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어진 수사·사법기관 최고위직들의 인사청문회에서 단연 눈에 띈 건 이들의 ‘증여세 없는 증여’ 전략이었다. 증여세 회피를 똘똘한 절세 전략 정도로 여기는 수사·사법기관 최고위직 후보자들이 우리사회에서 최고 수준의 공적 신뢰를 담보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여전히 나오는 이유다.
증여 말고 대여
지난 2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른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는 ‘차용을 가장한 증여’ 논란에 휩싸였다. 조 후보자 아내는 2020년 30대인 둘째 아들에게 1억5천만원을 연이율 2% 조건으로 빌려줬다. 조 후보자 아들은 엄마에게 빌린 돈에 급여소득 1억원과 임대보증금 9천만원을 합쳐 서울 송파구 오피스텔을 3억4천만원에 사들였다. 조 후보자는 아들이 엄마에게 월 이자 25만원을 꼬박꼬박 냈으므로 ‘증여가 아닌 대여’라고 설명했다.
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뒤 금전대차계약서(차용증)를 쓰고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증여 아닌 대여’로 인정받는 건 증여 과정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선 세무조사를 피하는 부모 자식 간 차용증 작성팁, 이자를 입금한 부모 계좌 체크카드를 자식이 쓰는 꼼수 등이 공유된다. 세법상 특수관계인인 부모 자식 간 금전 거래 땐 적정 이자율(4.6%)을 따라야 하는데, 이자가 연 1천만원을 넘지 않는다면 조 청장 아들처럼 연 2%도, 혹은 무이자 차용도 가능하다. 1억5천만원이 모두 증여로 간주됐다면 아들은 약 1천만원의 증여세를 내야 했다.
자녀 이름으로 주식 취득, 증여세는 없어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의 두 자녀는 각각 8살, 6살 때 아버지 돈으로 산 300여만원어치 비상장 주식을 17년 뒤 팔아 각각 3800만원씩 양도 차익을 거뒀다. 부모가 자녀 이름으로 주식을 매입한 경우인데, 이런 경우 증여 당시 주식 시가를 기준으로 증여세가 부과되고 이후 주가가 몇배로 불어나도 세금이 더 붙지 않는다. 심지어 증여 당시 주식 시가가 비과세 증여 한도인 5천만원(미성년자는 2천만원) 이내라면 증여세가 한푼도 나오지 않는다.
이 후보자 딸은 19살에 다시 아버지 돈으로 화장품 회사 비상장주식을 1200만원 어치 사고, 6년 뒤 그 주식의 절반을 3억8500만원에 아버지에게 되팔았다. 시세차익만 64배에 달했다. 양도소득세가 7800만원 나왔지만, 증여세를 내는 것보다는 유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부인 명의의 땅을 딸에게 ‘시세보다 싸게’ 팔아 논란이 됐다. 오 처장의 아내는 재개발 구역에 속한 경기 성남시 수정구의 시세 6억원짜리 땅과 건물을 첫째 딸에게 4억2천만원에 팔았는데, 딸은 매입대금 중 3억5천만원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았고 나머지는 대출로 마련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상 자녀가 부모 부동산을 살 때 ‘시세보다 30% 낮은 금액’까지는 증여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매매가를 최대한 낮춘 것이다.
오 처장의 딸이 시세대로 증여받았다면 약 1억원의 증여세를 내야 했다. 하지만 땅값을 30%나 낮춘 데다 대출액의 차액만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4850만원으로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오 처장은 당시 세법 전문 변호사였다. 그는 “외동딸에게 아파트 하나 정도는 마련해줘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팀 국장은 “고위공직자가 세제의 허점을 악용해 납세를 회피하고, 증여할 재산도 없는 수많은 이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조세제도 설계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