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지붕 두 가족’, ‘서울 맞수’, ‘잠실벌 라이벌’.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를 두고 하는 수식어다. 1985년 두산의 전신 오비(OB) 베어스가 연고지를 충청도에서 서울로 옮기면서 원래 서울 연고지였던 엘지의 전신 엠비시(MBC) 청룡과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올해는 두 팀의 라이벌 관계 30년이 되는 해다. 신인 지명 주사위 던지기, 빈볼 시비, 어린이날 명승부, 무료 입장 이벤트 등 그라운드 안팎에 숱한 화제를 뿌린 두 팀의 30년 맞수 이야기를 펼쳐본다.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서울의 한 초등학교 동창회 ‘밴드’에서 엘지(LG) 트윈스 팬들과 두산 베어스 팬들이 신경전을 펼쳤다. 엘지 팬들은 학교 이름을 따 ‘용마 트윈스’라는 밴드방을 만들고 신입회원 모집에 나섰다. 그러자 두산 팬들이 발끈하며 “우리도 ‘용마 베어스’ 방을 만들자”고 맞선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엘빠’, ‘두빠’라고 부르고 “두빠들은 꺼져라!”, “엘빠하고는 안 놀아!”라며 대립했다. ‘용마 트윈스’ 회원인 이두만(47·서울 중곡동)씨는 “두산은 사인이나 훔쳐보는 팀”이라고 폄훼했다. 그러자 ‘용마 베어스’를 추진중인 김용구(47·서울 삼성동)씨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며 잘랐다.

‘용마 트윈스’ 리더인 유부덕(48·서울 구의동)씨는 엘지의 전신 엠비시(MBC) 청룡을 프로야구 원년부터 좋아한 33년 팬이다. 4년째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 엘지를 응원하고, 틈만 나면 원정 응원을 다니는 골수팬이다. 그는 “아무 이유 없다. 무조건 엘지가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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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용태(48·경기도 용인시)씨는 두산의 전신 오비(OB) 베어스가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서울 동대문야구장 현장에 있었던 두산의 열혈팬이다. 아들 이름도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동주’로 지을 정도다. 그는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라 원년부터 오비를 좋아했다. 두산 팬은 점잖아서 좋은 반면 엘지 팬은 다혈질이라 싫다”고 했다.

두 팀 팬들간의 ‘역사 논쟁’과 자존심 대결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두산 팬들과 엘지 팬들의 신경전이 대단하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두 팀이 라이벌이 된 지 딱 30번째 맞는 시즌이다. 게다가 29일 개막전부터 두 팀의 맞대결이 편성돼 열기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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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팀이 라이벌이 된 것은 29년 전인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의 전신 오비 베어스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3년 후 연고지 서울 이전’을 약속받고 충청도를 연고지로 삼았다가 1985년부터 서울로 올라왔다. 이때부터 원래 서울이 연고지였던 엘지의 전신 엠비시 청룡과 ‘서울 라이벌’이 됐다.

이를 두고도 두 팀 팬들 사이에서는 ‘역사 논쟁’이 치열하다. 두산 팬 김용태씨는 “원래 오비가 서울 연고로 정해졌는데 방송사인 엠비시의 파워에 밀려 충청도로 내려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엘지 팬 유부덕씨는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고 맞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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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오비는 그해 1년 동안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엠비시는 잠실구장이 홈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엔 ‘강북=오비, 강남=엠비시’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86년부터 두 팀이 잠실구장을 함께 홈구장으로 사용하면서 ‘한 지붕 두 가족’이 됐다. 엘지 팬 유부덕씨는 “2000년대 들어 두산이 엘지보다 성적이 좀 좋다고 잠실구장 주인 행세를 하는데, 한번 셋방은 영원한 셋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구단의 자존심 대결은 굉장하다. 김태준 두산 홍보팀장은 “엘지와 맞대결할 때면 눈에 보일 만큼 선수들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형근 엘지 홍보팀장도 “두산과의 경기는 선수들 승부욕이 훨씬 더 강해진다”고 전했다.

두 팀이 한참 자존심 싸움을 벌일 때는 두산 구단에서 시즌 전에 선수들한테 “첫째는 우승이고, 둘째는 엘지전 필승”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에 엘지는 1990년대 중반까지 두산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해태(KIA의 전신)나 삼성을 라이벌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98년 이후 상대 전적에서 자꾸 밀리면서 자존심이 상했고, 그때부터 두산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아주 강해졌다.

1990년대에는 장외 승부가 치열했다. 신인 우선지명을 위한 ‘운명의 주사위 던지기’가 그것이었다. 두 팀은 똑같이 서울을 연고지로 했기 때문에 주사위 두 개를 던져 합친 숫자가 많은 팀이 서울 연고 선수 가운데 1차 지명권을 가졌다. 1990년대 초에는 유난히 거물 신인이 많았는데, 주사위만 던졌다 하면 늘 엘지가 이겼다. 엘지는 덕분에 1991년 송구홍, 92년 임선동, 93년 이상훈, 95년 심재학, 96년 이정길을 잇따라 지명했다. 94년에는 엘지(유지현)와 두산(류택현)의 지명 선수가 달라 주사위를 던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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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98년에 딱 한번 이겼는데 이마저도 이겼다기보다는 이해부터 순번제 지명으로 제도가 바뀌게 되자 김동주를 잡기 위해서 1년 전인 97년에 엘지에 신인 지명권을 양보한 것이었다. 그런데 엘지는 97년에 이병규를 지명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1990년대 엘지의 전성시대는 두산을 이긴 주사위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개막전부터 맞붙는 30여년 지기 라이벌 경기에 팬들 신경전 벌써부터 치열 지난 33년간 593번 맞붙어 두산 303승·엘지 275승 두산의 전신 오비 베어스가 엘지의 전신 엠비시 청룡 있던 서울로 1985년 이사 오고 잠실구장까지 함께 쓰면서 두 팀은 서울 라이벌이 됐다 개막전 상대전적은 한번 빼고 두산 승리

그러나 엘지는 2002년 준우승을 끝으로 기나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두산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밀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두산과의 주말 3연전을 앞둔 2005년 5월18일, 엘지 구단은 “두산한테 이길 때까지 두산전 홈경기에서 관중들을 무료 입장시키겠다”고 선언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엘지는 2004년 8월21일부터 이때까지 두산에 7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5월20일 경기에서 두산에 1-5로 역전패를 했다. 두산전 8연패였다. 엘지 구단은 약속대로 다음날인 5월21일 경기에 관중들을 무료 입장시켰다.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무료 입장 경기’가 펼쳐진 것이다.

이날 잠실야구장은 기세가 오른 두산 팬들과 약이 바짝 오른 엘지 팬들로 후끈 달아올랐다. 3만 관중이 1만5000명씩 양쪽으로 나뉘어 3루 쪽은 흰색 막대풍선의 두산 팬들로, 1루 쪽은 빨간색 막대풍선의 엘지 팬들로 가득 찼다. 야구장의 왼쪽은 흰색, 오른쪽은 빨간색으로 장관을 이뤘다. 이날 경기는 결국 엘지가 9-5로 이겼고 무료 입장 이벤트는 한 경기로 끝이 났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두산 팬들은 “불쌍해서 져 줬다”고 했고, 엘지 팬들은 “핑계대지 말라”면서 인터넷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맞수 의식이 강하다 보니 두 팀은 서로 트레이드도 잘 하지 않는다. 맞트레이드는 32년 동안 딱 세번에 불과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라이벌 팀끼리는 혹시나 트레이드를 잘못해서 상대팀 전력을 보강시켜주는 게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두 팀간 최초의 맞트레이드는 1990년 1월22일 당시 오비의 재일동포 투수 최일언과 엘지의 강타자 김상호를 맞바꾼 것인데, 두 팀 팬들에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가장 최근엔 2008년 6월3일 두산의 투수 이재영, 발빠른 왼손타자 김용의와 엘지의 수비형 포수 이성열, 스위치타자 최승환을 맞바꾼 2대2 트레이드가 있었다. 당시 엘지는 선발과 불펜이 동시에 무너지면서 마운드 보강이 절실했고, 두산은 백업 포수가 필요했기에 실로 오랜만에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현금 트레이드나 웨이버 공시(방출의 한 방법)로 간 경우도 많지 않은데, 최초의 사례는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결승 만루홈런의 주인공인 엠비시 이종도가 1985년 1월16일 오비로 간 것이다. 당시는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이 그리 강하지 않을 때다. 두산에서 엘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경우는 1999년 1월22일 류택현(43)과 지난해 11월30일 김선우(35)가 있다. 류택현은 올해로 21시즌을 맞고 있는 현역 최고령 선수로 역대 최다 경기 출장(899경기)과 최다 홀드(자기 팀이 앞서는 상황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해 세이브 조건을 충족시키고 물러나는 경우·122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출신인 김선우는 라이벌이자 친정팀인 두산을 상대로 개막전 선발투수로 예고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두 팀이 올 시즌에는 개막전부터 맞대결을 펼친다. 개막전에서 맞붙은 것은 이번이 통산 10번째다. 1980년대에는 6번이나 개막전에서 맞붙을 만큼 자주 만났는데, 그 이후에는 2005년과 2006년, 2011년에 만났다. 역대 개막전 상대 전적은 두산이 9전8승1패로 엘지를 압도했다.

특히 1980년대 오비의 투수 장호연은 개막전에서 유난히 ‘서울 라이벌’ 엠비시(엘지 포함)에 강했다. 그는 개막전에서만 엠비시(엘지 포함)를 상대로 5번 선발 등판해서 무려 4승을 따냈고, 그중 완봉승 한번을 포함해 완투승이 두번이나 있었다. 특히 1988년 4월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삼진 하나 잡지 않고,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공이 빠르지 않으면서도 능청스럽게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고 해서 ‘짱꼴라’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는데, 라이벌 엠비시(엘지 포함)를 제물 삼아 ‘개막전의 사나이’라는 또다른 별명이 붙기도 했다.

두 팀의 가장 최근 개막전 승부는 3년 전인 2011년 4월2일 펼쳐졌다. 당시 두산의 더스틴 니퍼트와 엘지 레다메스 리즈가 숨막히는 투수전을 펼친 끝에 두산이 4-0으로 이겼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32년 동안 두 팀의 상대 전적은 어떨까. 정규리그에서 32년 동안 593번 맞붙었고, 두산이 303승, 엘지가 275승으로 두산이 28번 더 이겼다. 무승부는 15번 있었다. 승률로 따지면 두산이 0.524, 엘지가 0.476으로 근소하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통산 15번 만나 두산이 8승7패로 한번 더 이겼다.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을 모두 합하면 두산 기준으로 608전 311승 15무 282패다.

두 팀의 역대 맞대결은 1982~1989년(엠비시-오비 시절), 1990~1997년(엘지 우세 시기), 1998~2008년(두산 우세 시기), 2009년~현재(접전 시기) 등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엠비시와 오비가 맞붙었던 1980년대에는 8시즌 동안 오비가 77승 5무 70패로 약간 앞섰다. 그 뒤 엘지가 엠비시를 인수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8시즌 동안은 86승 5무 55패로 엘지의 일방적인 우세였다. 엘지는 8시즌 가운데 1993년(9승9패 동률)을 빼곤 해마다 상대 전적에서 오비에 앞섰다.

1998년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두산은 2008년까지 11시즌 동안 127승 3무 73패로 엘지를 철저히 제압했다. 11시즌 가운데 엘지한테 우위를 내준 해는 2000년(엘지 10승9패)이 유일하다. 그 시즌에도 사연이 있다. 두산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만한’ 엘지와 맞붙기 위해 막판 2경기를 일부러 져줬다. 엘지로서는 암흑기였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두산이 엘지에 우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비에서 두산으로 이름을 바꾼 시기(1999년)와 거의 일치한다.

엘지의 두산 징크스도 이제는 벗어날 조짐이 보인다. 최근 5시즌 전적은 46승44패로 엘지가 근소하게나마 되레 앞섰다. 2009년과 2012년엔 엘지가, 2010년과 2011년엔 두산이 상대 전적에서 앞섰고, 지난해엔 8승8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1990년부터 2004년까지 15시즌 전적만 떼어놓고 보면 엘지와 두산은 135승 7무 135패로 똑같았다는 것이다.

[%%IMAGE2%%] ‘대목’ 어린이날 꼭 열리던 엘지·두산전

엘지는 상대 전적에서만 뒤질 뿐 아니라 정규리그 마지막 고비 때마다 두산에 번번이 발목이 잡혀 땅을 치곤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1986년과 1995년이다. 1986년 시즌 때 전기리그 5위에 그쳤던 당시 오비가 후기리그에서 엠비시를 불과 한 경기 차로 제치고 플레이오프 티켓을 거머쥐었다. 1995년에는 엘지가 시즌 내내 정규리그 1위를 달렸지만, 시즌 막판까지 엘지에 6경기나 뒤져 있던 오비가 반 경기 차로 뒤집고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엘지는 정규리그 3위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4패로 무너지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오비는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4승3패로 제치고 1982년 원년 이후 통산 두번째 정상을 맛봤다.

지난해에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막판까지 2위 경합을 벌이던 엘지와 두산, 넥센 등 서울 연고 세 팀이 10월5일 마지막 경기에서 순위가 결정될 판이었다. 2위가 가장 유력했던 팀은 넥센. 대전 원정경기에서 최하위 한화를 이기면 자력으로 2위가 되는 상황이었다. 엘지와 두산은 맞대결을 펼치고 있었지만 넥센이 한화에 져야만 맞대결에서 이기는 팀이 2위가 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과는 엘지의 기적 같은 2위 등극이었다. 한화가 넥센을 2-1로 잡아줬고, 엘지는 6회까지 0-2로 끌려가다가 두산에 5-2로 역전승을 거뒀다.

역대 포스트시즌에서도 두 팀은 팽팽히 맞섰다. 1993년과 1998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엘지가 잇따라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두산(오비)은 1998년 10월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 7-6으로 앞서다가 9회말 7-7 동점을 허용한 뒤 10회말 2루수 에드가 캐세레스의 뼈아픈 실책으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반면 2000년과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이 웃었다. 두산은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안경현의 동점 홈런과 심정수의 역전 홈런으로 시리즈 전적 4승2패를 만들며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도 정규리그 4위 두산이 정규리그 2위 엘지를 3승1패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포스트시즌 역대 전적도 두산이 8승7패로 지난해 역전에 성공했다.

두 팀은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보니 빈볼 시비도 잦았다. 특히 엘지가 두산에 밀리기 시작한 1990년대 말에는 유난히 자주 충돌했다. 1998년 5월7일 경기에서 엘지 김동수가 오비 투수 류택현의 투구에 옆구리를 강타당했다. 김동수가 마운드로 뛰쳐나갔는데, 이때 쏜살같이 달려온 1루수 타이론 우즈에 의해 허리를 감긴 채 넘어졌다. 그라운드는 난장판이 됐고 이 과정에서 우즈는 엘지 선수에게 스파이크로 엉덩이를 걷어차여 옷이 찢기고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2004년 7월25일에는 엘지 투수 서승화가 두산 장원진에게 빈볼을 던졌다가 집단 몸싸움을 벌였고, 2007년 5월4일에는 엘지 투수 봉중근이 두산 안경현에게 초구에 머리 쪽으로 위협구를 던졌다가 두 선수가 나란히 퇴장당한 일도 있었다.

가장 최근의 빈볼 사건은 2011년 10월2일 벌어졌다. 엘지 투수 유원상이 두산 오재원에게 던진 공이 머리 뒤쪽으로 날아가면서 방망이에 직접 맞았다. 이에 흥분한 두 팀 선수가 뒤엉켰고, 양 팀 고참인 엘지 이병규와 두산 김동주는 얼굴을 붉히면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두 팀은 어린이날 3연전을 많이 벌인다. 어린이날은 프로야구 대목이다. 따라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996년부터 올해까지 두 시즌(1997, 2002년)만 빼곤 17차례나 어린이날 3연전을 일부러 두산과 엘지 경기로 편성하고 있다. 빈볼 시비도 어린이날 3연전에서 많이 나올 만큼 두 팀 선수들은 어린이날 3연전에 유난히 승부욕이 강하다. 어린이날 역대 전적은 41번 맞붙어 두산이 27승, 엘지가 19승, 무승부 1번으로 두산이 8경기를 더 이겼다. ‘위닝시리즈’는 지난 시즌까지 16차례의 어린이날 3연전 가운데 두산이 10번, 엘지가 6번이었다.

경기시간 5시간45분…2000년 5월7일의 혈투

어린이날에는 유난히 명승부도 많았다. 1998년 어린이날 경기에서 엘지 임선동과 두산의 전신 오비 이경필이 선발로 맞붙었는데, 엘지 박종호가 연장전 만루에서 오비 투수 강병규를 상대로 끝내기 몸에 맞는 공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듬해인 1999년 어린이날에는 그해 오비에서 이름을 바꾼 두산이 9-9 동점에서 9회말 엘지 투수 차명석을 상대로 안경현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날리며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어린이날 3연전 중에서도 아직도 팬들에게 회자되는 경기가 있다. 두산 팬들에겐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극적인 역전승이었고, 반대로 엘지 팬들에겐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은 악몽 같은 경기였다. 2000년 5월7일, 두산은 9회초 투아웃까지 5-10으로 뒤지다가, 이도형의 3타점 싹쓸이 2루타와 장원진의 적시타로 10-10 동점을 만들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연장전 끝에 기어이 11-10으로 이겼다. 이 경기는 두산 팬들 사이에 ‘5·7 대첩’이라는 이름의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나돌 정도다.

2001년 5월6일 경기는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기록된다. 연장 15회까지 두 팀이 3-3으로 비겼는데, 이 경기는 그 당시 프로야구 한 경기 양팀 최다 타석(127타석) 신기록과 한 경기 양팀 최다 투구(507개) 신기록을 세울 만큼 혈전이었다. 경기 시간도 5시간45분으로 2008년 두산-한화의 5시간51분(연장 18회 두산 1-0 승) 기록으로 깨질 때까지 한동안 한 경기 최장 시간 경기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프로야구 32년 역사상 두산과 엘지가 한국시리즈를 펼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1995년 정규리그에서 불과 0.5경기 차로 두산이 1위, 엘지가 2위를 차지하자, 팬들은 한국시리즈에서 ‘잠실 맞수’ 대결을 갈망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엘지가 롯데한테 지면서 ‘서울 라이벌’의 한국시리즈 격돌은 성사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956년, 같은 뉴욕 연고의 뉴욕 양키스와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서 만나자 당시 뉴욕 시내를 통과하는 지하철을 타고 두 팀의 홈구장을 오갈 수 있다 해서 ‘지하철 시리즈’라고 불렀다. 2000년에는 아메리칸리그를 제패한 뉴욕 양키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에 오르며 44년 만에 ‘지하철 시리즈’가 재현됐다.

만약 두산과 엘지가 한국시리즈를 벌인다면 ‘더그아웃 시리즈’로 불릴 것이다. 잠실구장에서 모든 경기가 열리고 더그아웃만 서로 맞바꿀 뿐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에 ‘더그아웃 시리즈’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두산은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전력을 보이고 있고, 엘지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룬 지난 시즌의 기세를 이어갈 조짐이다. 시범경기에서도 두산이 1위, 엘지가 2위를 차지하며 팬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엘지와 두산의 ‘더그아웃 시리즈’. 상상만 해도 즐겁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