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사회일반

24년 전 오늘, 생수를 ‘합법적’으로 사 마시기 시작했다

등록 :2018-03-16 11:15수정 :2018-03-22 17:21

[역사 속 오늘] 24년 전인 1994년 3월 16일
정부, 금지됐던 생수 국내 시판 공식 허용 발표
“그동안 국내에서 금지되어 온 생수 판매를 허용한다 ”

정부의 광천수 국내시판 허용 발표는 대기업들의 생수 시장 신규참여 움직임을 활발하게 했다. 진로, 풀무원 등 기존 업체들도 시설증설 및 유통망 정비 등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 <한겨레> 자료 사진.
정부의 광천수 국내시판 허용 발표는 대기업들의 생수 시장 신규참여 움직임을 활발하게 했다. 진로, 풀무원 등 기존 업체들도 시설증설 및 유통망 정비 등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에서 언제부터 물을 팔기 시작했을까? 오늘로부터 정확히 24년 전인 1994년 3월 16일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는 당시까지 금지됐던 생수의 국내 시판을 공식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 생수 개발이 시작된 1975년 이래 20여 년 만에 결정된 일이었다. 앞서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 동안 생수 판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생수 판매는 다시 금지됐다. 논쟁이 일었지만 국내 생수 판매 허용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는 왜 내국인들이 생수를 사 먹지 못하도록 강제했을까?

오직 외국인들을 위한 생수 판매

<한겨레> 1989년 6월 8일 치(왼쪽), <한겨레> 1989년 8월 13일 치. (오른쪽)
<한겨레> 1989년 6월 8일 치(왼쪽), <한겨레> 1989년 8월 13일 치. (오른쪽)
지금은 생수가 국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생필품이 됐지만 1990년대 당시 국내에서 시판되는 생수는 오직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시작은 1976년 미군 부대에 납품된 ‘다이아몬드 정수’였다. 지금 시선으로는 믿을 수 없겠지만,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수 판매는 법적으로 금지됐다.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은 수돗물을 끓여 마시거나 지하수를 이용해야 했다. 심지어 내국인들을 상대로 생수를 판매한 생수 회사에는 처벌이 내려지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 모습(왼쪽), <매일경제> 1988년 9월 10일 치.
88 서울올림픽 모습(왼쪽), <매일경제> 1988년 9월 10일 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생수가 판매된 것은 88서울올림픽 기간 동안이었다. 외국 선수들이 국내 수돗물에 대한 안전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한시적 조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 한한 것이었다. 아울러 서울올림픽조직위는 생수 회사와 계약을 맺고 ‘88올림픽 대회용 생수’를 올림픽 선수 등 관계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급하기도 했다.

정부는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생수 판매를 다시 법으로 금지했다. ‘사회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게 이유였다.

<한겨레> 1990년 7월 8일 치.
<한겨레> 1990년 7월 8일 치.
이런 까닭에 대부분의 생수 업체들은 불법으로 내국인들에게 생수를 판매했다. 당국은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단속하지 않고 눈 감아 왔다. 1993년 10월 보건사회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를 보면, 국내 14개 생수 허가업체의 연간 생수 생산량 24만 1000여t 중 98%가 시중에 불법 유통되고 있었다. 자료는 무허가 업체의 생산량까지 합치면 국내 생수시장 규모가 연간 1000억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민 다수가 불법으로 생수를 사 먹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였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불러온 파장

<한겨레> 1991년 3월 21일 치.
<한겨레> 1991년 3월 21일 치.
국민 다수가 생수를 불법적으로라도 사먹게 된 이유는 88서울올림픽 이후 수돗물 중금속 검출 소동(1989년)과 발암물질 트리할로멤탄검출 파동(1990년) 등 연이어 수돗물 오염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들의 국내 생수 시판 허용 요구로 이어졌다.

특히 1991년 3월 14일에는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페놀 원액으로 인해 대구와 부산을 비롯한 전 영남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14일 밤 10시께부터 유출된 페놀은 다음 날인 15일 아침 6시까지 약 30t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 여과 없이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게다가 두산전자는 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 만인 4월 22일에도 페놀 원액 2t을 낙동강으로 유출하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 여기에 더해 1990년 10월부터 페놀이 함유된 악성폐수 325t을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에 무단방류해 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은 깨끗한 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치적으로 이용된 생수 판매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생수시판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생수시판을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국민들의 생수 시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1년 9월 정부는 생수 시판 허용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의원들은 14대 총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정부의 생수 시판 허용 추진은 생수를 구입할 형편이 못 되는 유권자들의 반발을 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원들은 ‘빈부격차에 따른 위화감 조성’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들며 선거 이후 판매 등을 주장했다.

생수 시판이 자칫 ‘수돗물 정책 포기’로 비칠 것이라는 우려도 한몫했다. 실제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의 생수 시판 허용 방침은 수돗물의 오염 사실을 정부가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건사회부 쪽은 “현재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수돗물은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며 “국민소득 수준에 따라질 좋은 음식료품을 찾게 돼 생수 시판은 시기의 문제”라고 밝혔다.

생수시판 허용에 대한 긴급 토론회. <한겨레> 자료사진.
생수시판 허용에 대한 긴급 토론회. <한겨레> 자료사진.
생수 시판 허용을 둘러싼 논란은 보건사회부와 여야 의원들의 공방전과 더불어 정부 관계자-수질전문가-생수업자-교수 등 각계각층 전문가가 출연하는 시사토론 TV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지하수 고갈,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수출용과 주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만 생수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생수 회사들도 법원에 지속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가게 된 생수 판매 결정

<한겨레> 1994년 3월 9일 치.
<한겨레> 1994년 3월 9일 치.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던 생수 시판 허용 문제는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대법원 특별 2부는 1994년 3월 8일 생수 판매금지 무효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생수 판매 금지 조처는 국민의 깨끗한 물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마실 수 있는 헌법상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고시 내용은 생수 제조업체들에 대해 헌법상 보장된 영업자율을 침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의 판결은 올림픽 이후 시작된 생수 판매 금지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을 7년 만에 끝냈다.

보건사회부의 생수판매 공식 발표가 있던 다음 날인 17일<한겨레> 1면에는 ’정부가 그동안 시판을 금지해온 생수판매를 허용하자 생수업체 직원들이 ’불법’이란 정신적 굴레에서 벗어나 빠르게 물통을 나르고 있다’라는 사진 설명과 함께 관련사진이 실렸다. (왼쪽), 같은해 여름에는 생수판매에 관한 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한겨레> 1994년 8월 22일 치.
보건사회부의 생수판매 공식 발표가 있던 다음 날인 17일<한겨레> 1면에는 ’정부가 그동안 시판을 금지해온 생수판매를 허용하자 생수업체 직원들이 ’불법’이란 정신적 굴레에서 벗어나 빠르게 물통을 나르고 있다’라는 사진 설명과 함께 관련사진이 실렸다. (왼쪽), 같은해 여름에는 생수판매에 관한 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한겨레> 1994년 8월 22일 치.
한편, 보건사회부는 생수에 대한 대중 광고 전면 금지와 함께 약수, 이온수, 생명수 등 소비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제품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광천 음료수로 표시하도록 했다. 또, 생수 용기에 반드시 제조 연월일과 수원지를 표시함은 물론 제품에 들어 있는 칼슘, 마그네슘 등의 함량을 적도록 하는 등의 법적 규제를 마련했다. 이로써 내국민들도 정부의 관리를 받은 깨끗한 물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강민진 기자 mjkang@hani.co.kr

진실을 후원해주세요
용기를 가지고 끈질기게 기사를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거둡니다.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정은경의 ‘정치방역’? 경박한 비판으로는 얻을 게 없다 1.

정은경의 ‘정치방역’? 경박한 비판으로는 얻을 게 없다

“창 너머 탱크 보인 날, 친구는 남고 우린 한국으로 왔어요” 2.

“창 너머 탱크 보인 날, 친구는 남고 우린 한국으로 왔어요”

서울 심야시간 ‘음주 따릉이·킥보드’ 급증…경찰 특별 단속 3.

서울 심야시간 ‘음주 따릉이·킥보드’ 급증…경찰 특별 단속

[속보] 확진자 1만2654명…위중증 이틀 연속 100명대 4.

[속보] 확진자 1만2654명…위중증 이틀 연속 100명대

훅 들이닥친 격한 두통, 혹시 ‘나도 뇌출혈’ 아닐까 5.

훅 들이닥친 격한 두통, 혹시 ‘나도 뇌출혈’ 아닐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Weconomy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 뉴스그래픽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더나은사회 | 탐사보도 | 서울&
스페셜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사업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