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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혜(오른쪽) 인권위원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2024년 4월22일 제8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강정혜(오른쪽) 인권위원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2024년 4월22일 제8차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국가인권부’가 아닌 것은 합의제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독임제와 달리, 여야가 함께 구성한 위원들이 합의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국가교육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도 같은 성격의 위원회다. 인권위, 방통위가 상설기구인 반면, 진실화해위·이태원특조위처럼 법률로 기간을 정한 한시 기구도 있다.

위원회 회의는 공식 기록된다. 위원 전체가 참여하는 전원위원회가 열리면, 반드시 지난번 회의 기록에 오류가 없는지 먼저 점검한다. 회의록엔 녹취된 위원들의 모든 말이 기록된다.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회의록에 담긴다. 2025년 2월10일을 중심으로 인권위 회의록을 본다. 인권위원들을 본다. 출범 24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한 인권위를 본다.

‘ㄷㄷㄷ, 인권위 그날’은 매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난다.

“교수님은 강의 중에 자주 ‘법의 시대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 안건을 통해 드러난 교수님의 태도는 대한민국 법의 시대정신을 심각히 왜곡한 것입니다. 내란세력을 옹호하고, 그들의 체포와 처벌을 우려하는 것이 법의 시대정신입니까? 진정한 시대정신은 내란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남용한 자들을 단죄함으로써 헌법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로서 법의 기초와 원리를 가르치는 분이 헌법을 유린하고 내란을 도모한 세력의 방어권을 주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참담함과 슬픔을 느낍니다. 교수님의 행보는 서울시립대 구성원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 및 재학생 99명 일동의 성명 중에서)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과 졸업생의 성명이 나온 것은 2025년 1월12일이었다. 2005년부터 이 대학에 재직 중인 강정혜 교수의 인권위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의 방어권을 옹호하는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극복 대책 권고의 건’(윤석열 방어권 안건)이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에 상정되기 하루 전이었다. 제자들은 스승이 부끄럽다고 했다. 안건 공동발의자 5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일에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인권위원직에서 내려오거나,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안건 발의를 철회하라는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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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13일 오후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윤석열 방어권 권고 안건’이 상정되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 지부 조합원 등 직원들이 안건 상정 철회를 요구하며 전원위원회실이 있는 인권위 14층 복도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25년 1월13일 오후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윤석열 방어권 권고 안건’이 상정되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 지부 조합원 등 직원들이 안건 상정 철회를 요구하며 전원위원회실이 있는 인권위 14층 복도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월13일 오후 전원위는 예정대로 열리지 못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인권위 14층 전원위원회실 입구와 출입문을 막아섰다. 안창호 위원장은 전원위를 1주일 연기했다. 다음날인 14일에는 김용원 상임위원의 정책비서관이 사직서를 냈다. 문제의 안건이 가결될 경우 결정문 실무를 담당해야 하는 당사자였다. 15일 오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버티고 있던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에 의해 뚫렸다. 헌정 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으로서 체포된 윤석열은 경기도 과천 공수처로 압송됐다.

그래서였을까. 16일부터 분위기 변화가 감지됐다. ‘윤 방어권 안건’ 발의에 참여했던 ‘조계종 봉은사 주지’ 김종민 위원(법명 원명)이 인권위 사무처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제 안건에 찬성 입장을 유지하는 위원은 4명으로 줄었다. 뒤이어 여기서 이탈할 사람에 관심이 쏠렸다. 강정혜 위원이 안건을 철회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종민 위원이 시민사회의 항의에 봉착한 불교계로부터 압박을 받았다면, 강정혜 위원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낸 성명서를 무턱대고 무시하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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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15일,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서울 한남동 관저 입구에서 차벽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설치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이들과 5시간여 대치한 끝에 결국 체포돼 공수처로 압송됐다. 연합뉴스
2025년 1월15일,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서울 한남동 관저 입구에서 차벽을 넘기 위해 사다리를 설치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이들과 5시간여 대치한 끝에 결국 체포돼 공수처로 압송됐다. 연합뉴스
2023년 1월15일 오전, 12·3 내란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2차 체포 영장 집행을 완료한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출발해 이동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3년 1월15일 오전, 12·3 내란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의 2차 체포 영장 집행을 완료한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출발해 이동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 국외 출장

지난주 월요일부터 금요일(1.6~1.10)까지 해외 출장으로 금(1.10) 저녁 인천공항에 도착해 보니 언론에 난리가 나 있더군요. 해외 일정도 빠듯하고, 로밍해 가도 인터넷이 잘 안 되었어요. 귀국 후 그제 월요일(1.13)에 안건이 상정되는 바람에 경위 파악이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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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건의 취지”와 “안건 내용(안건 초안)”

형사법 대원칙인 무죄 추정원칙에 의한 방어권 보장이라는 것이 “안건 취지”라고 해서 곧 출국임을 알리고 출국 전 안건 취지에는 동의하였습니다. 인권위는 흉악범의 인권도 다루기 때문에, 대통령이든 흉악범이든 인권 보장에는 차이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동의 못 할 바는 없지요. 그러나 안건 내용(안건 초안)은 해외 체류 중이고 빡빡한 일정으로 이동 중이라 체크 못 했습니다. 말하자면 안건 내용(안건 초안)에는 제 의견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이 보낸 항의 메일에 대한 강정혜 위원의 답신이다. 날짜는 1월15일로 돼 있다. 이 답신은 성명에 참여한 이들에게 공유됐다. 강정혜 위원도 공유를 허락했다. 성명이 나온 지 3일 지난 때였다. 강 교수는 이 메일에서 “형사법 대원칙인 무죄 추정원칙에 의한 방어권 보장”과 “말하자면 안건(초안) 내용에는 제 의견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나서 “제 의견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라는 부분을 특별히 굵은 글씨체로 표시해 한 번 더 강조했다. 강 교수는 “빡빡한 일정으로 이동 중이라 체크를 못 했다”고 했다. 읽어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 의견이 아니”라고 했다.

읽지 못했다니, 읽지도 않고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이 안건 발의에 참여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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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몰라요”시리즈 3탄에 해당했다. 1탄은 ‘원명 스님’인 김종민 위원이 조계종 사회부장 진경 스님을 통해 남겼다는 “저는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모르고 안건 발의에 참여했다”(1월10일)였고, 2탄은 안창호 위원장이 노조 지부장에게 했다는 “바빠서 아직 (안건) 내용을 정확하게 안 봤다”(1월10일)는 말이었다. 두 사람의 “몰랐다, 바빴다”를 이어 강정혜 위원 역시 “바빠서 체크 못 했고 내 의견이 아니”라고 발뺌한 것이다.

강정혜 위원(왼쪽서 5번째)은 조희대 대법원장 지명으로 2024년 3월15일부터 비상임위원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해 3월25일 전원위원회 개회 전 임명장 전수식이 열린 뒤 인권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원민경·한석훈·김용원·남규선·강정혜 위원, 송두환 위원장, 김용직·이충상·김수정·이한별 위원. 인권위 제공
강정혜 위원(왼쪽서 5번째)은 조희대 대법원장 지명으로 2024년 3월15일부터 비상임위원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해 3월25일 전원위원회 개회 전 임명장 전수식이 열린 뒤 인권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원민경·한석훈·김용원·남규선·강정혜 위원, 송두환 위원장, 김용직·이충상·김수정·이한별 위원. 인권위 제공

이 답신은 의문투성이다. 먼저 초안을 읽지도 않고 자신의 이름을 공동 발의자로 내걸었다고 했다. 국외 체류 중이고 빡빡한 일정이라면 김용원 상임위원의 안건 발의 제안을 거절하면 됐다. 인권위 운영규칙에 따르면 전원위에 상정하는 안건 발의는 위원 3명의 발의면 충분하다. 강정혜 위원이 빠져도 발의자는 4명이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굳이 참여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형사법 대원칙인 무죄 추정원칙에 의한 방어권 보장이라는 것이 ‘안건 취지’라고 해서 동의했다”는 부분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비상계엄 선포 뒤 국회의원을 끌어낼 목적으로 국회에 특수부대를 투입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인권위가 보장하자는 취지인데, 그 심각성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덜컥 동의를 해줬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강정혜 위원은 여기서 ‘흉악범의 인권’을 예로 들었다. 인권위가 흉악범의 인권에 대해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인권위는 출범 초기부터 줄기차게 사형제 폐지와 이를 전제로 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을 헌법재판소와 법무부에 권고해왔다. 사형제도 폐지에 이해관계를 지닌 이는 대개 흉악범이다. 만약 사형선고 확정판결을 받은 이에 대해 법무부가 실제 형 집행을 결정한다면, 지금까지 결정례로 보아 인권위는 사전에 그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나설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가 흉악범의 범죄행위를 두둔하거나, 대규모 변호인단을 거느리고 그 범죄를 은폐하고 기소를 피하려는 흉악범의 방어권을 지키겠다고 한 적은 없다.

흉악범은 애초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흉악범 가운데 체포를 방해하는 경호원들과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를 앞세워 국가가 제공한 사저에서 나오지 않고 버틴 이는 없었다. 대통령 윤석열은 고문을 당한 적도, 부당하게 뒷수갑을 찬 적도, 이유 없이 오랫동안 경찰서 의자에 한쪽 수갑이 채워져 벌을 선 적도 없었다. 한데 강정혜 위원은 “대통령이든 흉악범이든 인권 보장에는 차이를 두고 있지 않기에 동의 못 할 바 없다”고 했다. 그가 제자에게 보낸 해명의 편지를 더 읽어보자.

2024년 10월7일 열린 전원위 개회 전 안창호 위원장(가운데)과 인권위원들이 착석해 있다. 맨 왼쪽이 강정혜 위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4년 10월7일 열린 전원위 개회 전 안창호 위원장(가운데)과 인권위원들이 착석해 있다. 맨 왼쪽이 강정혜 위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 “안건 내용(안건 초안)”의 작성 단계

안건 내용(안건 초안)은 비공개 안건입니다. 이것이 월요일 전원위(1.13)에 비공개 상정되기도 전에 언제 언론에 공개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통상 시간이 급하면 상임위원이 작성한 안건 내용에 대하여 이름 올린 비상임위원들이 검토를 못 하고 전원위에 올리기도 합니다. 어차피 수정을 예상하거든요. 전원위에 확정되기 전에는 언제나 초안, draft 상태이고 항상 전원위에서 토론을 거쳐 완성됩니다. 전원위에서 토론을 거쳐 빼고, 더하고, 아니면 내용이 최종합의 안 되면 철회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초안이고 확정안이 아니며 토론을 거치는 것입니다. 당초의 견해를 바꾸기도 하고요.

ex) 행정심판위원회에 가면 안건의 내용이 내부에서 작성되어 인권위 회의에 올라오고 (초안 단계), 위원들 간의 토론을 거쳐 인용, 기각으로 정하고 내용도 그에 맞춰 수정(확정 단계) 되는 것과 같은 process입니다. 실제로 행심위에서 초안과 달리 토론을 거쳐 결론이 난 것도 많고 개인적 경험으로도, 실제로 사전에 기록을 보고 어떤 결론을 정했다가 위원회 토론에서 결론을 바꾸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4. 내부 초안 상태가 외부 공개됨

비공개 안건이고 내용이 초안 상태이고 이름 올린 위원들 모두가 검토하지 못한 상태에서 초안이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비상임위원인 김종민 위원님 최근 언론기사 참조). 이미 확정적인 것 마냥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사실과 다릅니다. 이러한 경위를 그저께 전원위에 알리고 중지를 모으고자 했지만, 회의장 차단으로 전원위가 열리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후인 다음주 월(1.20)에 전원위가 재개됩니다. 회의가 개최된다면, 이러한 사정을 알리고 구체적인 토의에 들어가겠지요. 토론과 숙의를 거친 후 안건이 수정/불상정/폐기/인용 어느 쪽으로 결론 날 것인지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숙의를 거쳐 완성되지요.

5. “안건 내용(안건 초안)”에 대해 질문하였는데 솔직히 말해 내가 작성한 것도 아니고, 그제 월요일 회의 전 한 번 읽어보기는 하였으나 삭제되어야 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정도로만 답할 수밖에 없네요.

강정혜 위원은 안건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니, ‘언론 탓하기’에 돌입했다. “비공개 안건이고 내용이 초안 상태”라면서 “통상 시간이 급하면 상임위원이 작성한 안건 내용에 대하여 이름 올린 비상임위원들이 검토를 못 하고 전원위에 올리기도 한다”고 한 뒤, “당초의 견해를 바꾸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한 초안이 “확정적인 것 마냥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말도 했다.

“통상 시간이 급하면 인권위원이 안건을 보지도 못한다”며 김종민 위원 예를 든 부분은, 인권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낼 만했다. 직전에 벌어진 김종민 위원의 “나는 몰랐다” 시리즈 1탄은 절대 따라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동료 위원의 말을 자기 정당화의 구실로 삼은 거였다. 이전에 어떤 사례가 있는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위원들이 의안을 직접 발의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당초의 견해를 바꾼다”는 표현 또한 무책임으로 읽힐 수 있다. 모름지기 인권위원이라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발의 참여를 결정해야 하고, 쉽게 견해를 표변해서는 안 되는 게 상식이다.

강정혜 위원이 2025년 6월9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강정혜 위원이 2025년 6월9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그리고 언론. 1월9일 한겨레를 비롯해 수많은 언론은 ‘윤 방어권 안건’의 초안이 전원위에 상정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확정적인 것 마냥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사실과 다르다”고 했는데, 무엇이 사실과 다르다는지 설명돼 있지 않다. 언론은 사실 그대로 보도했다. 기자들은 전원위에 상정된 의안이 토론 과정에서 수정될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 이전에 독자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이러한 의안의 발의 그 자체였다.

이 편지를 받은 서울시립대 법전원 학생은 ‘강정혜 교수’의 답신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아, 내가 오해했구나. 언론의 왜곡보도였구나’라고 수긍했을까, 아니면 배신감을 느꼈을까.

강정혜 교수는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1965년생이 1982년 대학 입학을 하려면 만 5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같은 경우다. 당시 서울법대 82학번 학생 수는 300명이었고, 여학생은 11명이었다고 한다. 사법시험은 1989년 합격했다. 그해 한겨레 10월20일치를 보면 ‘제31회 사법시험 최종합격자 명단’에 강정혜 위원 이름이 있다. 24살이었다. 전체 합격자 300명 중 여성은 14명이었다. 일찍이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 그는 1999~2000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로스쿨에서 유학도 했다. 그는 ‘신동’이었을지 모른다. 초등학교부터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을지 모른다.

서울시립대 법전원에서 ‘강정혜 교수’에게 강의를 들었던 한 법조인은 그를 ‘프라이드의 화신’으로 기억했다. 그에게는 ‘최고라는 자부심’이 새겨져 있었고, 이를 수업 중 학생들에게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 방어권 안건’ 발의는 강정혜 위원 인생의 프라이드가 될 수 있을까.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뒤 고민했을지 모른다. 학생들이 낸 성명과 이메일로 온 편지를 읽으며 애초의 선택을 후회했을 수도 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될 수 있음을, 똑똑한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발의에 참여하지 않은 이충상 의원마저 전화를 해와 “안건 발의를 철회하라”고 설득했다.(1월17일 국회 운영위, 이충상 위원 발언)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철회서

위 안건을 다음의 사유로 철회합니다.

1. 안건의 전반적인 취지(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에 기한 방어권 보장)에는 공감하여 안건제출에는 동의하였으나, 해외출장 중이어서(2025.1.6.~10), 안건의 구체적 내용은 제대로 검토를 하지 못하였음.

2. 2025.1.13. 인권위 전원위에서 위 사정을 알리고 구체적 안건 내용에 관한 숙의를 거쳐 의견을 정리하고자 했으나, 회의 개최가 무산됨.

3. 향후 전원위 개최가 불투명하다면 위 안건에 대한 숙의나 공론의 기회가 없어, 안건제출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어 철회에 이르게 되었음.

김종민 위원이 사직서를 낸 지 하루만이었다. 1월17일 오전, 강정혜 위원은 서울 중구 삼일대로 나라키움 저동빌딩 14층 인권위 운영지원과를 찾아 안건발의 철회서를 제출했다. 이제 안건 발의자는 3명으로 줄어들었다. 어쨌거나 박수를 받는 선택이었다. 태풍처럼 인권위를 때렸던 ‘방어권 파동’은 이렇게 사그라드는 것처럼 여겨졌다.

강정혜 위원은 제자에게 보낸 편지대로 “구체적 내용은 제대로 검토를 하지 못하였음”이라고 안건 철회서에 적었다. 이어 “향후 전원위 개최가 불투명하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전제를 달면서 “안건제출은 무의미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전원위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은 어디에 근거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그런데 “향후 전원위 개최가 불투명하지 않고 가능하다면?”이라는 전제는 없었다.

아무도 반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반전의 키를 쥐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