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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를 마시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패키지여행으로 갔던 중국 항저우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둘쨋날 들른 용정차밭은 거대하고 푸른 경관이 시원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쇼핑코스였습니다. 녹차 시음시간에 현지 안내인은 차에 관한 상식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래봤자 중요한 건 마지막 영업멘트였지요. “자, 어서 많이들 사가세요.” 그것도 여러 번 노골적으로 채근했습니다. 관광객 중 선뜻 사려는 이가 없자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오싹해졌습니다. 누군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차가 좋긴 한데… 저거 사가 봤자 썩는단 말이야. 먹지를 않아요~.” 차에 관해 특별한 신념이 없는 이라면, 그럴 가능성 매우 큽니다. ‘작심’을 하지 않는 한, 타 먹기 번거롭고 귀찮은 거지요.

귀찮지 않기로 치면 커피믹스가 최고입니다. 뜨거운 물이 든 종이컵에 내용물을 붓고 휘휘 젓기만 하면 됩니다. 덕분에 커피믹스의 한 해 매출 규모는 6047억원(2006년 기준)이나 된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계산하면, 한 해에 43억봉의 커피믹스가 한국에서 팔려나가는 지경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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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호 커버스토리를 취재한 고나무 기자도 커피믹스 마니아였습니다. 하루에 대략 네댓 잔은 들이켰던 것 같습니다. “커피믹스를 마시는 것은 지방과 화학첨가물들을 위 속에 들이붓는 셈”이라는 어느 음식평론가의 조언을 들려줘도 잘 통하지 않았는데, 두 달 전부터 독하게 끊었습니다. 그 중독성이 강한 걸 말입니다. 그래서 만들어 본 말이 ‘커피노믹스’입니다. 레이거노믹스나 디제이노믹스, 엠비노믹스 같은 ‘경제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한 ‘건강정책’입니다. 커피는 노(no) 믹스로! 돈 무지하게 들여 좋은 차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당장 커피믹스부터 끊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커피믹스도 안 마시고 녹차도, 보이차도 안 마십니다. 그냥 물만 마십니다.

고경태/<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