에서 한중관계 발전이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의 가장 구체적 성과들은 ‘민생’ 분야에서 나왔다. 위 실장은 “이번 회담에서는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양국 국민의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한중관계 발전의 방향 설정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인 서비스·투자 분야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 협의에 속도를 내기로 했고,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한 협의 채널을 다양화하면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회담이 끝난 뒤에는 2009년부터 계속돼 온 한중 통화 스와프 계약 연장, 초국경 사기 범죄 공동대응, 2026~2030 경제협력 공동계획 등 7건의 양해각서(MOU)에도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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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이날 회담 전 기자회견에서 한중관계에 대해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돼 있거나 회복돼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라고 평가했는데, 우선 민생과 경제 분야에서 양국 국민이 구체적 이익을 체감할 수 있는 협력을 진전시켜 한중관계를 개선해 가겠다는 실용외교의 로드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 입장 확인에 그친 한반도 문제

하지만, 이 대통령이 회담을 앞두고 계속 강조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와 관련한 대화는 원론적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위 실장은 “이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비핵화 및 평화 실현 구상을 소개하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한 데 대해서 시 주석도 한반도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다만 “북한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의사와 희망도 논의됐고,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협력할 용의를 표시했지만 구체적으로 대화를 재개하는 게 논의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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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을 시작하면서 시 주석을 향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한국과 중국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는데도 중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며 “한반도가 안정돼야 동북아도 안정되고, 그것이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할 것이다. 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END(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 구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시 주석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위 실장은 “양측은 미북 대화가 제일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고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면서도 “다만 구체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는 데 있어 중국이 어떤 역할을 할지가 논의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중, ‘비핵화 논의’ 북한 반발 의식했나

이 대통령의 거듭된 제안에도 시 주석이 끝내 유보적 입장을 보인 배경에는 ‘핵보유국’을 주장하는 북한의 반발이 있다. 북한은 이날 공개한 박명호 외무성 부상 담화에서 한국이 중국과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것은 “개꿈”이라고 거세게 반발하며 견제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완충지대이자 ‘반미 전선’의 주요국인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의식하는 중국으로서는 한국과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는 데 대한 북한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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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한화오션 제재, 서해 구조물, 한한령 등 민감하고 껄끄러운 사안들에 대해서도 서로 입장을 밝히고 논의했다.

위 실장은 한화오션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었다면서, “이 문제는 미중 간 무역 분쟁과도 연관돼 있고 미중 사이의 문제가 풀려 가면, 그런 분위기 속에 한화오션 자회사 제재 문제 역시 생산적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중국 정부는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의 핵심 기업인 한화오션의 자회사 5곳을 제재 명단에 올린 바 있는데, 일각에서는 중국 측의 제재 완화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열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핵추진 잠수함’ 물음에…“여러 현안 논의”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수역에 설치한 철제 구조물 문제와 중국이 2016년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지속해온 ‘한한령(한류 제한령)’에 대해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다뤄졌다. 위 실장은 “해당 사안들에 대해 좋은 논의가 있었다”며 “실무 협의를 통해 서로 소통하며 문제를 풀어보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한한령이 해제될 국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위 실장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은 여러 현안에 걸쳐 많은 의견을 교환했다. 이는 서로 정치적 신뢰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며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안보 이슈가 다뤄졌다고만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위 실장이 해당 사안에 관한 논의 수준이나 중국 쪽 입장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안보 이슈 차원에서 대화가 오갔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다’고 밝히자 중국 외교부는 ‘한미가 핵비확산 원칙과 지역 안정을 지키라’고 요구했지만, 이날 정상회담 뒤 중국 측 발표문에도 이 사안은 언급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 정부 모두 이번에 관계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이 문제가 11년만의 시진핑 국빈방문을 뒤흔드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진전이 되는 상황을 보면서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경주/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