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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알을 담고 있는 열매 또는 작물 전체를 가리키는 ‘벼’를 영·호남에서는 ‘나락’이라 하고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대부분 ‘베’라 한다. 그러니까 표준말이 된 벼를 방언으로 쓰는 지방은 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경기도 양주와 포천, 충청북도 중원(충주)과 제천, 강원도 철원, 고성, 명주(강릉), 횡성 정도다. 행정구역 구분과는 어긋나게 전북 익산이 ‘베’를 쓰고, 충남 금산과 충북 보은·옥천·영동이 ‘나락’을 쓴다. 그리고 충남 서산(태안)-청양-논산-대덕(대전)-연기, 충북 청원(청주)-진천-음성, 강원 원성(원주)-영월-삼척(태백, 동해)을 잇는 휘어진 띠모양의 접촉지대에서는 ‘베’와 ‘나락’을 함께 쓰고 있는데, 이럴 경우 보통 쌀을 찧기 전의 낟알 상태를 나락이라 하고 낟알로 떨어내기 전 이삭에 붙은 상태를 베라고 한다. 이처럼 방언은 행정구역이나 영·호남 등의 전통적인 지역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분포상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익섭, 이병근 서울대 명예교수와 전광현 단국대 교수, 이광호 한국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최명옥 서울대 교수 등 국어국문학자 5명이 30여 년간의 공동작업 끝에 <한국언어지도>(태학사 펴냄)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출간했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기획해 1985년에 현지조사를 마무리하고 1987~95년에 <한국방언자료집> 9권을 차례로 출간한 이래 다시 10여 년의 세월을 들여 방언지도를 완성한 것이다. 책은 방언 분포가 선명하고 의미가 큰 153개의 표준어와 이에 해당하는 각 지역 방언들이 각기 어떻게 분포하는지 여러 형태로 분화된 방언들을 각기 다른 부호로 지도 위에 표시하고 계열별로 색깔까지 넣었다. 그리하여 기호의 모양과 색깔로 방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같은 계열 방언이 쓰이는 지역들을 같은 바탕색으로 구획하여 분포상황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1881년 독일, 1902~10년의 프랑스 언어지도를 필두로 선진제국에서 언어지도들을 작성했지만, 이처럼 진열지도와 분포지도를 통합한 형식으로는 <한국언어지도>가 독보적이라고 이익섭 교수는 설명했다.

‘벼’ 항목에는 오른편에 조사 당시의 질문과 해당 그림, 그리고 방언 분포현황과 해설이, 왼편에는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컬러판 언어지도가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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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항목 ‘벼이삭’의 방언들은 더 세분돼 영남과 호남이 다르다. 중부 이북은 베이삭, 영남은 나락이삭, 호남은 나락모개(모가지)라 한다. ‘볍씨’의 방언들은 중부와 남부를 가르는 경계면이 훨씬 더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중부 이북이 크게 벱(볍)씨와 베(벼)씨를 쓰는 지역으로 나뉘는데 비해 중부 이남은 거의 예외없이 씬나락(신나락)으로 통일돼 있다.

짚으로 꼬는 ‘새끼’는 동서로 갈리는데 충청·전라에서는 사내끼·사나키가, 나머지 지방에서는 대체로 새끼(일부 새꼬래기)로 통일돼 있다. 하지만 ‘멍석’은 전남·경남, 그리고 전북·경북 남부가 덕석, 나머지 지역이 멍석으로 각각 통일돼 남북으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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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은 그 다양함으로 언어의 생동하는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거기에 녹아 있는 우리말 역사를 드러내 주며, 각 지역의 독특한 삶의 흔적도 보여준다. 이를 시각화한 언어지도는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나 지역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특성을 알고자 할 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방언 중에서 표준어로 살려 쓸 것을 찾고자 할 때도 결정적인 길잡이 노릇을 한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