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덧 구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 나이지만 그래도 건강이 지탱한다면 법무사로서 다문화가족을 돕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배선위(86) 법무사는 지난 29일 충남 당진 읍내동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 변호사는 2008년부터 약 18년간 당진지역 귀화자의 성본 창설과 개명에 필요한 법률 지원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배 법무사를 거쳐 한국적인 이름을 법적으로 획득한 지역 다문화가족은 268명에 달한다. 대부분이 혼인귀화여성이라고 한다. 충남도의 자료를 보면 당진 내 혼인귀화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924명이다. 이중 약 29%가 배 법무사의 법률 지원으로 성본과 한국적 뿌리와 정체성을 얻은 것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주민등록부·가족관계등록부상 이름은 고국에서 사용하던 이름의 원지음(原地音)으로 표기된다. 한국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불리며 친숙해진 일상의 이름과 법적 이름이 다른 현실은 귀화자에게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계약서를 쓸 때마다 이름과 출신에 대한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배 법무사가 설명하는 성본 창설, 개명이 중요한 이유다. 그의 도움으로 베트남에서 온 응엔티한지는 김재희로, 쩐찌에우회는 전윤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배 법무사는 60만원 수준인 성본 창설과 개명 관련 법무사 수수료를 일절 받지 않고 있다. 가정법원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할 때 드는 인지세와 송달료 약 6만8천원은 직접 부담하고 있다. 18년 동안 1억7천만원 이상을 지역 다문화사회에 기부한 셈이다. 배 법무사는 “1년에 200만원이면 충분하다. 저비용으로 낯선 곳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는 고효율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18년 동안 268명에게 법률 지원
법원 인지세 송달료도 직접 부담
“한국·필리핀 사돈 상견례하는
프로그램 보고 ‘돕겠다’ 결심”
다문화가족 지원 법인 설립 추진
“내 뜻 이어나갈 후계자 나왔으면”
베테랑 법무사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주민을 위한 무료 법률 서비스에 두 팔을 걷어붙인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2007년께 티브이를 통해 한국과 필리핀 사돈의 상견례를 시청한 것이 인생을 바꿨다. 배 법무사는 “그 전까지만 해도 다문화사회에 관심이 없었다. 방송을 보는데 참으로 안쓰럽고 마음이 쓰였다”며 “성본 창설, 개명에 필요한 서류를 개인이 알아서 준비해 법원 결정을 받아내긴 어렵다. 이거라도 해야겠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성본 창설과 개명 이후에도 귀화자들이 지역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배 법무사의 역할이다. 그는 “법원의 (성본 창설, 개명) 결정문이 나오면 신청자한테 책과 함께 ‘힘든 일 있으면 찾아오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선물한다는 책은 ‘힘들어도 괜찮아’로, 제화 회사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이사의 자서전이다. 충남 당진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인 저자처럼 귀화자들이 새롭게 터 잡은 한국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명할 새 이름을 정하지 않고 찾아오는 혼인귀화여성들에게 ‘여성 법관 이름 중에 골라보라’고 제안한다는 것도 이들의 새 삶을 응원하는 배 법무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배 법무사는 “개명한 귀화여성이 한국 남편이랑 된장과 고추장을 들고 와선 시어머님이 담가줬다고 하더라. 돈 한 푼 안 받지만, 가끔 잊지 않고 찾아와 고마움을 전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웃어 보였다.
구순을 향해 가는 배 법무사에게 남은 목표는 혼자 해 온 일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월1일 충남도에 ‘사단법인 다문화가족 공익법률지원연대’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 은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나이인 만큼 자신을 이어 귀화자의 한국 정체성 찾기를 이어나갈 후계자를 찾고 싶다는 것이 법인 설립 취지다. 법인 체계에선 다문화가족을 위한 민사(소액 단독), 가사(비소송) 사건도 지원하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배 법무사는 “오래전부터 후계자를 알아봤지만 개인 법무사 일을 하면서 사비로 봉사하는 것이다 보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며 “법인화를 통해 다문화가족을 위한 공익 법률활동을 체계화하고 지속해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중곤 기자 kg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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