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한 이명현 특별검사를 비롯한 특검팀이 공식 출범하기 전날인 지난해 7월1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채아무개 상병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한 이명현 특별검사를 비롯한 특검팀이 공식 출범하기 전날인 지난해 7월1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채아무개 상병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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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서 | 법조팀 기자

기자들 사이에서는 ‘의무복무 기간’이라는 말이 있다. 한 부서의 업무를 통달함과 동시에 출입처의 ‘고인물’이 되지 않는 적정 근무 기간을 뜻하는 말로, 기자들은 이 기간 2년을 채우면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나는 2023년 법조팀에 들어와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원까지 출입처를 여러번 옮기며 ‘의무복무 기간’ 2년을 훌쩍 넘겨 일했다. 그런 덕에 기자로선 드물게 어떤 사건이 발생해 수사, 재판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을 취재해 기록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2023년 7월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 사망한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고다.

참 기구한 운명의 사건이었다. 해병대수사단과 국방부 조사본부를 시작으로 경북경찰청, 대구지검, 특검까지 수사기관만 5곳을 거쳤고 발생 2년10개월 만인 지난 5월에야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해병대수사단은 초동수사에서 부대 최고 상급자였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최고 책임자로 지목했지만, 박정훈 당시 수사단장의 ‘윤석열 전 대통령 수사 외압’ 폭로 이후 사건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가져가 다시 맡게 됐다. 국방부 조사본부에서는 해병대수사단의 결론을 뒤집어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사건을 이송받은 민간 경찰도 임 전 사단장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이후 검찰 수사 도중 출범한 이명현 특별검사팀의 5개월 수사를 거친 뒤에야 임 전 사단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법원에 구속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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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기구하다’고 표현한 건 오랫동안 여러 수사기관을 거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 수사는 경북경찰청의 ‘순직 사고’ 수사와 공수처의 ‘수사 외압’ 수사 두갈래로 나뉘어 이뤄졌는데, 사람들의 관심은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공수처의 수사에 쏠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이 터지고 공수처가 계엄 수사에 뛰어들면서 ‘수사 외압’ 수사마저도 한동안 멈추게 됐다. 그러는 동안 임 전 사단장은 유가족에게 ‘수중수색 지시를 내가 하지 않았다’는 ‘2차 가해성’ 전자우편을 보내는 등 장외에서 ‘무죄변론’을 펼쳤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상병)이 대대적으로 출범한 뒤에도 관심은 ‘내란범’과 ‘브이제로’(V0)를 겨냥한 수사에 집중됐다.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수사기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무엇보다 대통령 한마디에 수사 결과가 뒤집히는 고초를 2년10개월 겪은 끝에 이 사건의 수사는 ‘임 전 사단장이 채 상병 순직 사고의 최고 책임자’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법원은 지난 5월 임 전 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사건의 발생부터 수사가 뭉개질 뻔한 위기, 극적으로 특검이 출범하는 상황 전체를 취재한 나로서는 이 결론에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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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쯤, 반대로 가슴을 내려친 사람이 있었다. 법정에서 1·2심 선고를 모두 지켜본 채 상병의 어머니는 “엄벌이 내려지기만을 매일 밤 기도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억장이 또 한번 무너져내린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 앞에 다시 ‘반쪽짜리’라는 표현이 붙었다.

지난 7일, 항소심도 임 전 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고, 그는 이에 불복해 선고 나흘 만에 상고장을 냈다. 사건은 이제 확정판결을 받기 위해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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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