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10년차 여행 가이드 ㄱ(41)씨는 지난달, 노르웨이 10박12일 여행을 인솔하다가 현지 운전기사 실수로 기차를 놓치면서 예정됐던 일정 대신 다른 관광을 진행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여행객들이 민원을 제기했고 ㄱ씨는 한 명당 25만원, 총 500만원에 이르는 고객 보상 비용을 혼자 부담했다. 여행 상품을 팔았던 국내여행사, 실수한 운전 기사를 고용한 현지여행사의 책임은 쏙 빠진채 프리랜서 가이드인 ㄱ씨만 책임을 떠안은 것이다.

여름 휴가철, 외국 패키지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존재인 가이드들이 여행사와 관계에서 ‘철저한 을’의 자리에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여행사의 무리한 요구를 그대로 따르며 일감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광고

외국 패키지 여행의 경우 통상 국내 여행사(모객사)가 손님을 모으고, 현지 여행사(랜드사)에 실제 운영을 맡기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후 현지 여행사는 중개업체(에이전시)를 통해 가이드를 섭외한다. 가이드는 매번 여행사 ‘선택’을 받고 일감을 구해야 하는 처지인데, 현지 여행사는 물론 국내 여행사의 평판 또한 중요하다고 한다.

ㄱ씨처럼 여행 도중 문제가 벌어졌을 때 가이드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책임을 떠맡는 것도 이런 이유다.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 가이드로 9년째 일하고 있는 ㄴ(36)씨는 “현지에서 고객이 묵는 숙소와 식당은 현지 여행사가 결정하는 데도, 문제가 발생하면 가이드가 이를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가요인에 반영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천재지변이나 현지 사정으로 진행하지 못하거나 일부 일정을 변경한 것에 대해 가이드가 자비로 보상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은데, 다음에도 일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이를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
광고

국내 대형 여행사를 정점으로 현지 여행사, 가이드 에이전시 등으로 이어지는 여행업계 다단계 구조도 가이드가 무리한 책임을 떠안는 배경이다. 여행 일정 변경 사건 이후 에이전시 대표가 ㄱ씨에 전화로 전한 내용을 들어보면 “(현지여행사와 계약한) 버스기사가 잘못한 부분인데 랜드사 하고 보상을 반반씩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그게 먹히겠냐”며 “랜드사에서는 (국내여행사로부터) 영업 정지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가이드가) 빨리 처리를 해주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저희(에이전시)도 다음 거래가 불확실해진다”고 한다. 에이전시는 현지 여행사를, 현지 여행사는 국내 대형 여행사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인 셈이다.

ㄱ씨의 일정 변경 보상과 관련해 국내 대형 여행사는 한겨레에 “환불 요청을 랜드사 쪽으로 했는데 가이드가 전부 부담한 줄 몰랐다”며 “일부 환불은 랜드사가 책임지는 것으로 정정하고 향후 보상 문제가 또 발생하는 건에 대해서도 모객사와 랜드사 그리고 가이드가 부담해야 하는 부분들을 더 명확하고 세부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시정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