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대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 나선 정당의 수는 총 45개이다. 21개 정당이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고, 비례대표 참여 정당은 무려 38개에 이른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다수의 정당이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에 참가한 대부분의 정당에서 합리적인 정견이나 정책이 부재한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참혹한 민낯이기도 하다. 현행 정당법에서 정의하듯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해야 함에도 총선에 나선 수많은 정당들은 국민을 위한 공적인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기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거나 상대에 대한 혐오감을 자극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에만 골몰한다. 급조된 정당들의 기상천외한 이름들만큼이나 점점 더 거칠어져만 가는 거대 양당의 메시지에서 좌절을 넘어 자조적인 웃음이 나올 지경이니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표 얻으려 적대적 대결 강화
많은 이들은 이번 총선이 과거의 선거와는 다른 양상이라고 분석한다. 구도, 인물, 그리고 정책보다 ‘정권 심판’과 ‘야당 심판’이라는 두 개의 이슈가 모든 어젠다를 빨아들이는 선거라는 것이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의 폭정을 멈추겠다며 정권 심판에 나서달라고 외치고, 여당은 정부 정책에 반대해온 야당 말고 정부에 힘을 실어달라며 소리친다. 상대방을 향한 ‘심판’이 절대적 이슈가 되어 버린 이번 총선에서 다양한 정견이나 정책이 설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3지대가 유명무실해져 버린 것도 그러하고, 참신한 인물을 발탁하기는커녕 여성·청년·소수자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공천도 모두 다 상대방 ‘심판’을 위해서 용인된다.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여야의 비전과 해결책은 자취를 감췄고, 온통 유권자에게 상대방이 얼마나 더 나쁜지 일러바치는 선거로 전락한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되풀이하는 “민주당은요? 이재명은요?”라며 반문하는 것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파값 모르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공세가 결국 거울상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결국 선거에서는 한쪽만이 유권자의 마음을 얻게 되는 구조다. ‘누가 더 못하나’를 두고 경쟁하는 이번 총선의 경우에는 어느 쪽이 시민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했는지를 두고 ‘심판’이 내려질 확률이 높다. 결국 양당에서 내세우는 ‘심판’의 대상과 이유가 얼마나 유권자들에게 타당하게 인식되는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면서 ‘검찰 독재’를 심판의 이유로 전면화한다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에는 ‘의회 독재’ 청산을 의제로 띄우다가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물자 다시금 ‘종북세력’ 심판을 소환하고 있다. 상대방을 향한 이러한 호명은 서로를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각 당의 지지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 가리킨다. 민주당은 검찰 권력에 분노한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한다면, 국민의힘은 ‘종북세력’이라는 텅 빈 허수아비를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하고자 한다.
이는 결코 선거 과정에서 도출된 우연한 전략이 아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총선 정책공약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된다. 민주당이 검찰개혁, 공영방송의 독립성,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 경찰의 민주적 통제 등을 내세우면서 ‘검찰세력’ 청산이라는 목표를 명확히 했다면,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을 전면화하여 야당 심판을 강조하면서도,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한반도 정책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의힘 공약집은 분단체제의 피해자인 북한이탈주민과 이산가족 및 납북자 가족에 대한 지원과 북한인권 문제 해결을 대표적인 ‘자유평화 한반도’ 정책으로 내세우면서도 남북대화나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처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민의힘이 북한의 실패와 ‘자유’ 한국의 우월성을 부각시키는 정책을 우선시하고, ‘반자유’적인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것을 ‘자유평화 한반도’라고 정의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북한’과 ‘종북세력’이라는 타자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유권자의 표심을 얻고자 하는 국민의힘에는 북한과의 대화나 교류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며, 그들에게 ‘자유’를 강조하는 통일방안이란 결국 북한 자유화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힘은 지지자의 표를 얻기 위해서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 강화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심판 이후 ‘감은 눈’ 뜰 것인가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북세력’을 운운하며 ‘자유’를 강조하는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이 민주당의 ‘검찰 독재’ 청산이라는 프레임에 상대적 열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검찰 독재’라는 위협이 남한 유권자의 인식 지평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북한’과 ‘종북’이라는 존재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감각되었기 때문이리라. 유권자들은 검찰 권력은 언제라도 누구든 겁박하여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한’과 ‘종북세력’은 그것의 존재도 희미할뿐더러 설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로 소급되지 않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유권자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념을 앞세운 국가위기론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감소했음을 뜻한다. 반대로 민주화와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더없이 자유로워진 개인에게는 ‘검찰 독재’가 그 어떤 것보다 커다란 위협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총선이 유권자를 결집시키기 위한 징표로 ‘북한’과 ‘종북세력’이 소환된 마지막 선거이기를 바란다. 물론 ‘검찰 독재’도 마찬가지다. 특정 세력이나 집단을 ‘심판’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나 정책적 논의가 봉쇄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북한’과 ‘종북세력’이라는 것으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선거를 통해서 반드시 확인시켜야 한다. 그래야지만 한반도 평화와 군사적 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과 정견이 비로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총선 이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심판’ 이후의 한국 사회는 좀 더 나아져 있을까? 지금까지는 당장 ‘심판’이 먼저라며 한쪽 눈을 감았던 이들의 다양한 요구와 열망을 정치권은 과연 현실화할 능력이 있을까?
누가 되든 선거에서의 승리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아차렸으면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심판을 외쳤던 그 입이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여야 모두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정책으로 경쟁하는 정당들로 탈바꿈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무엇보다 총선 이후에는 제발 정치가 복원되었으면 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사설] 나토 ‘재점검’한다는 미국, 자강 노력 더 절실해졌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331/53_17749517704513_20260331503834.webp)








![[단독] ‘특혜 논란’ 여론조사 업체 대표, 김병기에 후원금 건넨 정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330/53_17748615091353_20260330503100.webp)



![난 몰랑…광주 갈랭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original/2026/0331/20260331503989.webp)

![[사설] ‘산재와 전쟁’에도 사망자 증가, 영세업체 맞춤 대책을](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57/154/imgdb/child/2026/0331/53_17749520564439_20260331503718.webp)











![<font color="#FF4000">[속보] </font>김영환 ‘국힘 컷오프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법원 “중대 하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67/580/imgdb/child/2026/0331/53_17749512388947_20260331503912.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