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바닷속에서 한이 맺혀 울부짖고 계신 우리 아버지….”
지난 8일 일본 도쿄 하나조노신사 천막극장에서 열린 일본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연극 ‘침묵의 바다, 뼈는 말한다’ 무대. 일제강점기이던 1942년 2월3일 일본 조세이해저탄광 수몰사고 이후 지금도 바다 밑에 잠든 조선인 노동자 등 희생자 183명의 원혼을 달래는 한 판 씻김굿으로 막이 열렸다. 만신(무당·배미향 분)은 “비록 혼이라도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만난 다음 좋은 곳으로 황천하시길 비옵니다”라며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어 희생자의 ‘뼈’ 셋이 사람 형상을 하고 해저탄광에서 올라온다. “쥐떼가 나오는 날은 탄광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시바타’라는 놈이 목검으로 위협해 우리를 전부 들여보냈어요.” 이들은 참사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오전 9시께, 해저 탄광 위 바다에서 고래가 뿜어 올리는 것처럼 물기둥이 솟구쳤고 해변에선 사람들이 바다 쪽을 보며 울부짖고 있었어요.”
해저 막장에는 일본 규슈나 오키나와 등에서 온 일본 하층 노동자들도 있었다. “무서웠지만 홀어머니와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조국(일본)의 대동아(태평양)전쟁 승리를 위해 석탄을 캐는 산업 전사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노예나 다름없었습니다.” 탄광에서도 가장 가혹한 업무는 식민지 조선에서 데려온 조선인들에게 맡겨졌다. 이들은 칠흑 같은 해저탄광에서 하루 12시간, 1일 2교대 쉬지 않고 일했다. 일이 끝나면 포로수용소 같은 숙소에 갇혀 감시받았다. “몸이 좋지 않아 일하기 어렵다”고 하면 때리고, 밥을 굶기기도 했다. 극 중 조선인 박종호(젠바라 노리카즈 분)는 어머니께 이런 편지를 보낸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꼭 여기서 탈출해서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갈게요.” 희생자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검은 다이아몬드의 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뼈는 노래를 잊지 않았다 (…) 들어다오 뼈의 노래를 / 어둠의 갱도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바다 밑 뼈의 노래’, 조박 시·곡)
이 사건은 2년 전 일본시민단체 ‘조세이탄광의 물비상(수몰 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수십년 노력 끝에 갱도 입구를 찾으면서 82년 만에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어 수중 탐사 작업으로 지난해 희생자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 등 유골 여러 점을 수습했다. 지난 1월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조세이탄광 유골 디엔에이(DNA) 감정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날 ‘침묵의 바다, 뼈는 말한다’ 첫 공연을 선보인 신주쿠양산박은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인 재일동포 김수진 감독이 이끌고 있다. 앞서 한국에서 재일동포 100년 역사를 그린 '백년, 바람의 동료들', 구한말 개화파 김옥균의 삶을 조명한 ‘도라지’(원작 오태석) 등을 공연해 국내 연극계에도 널리 알려진 극단이다. 김 감독은 이번 초연을 다듬어 올해 참사현장이 보이는 우베시 해안가 공연을 비롯해 일본 순회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내년엔 한국 공연도 준비 중이다. 그는 “일본 정부는 ‘언제까지 과거사를 사과해야 하느냐’고 말하지만 진정한 반성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진심 어린 사과가 이뤄지고 한·일이 진정 화합하는 날까지 조세이탄광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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