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 프로야구 시즌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은 신생 구단 엔씨(NC) 다이노스의 정규리그 합류로 어느 해보다 신인급 선수의 활약이 도드라졌는데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두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엔씨의 투수 이재학과 두산 베어스의 투수 유희관이 그들입니다. 모든 프로야구 선수가 꿈꾸는 신인왕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재학과 유희관의 닮은 점, 다른 점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신인왕이 첫사랑 같은 존재라면, 엠브이피(MVP·최우수선수) 수상은 결혼과 같다.”

프로야구 첫 2000안타의 주인공 양준혁 <에스비에스>(SBS) 해설위원은 “당신이 현역 선수라면 신인왕과 엠브이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탐나겠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기자를 보며 양 위원은 빙그레 웃고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광고

“신인왕은 생애 딱 한번만 탈 수 있는 상이다. 프로 2년차 때 제아무리 타율 4할을 쳐도 수상하지 못한다. 신인왕 자격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 첫사랑도 인생에 딱 한번뿐이지 않나. 반면 엠브이피는 성적만 받쳐준다면 언제든 수상 가능하다. 혼기를 놓쳐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결혼에 골인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양 위원은 1993년 상무를 제대하고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 데뷔 첫 시즌을 치렀다. 그해 106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4푼1리, 23홈런, 90타점을 기록하며 ‘괴물’이란 소리를 들었다. 프로에 데뷔하며 생애 단 한번뿐인 신인왕 수상을 노렸던 양 위원은 내심 자신의 수상을 기대했다. 그의 신인왕 경쟁 상대는 바로 ‘야구 천재’ 이종범(해태 타이거즈)이었다. 같은 해 이종범은 126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8푼, 16홈런, 53타점, 73도루를 기록했다. 우여곡절 끝에 ‘괴물’이 ‘천재’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신인왕이 됐던 1993년을, 야구계는 지금도 ‘가장 치열했던 신인왕 경쟁 시즌’으로 기억한다.

광고
광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이번 시즌, 양 위원은 “올해 신인왕 경쟁도 1993년 못지않게 치열하다. 유희관(두산 베어스), 이재학(NC 다이노스) 두 투수가 펼치는 신인왕 경쟁은 나와 이종범의 대결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광고
2008년 이후 ‘중고 신인’ 타자들의 시대로

신인왕 시상이 시작된 것은 1983년이었다. 1982년은 프로야구 출범 원년이라 모든 선수가 신인이었다. 따라서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이듬해부터 시행한 것이다.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배출한 신인왕은 총 30명이다. 놀랍게도(?) 타자와 투수가 15번씩 신인왕을 차지했다. 정규 시즌 엠브이피를 선정할 때, 경기에 매일 출전하는 타자가 투수보다 유리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신인왕 싸움에서는 포지션에 따른 유불리가 따로 없었던 셈이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는 타자와 투수가 번갈아가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올해 신인왕이 타자면 다음해 신인왕은 투수’인 식이었다. 실제로 1983년 초대 신인왕에 오른 오비(OB) 베어스(두산 베어스의 전신) 박종훈은 외야수였고, 1984년 신인왕은 투수 윤석환(OB)이었다. 1985년엔 다시 외야수 이순철(해태)이 수상했고, 1986년 신인왕은 엠비시(MBC)청룡 투수 김건우의 차지였다. 이러한 수순은 1992년까지 이어졌다.

‘괴물’ 양준혁이 ‘천재’ 이종범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신인왕 된 1993년 이후 20년 만에 벌어진 두산 유희관과 NC 이재학의 가장 치열한 신인왕 경쟁   7승5패 평균자책 3.3 이재학이 7승4패 평균자책 3.4 유희관을 개인 성적에서는 앞섰지만 팀 성적 높은 유희관이 이재학보다 유리한 고지에

1990년대 중반의 신인왕 판도는 타자가 주도했다. 1993년 삼성 외야수 양준혁이 신인왕에 오른 뒤 1997년 엘지(LG) 트윈스 외야수 이병규까지 5년 연속 타자가 신인왕을 독식했다. 이용철 <케이비에스엔>(KBSN) 해설위원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대학 야구계를 호령하던 국가대표 출신 타자들이 프로 무대를 밟자마자 진가를 발휘했다. 가뜩이나 이 기간은 대표적인 ‘타고·투저’ 시절이라, 신인 투수보단 타자가 두각을 나타내기에 유리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2000년대 중반은 신인 투수의 전성시대였다. 2002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무리 투수v 조용준이 신인왕이 되고서 2003년 이동학(현대), 2004년 오재영(현대), 2005년 오승환(삼성), 2006년 류현진(한화 이글스), 2007년 임태훈(두산) 등 투수들이 6년 연속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손혁 <엠비시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설명이다.

광고

“과거 현대는 신인 투수를 적극 활용한 구단이었다. 당연히 현대에서는 이런 기회를 발판 삼아 존재감을 알린 투수가 많이 나왔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 신인 투수들이 신인왕을 3년 연속 수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기에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파동 이후, 많은 투수가 군에 가거나 구속되는 바람에 대부분의 팀이 투수 부족에 시달렸던 것도 신인 투수 득세에 유리했다. 구단들은 신인 투수들을 자주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신인 투수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2008년 이후에는 두산 투수 이용찬(2009년)을 제외하곤 타자들이 신인왕을 독식했다. 이즈음 달라진 신인왕 풍속도가 있다면 프로에 입단한 지 2년 이상의 ‘중고 신인’들이 신인왕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형우(삼성), 이용찬, 양의지(두산), 배영섭(삼성)은 프로에 입단한 지 2년 이상 지난 선수들로, 이용찬을 제외한 세 선수는 군 복무까지 마친 중고 신인들이었다.

2002년 신인왕에 올랐던 조용준 <엠비시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국내 프로야구 수준이 몰라보게 높아지며 프로와 아마추어 간 실력차가 크게 벌어졌다. 제아무리 국가대표 출신 선수라도, 프로에 입단해 곧바로 1군 주전 멤버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됐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구단들도 검증되지 않은 신인보다는 이미 2군이나 군에서 검증된 중고 신인들에게 1군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현재 프로야구는 최소 2, 3년간 2군 무대에서 단련되지 않으면 1군 요원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앞으로도 중고 신인이 신인왕을 독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 올 시즌 신인왕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유희관(두산)과 이재학(NC 다이노스)은 프로 입단 5년 이상의 중고 신인들이다.

‘포스트시즌 진출 프리미엄’은 통할 것인가

“나성범, 권희동(이상 NC) 등 눈에 띄는 타자도 있지만, 성적만 보자면 단연 이재학, 유희관 같은 투수들이 돋보인다. 올 시즌은 2009년 이용찬 이후 4년 만에 투수 출신 신인왕이 배출되지 않을까 본다.”

손혁 해설위원의 예상이다. 손 위원을 뺀 대다수 야구전문가도 같은 악보를 바라보는 성가대원들처럼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손 위원은 “개인 성적은 이재학, 팀 성적까지 고려하면 유희관이 앞서 있다”고 평했다. 사실이다. 올 시즌(8월28일 기준) 이재학은 21경기(선발 18경기)에 등판해 7승5패 평균자책 3.30을 기록중이다. 다승은 리그 공동 18위, 평균자책은 6위다. 세부 성적을 따지면 더 좋다. 올 시즌 이재학의 피안타율은 2할2푼9리, 피출루율은 3할2푼, 피장타율은 3할4푼5리다. 피안타율은 레다메스 리즈(엘지)에 이어 두번째로 낮고, 피출루율과 피장타율은 리그에서 각각 5, 6번째로 낮다. 한마디로 주자 출루를 최대한 막는 최상급 ‘짠물 투구’를 선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다 사이드암(팔을 어깨와 수평으로 한 뒤 옆으로 던지는 공) 투수임에도 탈삼진 능력이 뛰어나 9이닝당 8.21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리그에서 4번째로 높은 수치다. 전체적인 투구 지표를 살폈을 때 다승 부문을 제외하면 ‘리그 톱10’에 드는 수준급 투구를 펼치고 있다.

유희관의 개인성적도 이재학 못지않다. 올 시즌 유희관은 33경기(선발 14경기)에 등판해 7승4패 3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 3.40을 기록중이다. 다승은 이재학과 같고 평균자책은 불과 0.10이 떨어질 뿐이다. 물론 유희관의 등판 경기수가 이재학보다 12경기나 많다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실점 기회도 유희관이 잦았다는 뜻이다.

유희관의 피안타율과 피출루율, 피장타율은 각각 2할6푼1리, 3할3푼3리, 3할6푼5리로 이재학보단 다소 높다. 그러나 세 기록 모두 리그 15위권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이 역시 유희관이 선발과 불펜을 바쁘게 오갔다는 걸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개인 성적만 따지면 이재학이 조금이나마 신인왕에 가까이 다가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희관의 신인왕 수상을 예상하는 이들은 “역대 신인왕들은 팀 성적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한 두산 유희관이 하위권에 처져 있는 엔씨(NC)의 이재학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강조한다.

‘포스트시즌 진출 프리미엄’은 프로야구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기득권이다. 특히나 국내 프로야구에선 팀을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끈 공로를 필요 이상으로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선정이 대표적이다. 다승을 제외한 평균자책, 이닝 소화에서 브랜든 나이트(넥센 히어로즈)는 장원삼(삼성)보다 앞섰다. 하지만 골든글러브 선정권을 쥔 기자들과 야구관계자들은 장원삼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배경은 여러가지였으나, ‘장원삼이 삼성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며 표로 이어졌다. 이런 논리가 올해 신인왕 투표에서도 작동한다면 엔씨보다는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큰 두산 소속의 유희관이 이재학보단 확실히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학 구종 완성도 높인 NC 최일언 코치

이재학과 유희관은 성적뿐만 아니라 삶의 궤적도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먼저 이재학이다. 이재학은 대구고 시절 수준급 사이드암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프로 스카우터들은 이재학을 “빠른 공과 슬라이더가 일품인 고교 투수”라고 평하며 “프로에서 3, 4년 정도 단련하면 필승조 불펜투수로 성장할 재목”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두산이 이재학을 2009년 신인지명회의에서 2라운드 10순위로 지명한 것도 이러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당시 두산 사령탑이었던 김경문(NC) 감독은 “구단에서 고창성과 함께 불펜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사이드암을 스카우트한 것 같다. 가능한 한 1군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약속을 지켰다. 2010년 프로에 데뷔한 이재학을 그해 바로 1군으로 올렸다. 그리고 16경기에 등판하도록 배려했다. 결과는 1승1패 평균자책 5.01로 나쁘지 않았다. 물론 야구계는 23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 13개, 몸에 맞는 공을 6개나 기록했던 이재학의 좋지 않은 제구를 문제 삼으며 “1군 투수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부정적인 평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프로 데뷔 시즌치곤 투구 내용이 괜찮았다.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는 투수”라는 말로 이재학을 격려했다.

김 감독의 후원 속에 ‘붙박이 1군’을 꿈꿨던 이재학은 그러나 2011년 든든한 후원자를 잃는다. 그해 시즌 중 팀 성적 하락을 이유로 김 감독이 중도 사퇴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재학은 같은 해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재활에만 매달렸다. 그즈음 야구계엔 “이재학의 팔꿈치 부상 정도가 심하다. 재기가 불확실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재학은 “그래도 두산이 날 버리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일본 마무리캠프에서 열심히 재활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소문은 털로 만든 베개와 같아 한번 터지면 좀체 주워 담기 힘든 법이었다. 그해 말, 두산은 부상을 의식해 2차 드래프트에서 이재학을 ‘40인 보호선수’ 명단에서 뺐다. 결국 이재학은 신생 구단인 엔씨의 지명을 받아 프로 입단 2년 만에 친정팀을 떠나야 했다. 이재학은 “일본에서 두산 매니저로부터 ‘미안하다. 엔씨에서 널 선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2주간 시쳇말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이재학은 누군가 자기 몰래 인생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암흑 속에서 방황했다. 하지만 엔씨행은 되레 기회였다. “엔씨에 와서 최일언 투수코치님을 만나 하체로 투구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확실히 하체로 투구하니 전체적인 투구 밸런스가 좋아지고, 투구 메커니즘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립됐다. 특히나 서클체인지업(검지와 엄지를 붙여 동그랗게 만든 부분에 공의 한쪽을 대고 세 손가락으로 공을 감싸 던지는 구종)의 위력이 배가됐다.”

대구고 시절부터 이재학의 주무기는 서클체인지업이었다. 삼성 사이드암 투수 권오준을 보며 서클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그의 서클체인지업은 그리 위력적이지 않았다. 속구,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도 마찬가지였다. 팔로만 던지다 보니 구위가 떨어졌고 제구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최일언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속구부터 서클체인지업까지 모든 구종의 완성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올 시즌 이재학의 서클체인지업은 리그 사이드암 투수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다. 특히나 좌타자에게 위력적이다. 두산 좌타자 김현수는 “이재학의 서클체인지업은 속구처럼 오다가 한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휙’ 하고 휘어져 ‘뚝’ 하고 떨어진다. 스윙을 해도 대개 헛스윙이나 빗맞은 타구가 나오기 십상”이라고 털어놨다. 올 시즌 이재학의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할3푼2리밖에 되지 않는다. 피출루율도 2할대(2할9푼4리)에 불과하다. ‘사이드암은 좌타자에게 약하다’는 야구계의 상식을 보기 좋게 뒤엎고 있는 선수가 바로 이재학이다.

이재학이 엔씨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데에는 빠른 팀 적응도 한몫했다. 엔씨 사령탑은 이재학이 프로 입문 당시 두산 감독이던 김경문이다. 대부분의 코치 역시 김 감독과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로, 누구보다 이재학을 잘 안다. 이재학은 “친숙한 분들이 엔씨 코치로 있어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독님께서 ‘나와 손을 잡고 두산에서 못다 한 야구를 엔씨에서 펼쳐보자’고 격려해주신 게 큰 자극이 됐다”고 밝혔다.

[%%IMAGE3%%] 상무에서 경험 쌓으며 자신감 되찾은 유희관

유희관은 올 시즌 ‘저속구’라는 말을 유행시킨 선수다. ‘저속구’란 시속 150㎞ 강속구 못지않게 척척 삼진을 잡아내는 유희관의 시속 130㎞ 초중반대의 속구를 의미한다.

유희관은 지난해까지 철저히 무명 투수였다. 2009년 두산 입단 이후 지난해까지 21경기에 등판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2010년 5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10.80을 기록하고선 아예 1군 무대에서 사라졌다. 전통적으로 좌완이 귀한 두산임을 고려할 때, 그동안 유희관이 빛을 보지 못한 건 미스터리에 가깝다. 이용철 해설위원은 “유희관의 속구 구속이 느려도 너무 느렸다. 최소한 시속 140㎞만 나왔어도 유희관의 무명 시절은 단축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유희관은 2009년 프로 입단 때부터 느린 속구로 고생했다. 팔이 빠져라 던져도 시속 140㎞를 넘지 못했다. 평균 속구 구속은 시속 133㎞에 지나지 않았다. 원체 속구 구속이 떨어지다 보니 타자들에게 난타당하기 일쑤였고, 유희관도 자신있게 투구하지 못했다.

유희관의 두산 입단 당시 구단 사령탑이던 김경문 엔씨 감독은 “평균 속구 구속이 시속 137~138㎞만 나왔어도 불펜요원으로 썼을 텐데, 그땐 지금보다 공이 더 느렸다. 마운드 운영과 자신감도 썩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고만고만한 2군 투수로 전락한 유희관은 2010시즌이 끝나고 상무 입대를 결심했다.

“당시 두산에 이혜천, 이현승, 진야곱, 정대현 등 괜찮은 좌완이 꽤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리는 없었다. ‘군 문제 먼저 해결하자’ 싶어 상무에 지원서를 냈다. 돌아보면 이때부터 운이 따른 것 같다.”

그의 상무행은 정말 운이었다. 애초 상무는 두산 선수를 2명만 받으려 했다. 그것이 관행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유희관은 1군 성적이 좋지 않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상무는 이례적으로 유희관을 뽑았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치왕 상무 감독은 “(유)희관이는 상무 입대를 운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산 2군 시절 희관이 투구를 보며 ‘제구가 무척 좋아 경험만 쌓으면 좋은 투수가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다. 두산보다 내가 희관이 영입을 더 원했다”고 귀띔했다.

박 감독의 말처럼 유희관은 중앙대 시절 뛰어난 제구로 대학 야구계를 평정했던 투수였다. 대학 4학년 땐 리그에서 0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국가대표 투수로 뽑히기도 했다. 유희관은 “프로에서도 제구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원체 자신감이 떨어지고, 1군 등판 기회가 적다 보니 정작 1군 무대에 서면 제구가 흔들리게 마련이었다. 상무에 입단하고서 투구 경험을 쌓으며 잃어버렸던 제구력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유희관이 상무에서 회복한 건 제구만이 아니었다. 자신감도 되찾았다. 지난해 박 감독은 유희관에게 많은 등판 경험을 제공하고, 자신감을 심어줄 요량으로 그에게 선발을 맡겼다. 유희관은 박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군 리그에서 21경기에 등판해 11승3패 평균자책 2.40을 기록하며 프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이드암’으로 유명한 이재학 팔꿈치 부상 겪고 NC로 이적 하체 투구법 다시 배운 덕분에 서클체인지업 완성도 높여   1승도 못 거둔 무명투수 유희관 단점이던 시속 130km 저속구가 류현진보다 높은 분당 회전수로 타자들 앞에서 위력 발휘

올 시즌 전 김진욱 두산 감독이 상무 제대 투수 유희관을 가리켜 “우리 팀의 든든한 좌완 구원군이 될 것”이라 공언한 것도 원체 상무 시절 투구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김 감독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4월2일부터 5월3일까지 유희관은 13경기에 불펜투수로 등판했다. 그러다 두산 선발투수진에 부상자가 속출하자 5월4일부터 선발투수로 전향했고, 팀의 연패를 끊는 스토퍼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재학이 서클체인지업을 연마해 승승장구한다면, 유희관은 어떤 ‘변신’을 거쳤기에 이처럼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일까. 시속 130㎞ 초반대의 저속구가 역설적이게도 위력을 발휘한 까닭이다. 프로야구 통계 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로부터 유희관의 상세 투구 데이터를 입수해 살펴봤다.

예상대로 유희관의 평균 속구 구속은 시속 132㎞에 불과했다. 리그 투수 가운데 하위 3%에 속하는 구속이었다. 이 정도 속구 구속이면 변화구를 주로 던질 테지만, 유희관은 전체 투구 가운데 54%의 공을 속구로 던졌다. 속구 자신감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다. 놀라운 건 이 느린 속구를 상대로 타자들이 헛스윙을 연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자들의 속구 헛스윙 비율은 32%나 됐고, 스트라이크 비율도 59%로 매우 높았다.

유희관 속구의 분당 회전수 2412.51번

프로야구 타자들은 왜 유희관의 저속구에 번번이 당했던 것일까. 비밀은 야구계에서 흔히 말하는 ‘공끝’, 즉 공의 회전수와 움직임에 있다. ‘스포츠투아이’의 데이터를 보면 올 시즌 유희관 속구의 분당 회전수는 2412.51번이다. 속구 상승 무브먼트(움직임)는 31.63㎝, 좌우 무브먼트는 13.03㎝다.

국내 최고의 투구 데이터 전문가인 송민구 야구 칼럼니스트는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면 걸릴수록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공이 포수 미트 끝까지 힘있게 날아온다. 공의 회전수가 높을수록 ‘묵직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고 설명했다.

‘돌직구’로 불릴 만큼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오승환의 속구 분당 회전수는 2875.29회다. 오승환을 제외한 시속 145㎞ 이상의 투수들은 대부분 2100~2300회의 회전수를 기록했다. 유희관의 속구 회전수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류현진과 비교하면 더 놀랍다. 송 칼럼니스트는 “올 시즌 류현진의 속구 분당 회전수는 2300회 이내”라며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10승 이상을 따낸 류현진보다 유희관의 속구 분당 회전수가 많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속구 상승 무브먼트와 좌우 무브먼트는 더 놀랍다. 상승 무브먼트는 회전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공과 실제 투구가 각각 홈 플레이트를 통과할 때 보이는 높이 차이를 뜻한다. 이 값이 높을수록 그 공은 중력의 영향보다 더 적게 떨어지고, 값이 낮으면 중력의 영향보다 더 많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상하 무브먼트가 10㎝라면 그 공이 10㎝ 떠오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전하지 않고 중력의 영향만 받은 가상의 궤적에 견줘 10㎝ 높게 들어왔다는 뜻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상승 무브먼트가 높은 공을 만날 때면, ‘공끝이 살아 쭉 뻗어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송 칼럼니스트는 “유희관의 속구 상승 무브먼트 31.63㎝는 한국 프로야구 리그 평균치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평균 10~11인치(27.94㎝)인 류현진과 비교해도 더 높다. 상승 무브먼트만 평가한다면 메이저리그 정상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속 130㎞ 초반의 속구가 30㎝ 이상의 상승 무브먼트를 기록했다는 건 도저히 믿기 힘든 경이적인 수치”라고 평했다.

송 칼럼니스트는 “데이터가 정확하다면 타자들은 유희관의 속구를 대할 때마다 ‘공이 살아온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이 정도에서 맞겠지’ 하는 계산과 달리 실제 스윙했을 때 빗맞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희관의 속구 구속은 시속 130㎞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타자 입장에서 그의 속구 구위는 시속 150㎞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각 빼어난 체인지업과 포수 미트에 정확히 꽂히는 움직임 심한 공끝으로 올 시즌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 신인 투수, 이재학과 유희관은 신인왕에 대한 욕심도 서로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재학은 “시즌 전부터 목표는 신인왕이었다. 팀을 위해서도 꼭 신인왕을 수상하고 싶다”는 강력한 수상 의지를 드러냈다. 유희관 역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인왕에 오르고 싶다. 그것이 팀과 동료들을 위해 큰 기쁨으로 작용한다면 마지막까지 신인왕 수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