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키퍼는 대체 불가능하다. 강팀의 조건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뛰어난 스트라이커, 영민한 공격형 미드필더, 강한 센터백…. 스트라이커나 미드필더, 센터백은 전술이나 포지션 변경으로 대체 가능하다. ‘제로톱’으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들어올린 스페인이 그랬다. 2006년 이탈리아는 강한 수비로 공격의 공백을 메우며 독일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과 2010년, 그전에도 그 이후로도 변하지 않는 강팀의 조건은 유능한 골키퍼다. 2006년 이탈리아엔 잔루이지 부폰(36)이 있었고, 2010년 스페인엔 이케르 카시야스(33)가 있었다.

2013년 6월28일 잔루이지 부폰(이탈리아)과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가 1년 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다시 만났다. 1년 전인 2012년 7월 열린 유로2012 결승전은 카시야스의 완승이었다. 스페인의 4-0 승. 올해로 프로 20년차인 부폰이 4골 이상 허용한 세번째 경기였다.

브라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결승전. 절치부심한 부폰과 상승세를 탄 카시야스를 상대로 골을 뽑아내긴 어려웠다. 두 팀은 전후반 90분과 연장 30분으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승부차기는 7번째 키커까지 이어졌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보누치의 슛이 골대를 벗어난 반면 스페인 헤수스 나바스의 슛은 골문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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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선수들이 뒤엉켜 기쁨을 나눌 때 카시야스는 부폰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부폰은 “언제나 교과서처럼 생각한 우상”이었다. 그는 승부차기에서 한 골도 막아내지 못한 자신의 우상을 껴안았다. 우상을 상대로 연달아 승리를 거둔 미안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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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부폰, 팀 기여도는 카시야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은 골키퍼의 전성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다. 네덜란드의 에드빈 판데르사르, 독일의 올리버 칸, 체코의 페트르 체흐 등이 부폰, 카시야스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골키퍼들이다.

피파와 제휴해 세계 축구의 각종 기록을 관리하고 해마다 각국 리그와 클럽의 순위 등을 발표하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은 2012년 1월 ‘지난 25년간 최고의 골키퍼 순위’를 발표했다. 80여개 나라의 축구 전문가들은 부폰에게 가장 많은 표(226점)를 던졌다. 2위가 카시야스(213점)였고 판데르사르(201점), 페테르 슈메이셸(덴마크·179점), 칸(162점), 체흐(154점)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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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탈리아 세리에A 파르마FC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부폰은 풀타임 첫해인 1996~1997 시즌부터 눈에 띄었다. 시즌 27경기에 선발 출장해 17골을 허용해 경기당 0.62골을 내주는 성적을 거뒀다. 축구 통계 매체 <트란스퍼마르크트>(transfermarkt)를 보면 부폰은 1995년부터 지난 5월2일까지 대표팀, 국내 리그를 포함해 812경기에 나가 693골을 허용했다. 현역 시절을 통틀어 경기당 0.85골을 내준 셈인데 풀타임 첫해에 0.62골로 선방했으니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파르마FC는 1998~1999 시즌 코파 이탈리아컵(축구협회컵)과 유에파컵 우승을 차지했고, 부폰은 2001년 7월 파르마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1998~1999 시즌에 이어 2000~2001 시즌 세리에A ‘올해의 골키퍼’에 뽑혔다. 20대 초반에 이미 세계적인 골키퍼 반열에 오른 것이다. 유럽의 부자 구단들이 그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고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당시 부폰이 기록한 4769만파운드(약 800억원)의 이적료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골키퍼 최고액으로 남아 있다. 부폰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FC바르셀로나도 이적 제의를 했지만 아버지 권유에 따라 유벤투스를 선택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지금과 같은 팀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클럽 출신으로 레알에서만 16번째 시즌을 뛰고 있는 카시야스의 등장도 파격이었다. 프로 첫해인 1998~1999 시즌엔 후보 골키퍼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1999년 9월 1군 데뷔전을 치른 뒤 12월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2000년 5월 발렌시아를 누르고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릴 당시 카시야스의 나이는 19살에 불과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한 최연소 골키퍼였다.

‘부폰과 카시야스 중 누가 세계 최고의 골키퍼인가’라는 물음에 ‘부폰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건 기록이다. 데뷔 이후 16번째 시즌을 뛰고 있는 카시야스는 827경기에 나가 785골을 내줬다. 경기당 0.95골로 부폰(0.85골)보다는 실점률이 높다. 페널티킥 선방 비율도 부폰이 앞선다. 상대 실축을 포함한 페널티킥 선방률을 보면 부폰이 108번 나서 30번을 막았고(27.28%) 카시야스는 105번 나서서 25번(23.81%)을 막았다. 무실점 경기도 부폰(355)이 카시야스(335)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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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야스 지지자’들은 팀 기여도를 내세운다. 팀 기여도는 결국 팀 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카시야스는 리그 우승 5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2회, 월드컵 1회, 유럽축구선수권 2회 등 클럽과 국가대표팀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스페인 대표팀이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2010년 남아공월드컵-2012년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12)까지 ‘메이저 3연패’를 달성하는 데 그의 공이 컸다. 부폰도 월드컵 우승 1번, 리그 우승 4번을 경험했지만 아직 유럽축구선수권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맛을 보진 못했다.

이탈리아 유벤투스 골문 터줏대감 전문가가 뽑은 골키퍼 1위 부폰 슛만 보고 감각적으로 막는 스타일 불륜·승부조작 등 구설에도 올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16년 활약 메이저 3연패 수문장 카시야스 상대 자세를 보고 슛을 예측하고 자선활동 열정적인 유쾌한 선수 극과 극, 스타일 다른 두 남자

골키퍼의 움직임을 두가지 스타일로 나눈다면 부폰과 카시야스는 서로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에 있다. 일본 축구 전문 기자 시미즈 히데토는 자신의 책 <누구보다 축구 전문가가 되고 싶다>에서 골키퍼를 동적인 스타일과 정적인 스타일로 나눴다. 슈팅을 때리는 상대의 자세를 보고 미리 방향을 예측해서 움직이는 스타일이 ‘동적’이라면, 철저하게 날아오는 슈팅에 반응하는 방식을 ‘정적’이라고 정의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두 골키퍼 김병지와 이운재의 차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김병지는 동적인 골키퍼, 이운재는 정적인 골키퍼라고 할 수 있다.

185㎝의 카시야스는 동적인 골키퍼의 대표 선수다. 경기 중 지면과 수평으로 다이빙을 해서 슛을 막아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측이 들어맞는 순간 불가능에 가까운 선방을 해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시미즈 히데토는 동적인 골키퍼의 약점으로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슈팅 코스와 타이밍에 페인트를 시도하거나 골키퍼의 움직임을 침착하게 읽어내는 선수에게는 가끔 대량 실점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카시야스는 5골 이상을 허용한 경기가 네 경기, 6골을 내준 경기도 두 경기가 있는데 2009년 5월2일 메시에게 두 골을 내주면서 바르셀로나에 2-6으로 졌다. 2010년 11월29일에도 바르셀로나에 0-5로 졌다.

감각에 의존하는 정적인 골키퍼의 대명사는 부폰이다. 부폰은 191㎝ 큰 키에도 불구하고 골문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동물적으로 반응하기로 유명하다. 골문 구석을 향하는 완벽한 슛에 비해 자신의 활동 반경 안의 슛에 대한 방어가 뛰어나다. “막지 못할 공은 막지 않는다”는 부폰의 철학은 그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경기장 밖에서도 둘의 스타일은 극과 극이다. 카시야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아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듯한 모습이다. 1600만명의 팬을 거느린 그의 페이스북엔 경기 전후 카시야스가 직접 찍고 쓴 듯한 글과 사진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올라온다. 카시야스는 물론이고 그의 동료 선수나 감독들의 생생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입장권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자선활동에도 열정적이다. 세계 어린이 구호 단체 ‘플랜’의 홍보대사이기도 한 카시야스는 시즌이 끝나고 7~8월이 되면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어린이들을 찾아 함께 축구를 하고 개인적으로 후원도 한다. 2008년 6월29일 유로2008 결승전에서 우승한 직후 카시야스는 페루로 날아가 ‘이케르 카시야스 와이(y) 플랜’으로 이름 지은 이 단체의 어린이 빈곤 퇴치 활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카시야스와 달리 부폰은 불명예스러운 내용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2006년 소속팀 유벤투스의 승부조작이 드러났을 때, 부폰은 특정 경기에 베팅을 하고 배당금을 챙겼다는 의혹을 샀다. 조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 났으나 2012년 초에도 이탈리아 언론들은 비슷한 내용의 의혹을 보도했다. 2011년 모델 알레나 셰레도바와 결혼한 부폰은 결혼 이후에도 불륜설로 의심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황색언론’ <다고스피아>(Dagospia)는 올해 초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부폰이 내연녀인 일라리아 다미코와 밀라노에서 동거하기로 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미코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텔레비전 진행자다.

부폰과 카시야스 모두 한국과 인연이 깊다. 물론 그리 기분 좋은 인연은 아니다.

2002년 6월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한국은 이탈리아와 월드컵 사상 첫 16강전을 벌였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한국은 설기현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키커는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서 뛰던 안정환이었다. 안정환의 페널티킥은 비교적 골문 왼쪽 구석으로 낮고 빠르게 향했지만 부폰은 킥 방향을 정확히 읽었다. 이 페널티킥은 부폰이 막아낸 20개의 페널티킥(승부차기 제외)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2002년 월드컵, 한국과의 악연

한국 팬들에겐 잊지 못할 A매치로 남아 있지만 이탈리아 선수와 팬들에겐 월드컵의 악몽 중 하나로 각인돼 있다. 바이론 모레노 주심의 판정도 경기 이후 많은 논란을 낳았다. 한국 팬들은 냉정한 심판으로 기억하지만 이탈리아 팬과 선수들에겐 석연치 않은 판정을 한 심판으로 비난을 받았다.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프란체스코 토티의 팔꿈치 파울 등 이탈리아는 거친 경기로 6개의 경고를 받았고, 토티는 연장전에서 ‘할리우드 액션’으로 경고를 하나 더 받고 퇴장당했다. 부폰은 유로2012 당시 이탈리아의 우승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2002년 월드컵 때처럼 이상한 판정만 안 나오면 우승할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카시야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까지 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아니었다. 주전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사레스가 대회 직전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빠지면서 카시야스에게 예정보다 일찍 기회가 왔다. 첫 월드컵에서 주전 기회를 잡은 카시야스는 아일랜드와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 상대 슈팅을 두 번이나 막아내며 팀을 한국과의 8강전으로 이끌었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스페인도 일방적으로 한국을 몰아붙였지만 승리를 결정짓는 ‘2%’가 부족했다. 한국-스페인전 역시 심판 판정에 대한 뒷말은 많았다. 카시야스도 2년 뒤인 2004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번 월드컵 때도 우리는 심판 때문에 졌다. 우리가 아무리 경기를 잘했다 하더라도 한국을 이길 순 없었다”고 말했다.

부폰은 지난 4월 초 프로 통산 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이미 A매치 139경기에 출전해 이탈리아 선수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그는 에이전트를 통해 “유로2016에도 뛰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부폰 본인도 “40살까지 뛰고 싶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해왔다. 2018년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그는 40살이 된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의 특성상 40살 이상까지도 뛸 수 있지만 어느덧 부폰의 나이도 36살로 접어들었다. 4월 초 영국 축구 매체들은 “유벤투스가 골키퍼 세대교체 작업에 들어갔다”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의 팀 크륄 등 영입을 추진중이라고 전했다.

부폰이 13년 동안 몸담은 이탈리아 유벤투스는 2006년 전직 단장이 심판 배정에 관여하고 관계자들을 매수하는 등 승부조작 사실이 드러나 그해 7월 세리에B(2부 리그)로 강등됐고 2004~2005 시즌부터 2연패를 한 기록도 삭제됐다. 유벤투스는 2006~2007 시즌 세리에B 우승을 차지하고 세리에A로 올라갔고 2011~2012 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3연패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과거 유럽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승부조작 이후 이탈리아 프로축구가 침체기에 빠졌고 때마침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세리에A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부폰도 ‘국내용 선수’로 움츠러드는 중이다.

카시야스의 시대는 더 빠르게 저무는 중이다. 카시야스의 흔들리는 입지는 스페인 대표팀보다 주전 경쟁이 더 치열한 레알 마드리드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2012~2013 시즌 중반 손바닥 골절로 석 달 가까이 결장했고 부상 복귀 이후에도 벤치를 지키는 날이 늘어났다. 올 시즌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한 카를로 안첼로티는 카시야스를 유럽 챔피언스리그 및 컵대회에만 내보내고 있다. 대신 정규리그엔 카시야스와 동갑내기 디에고 로페스를 내보냈다. 2013~2014 시즌 동안 카시야스는 챔피언스리그 11경기와 국왕컵 9경기에만 출전했다.

벤치에 앉은 카시야스가 어색하긴 부폰도 마찬가지였다. 부폰은 지난해 10월엔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지난 3월엔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카시야스를 만났다. 부폰은 카시야스가 자국 리그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그를 벤치에 앉히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여전히 그의 반응속도는 환상적”이라고 라이벌을 위로했다. 스페인전을 앞두고서도 “그는 지금 특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 중요한 것은 출전경기 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빠르게 바뀌고 있는 축구의 트렌드도 영향을 미쳤다. ‘티키타카’로 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 대표팀과 FC바르셀로나,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등 최근 잘나가는 팀들은 경기 내내 공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패스 축구를 추구한다. 상대 수비에 밀려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할 때 다른 팀 같으면 최전방으로 긴 패스를 하겠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차라리 최후방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한 뒤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골키퍼는 상대 공격수의 슛만 막으면 되는 ‘고전적인’ 역할에 더해 패스에 참여하는 필드 플레이어 역할까지 요구받게 됐다. 스페인 국가대표이자 바르셀로나 소속 빅토르 발데스가 이런 요구에 적합한 선수다. 발데스는 어지간한 센터백에 버금가는 패스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점유율 축구와 맞아떨어진다. 반면 30대 중반을 넘어선 부폰은 물론이고 카시야스도 발기술이 뛰어난 골키퍼로 평가되진 않는다. 다행히 이탈리아 세리에A는 새로운 유행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리그라 부폰이 앞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하더라도 타 유럽 리그로 옮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에 비해 카시야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스페인 리그에서는 물론이고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다.


둘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지만
2002년 한국과의 악연은 닮은꼴
안정환 페널티킥 막았지만 졌고
홍명보 승부차기 못 막아 졌다
여전히 심판 탓 하는 것도 같다

전성기 지났지만 브라질 출전
각자 B조 C조 ‘죽음의 조’ 속해
아마도 인생 마지막 월드컵에서
‘골든 글러브’ 영광 다시 누릴까

브라질, 그들의 마지막 월드컵

카시야스에게 오는 6월13일(한국시각) 열리는 브라질월드컵은 자신의 세번째 월드컵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카시야스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 늘 카시야스에 가려 ‘2인자’에 머물던 발데스가 그의 자리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2년처럼 카시야스에게는 기회가, 그의 경쟁자에겐 불운이 닥쳤다. 발데스는 지난 3월 리그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월드컵 출전이 어렵게 됐다. 스페인 대표팀엔 카시야스 외에도 호세 레이나(나폴리), 다비드 데헤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의 후보들이 있지만 카시야스의 경험에는 크게 못 미친다.

그에 비한다면 이탈리아 대표팀 안에서 부폰의 자리는 아직 견고하다. 살바토레 시리구(27·파리 생제르맹), 마티아 페린(22·제노아) 등이 부폰의 후계자로 거론되지만 A매치 139경기를 치른 부폰에 비해 안정감이 떨어진다. 국제축구연맹(FIFA) 누리집은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하는 이탈리아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여전히 부폰과 미드필더 안드레아 피를로(35)를 꼽을 정도다.

둘은 아직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브라질에선 스페인은 B조, 이탈리아는 C조에 포함됐다. 이르면 8강전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조별리그의 험난한 벽을 넘어야 한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네덜란드·칠레·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이탈리아는 우루과이·잉글랜드·코스타리카와 같은 조가 됐다. 피파 랭킹 1위 스페인이 톱시드를 받은 B조엔 네덜란드가, 우루과이가 톱시드를 받은 C조엔 이탈리아에 이어 잉글랜드가 들어가면서 두 조는 ‘죽음의 조’가 됐다.

B조 스페인은 16강전에서 A조 팀을 만나야 한다. A조에 속한 개최국 브라질이 조 1위가 유력하기 때문에 스페인으로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해야 브라질을 피할 수 있다. 하필 스페인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지난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났던 네덜란드다. 6월14일 열리는 스페인-네덜란드전은 이번 대회 최고의 ‘빅 카드’다.

2006년 독일월드컵 챔피언이자 월드컵 4회 우승국 이탈리아는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파라과이, 슬로바키아, 뉴질랜드 등 비교적 손쉬운 상대를 만났다고 평가됐지만 2무1패 조 4위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수비 조직력이 탄탄한 덕분에 조별리그보다 토너먼트에 강한 이탈리아로선 종주국 잉글랜드, 피파 랭킹 5위 우루과이 등과 힘겨운 싸움을 치러야 한다.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골키퍼에겐 ‘골든 글러브상’을 준다.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골키퍼에게 상을 주기 시작했는데, 러시아의 골키퍼 야신의 이름을 따 ‘야신상’으로 수여하다 2010년 대회부터 골든 글러브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상을 카시야스는 2010년에, 부폰은 2006년에 팀의 우승과 함께 받았다. 1998년과 2006년, 2010년 대회에선 우승팀 골키퍼가 받았고, 1994년과 2002년엔 우승팀이 아닌 팀에서 수상자가 나왔다. 1994년 대회 이후 두 대회 연속 우승팀도 없었을뿐더러 두 대회에서 연이어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골키퍼도 없었다. 부폰과 카시야스는 생애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최고의 골키퍼 상에 도전한다. 부폰과 카시야스라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축구 팬들은 이미 전성기를 넘긴 두 노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