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행 대체복무제마저 거부하고 형사처벌을 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안을 두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대체복무제가 도입됐지만, 대체복무의 실상은 여전히 ‘징벌’이라는 게 이들의 거부 사유다.
지난달 13일 광주지법 형사7단독(전일호 부장판사)은 대체복무제를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ㄱ씨에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 ㄱ씨는 대체복무 소집 대상자로 분류됐지만 소집에 응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ㄱ씨는 재판에서 “현행 대체복무제는 사실상 ‘징벌’로 기능하며 그로 인한 헌법상 기본권 침해 문제가 있다”며 “대체복무 거부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ㄱ씨 형량은 징역 1년6개월로 병역거부자에게 통상 주어지는 ‘정찰제 판결’이었지만 판결문 내용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전 판사는 판결문 2쪽에 걸쳐 20년 전 강원도 철원군에서 육군 법무관으로 근무한 개인적 경험을 상세히 열거했다. 굴착기를 몰다가 사망한 중위, 부대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유서를 품고 다닌 병사, 스스로 입에 소총을 쏴 숨진 병사, 종교 활동을 보장받지 못해 탈영한 병사, 형편이 어려워 부대에서 돈을 훔친 병사 등의 사례다.
그러면서 전 판사는 “여러 현역 병사들의 군 복무는 ‘고역 그 자체’인데도 아무도 군 생활이 징벌이라거나 위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며 “본 재판장이 교도소에서 합숙 형태로 이뤄지는 대체복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않아 얼마나 고역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이 현역병의 복무 강도보다 무겁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제출된 ‘대체복무가 징벌적으로 운영된다’는 대체복무자들의 진술서에 대해서도 전 판사는 “이른바 ‘내가 근무한 부대가 제일 힘들었다’는 맥락의 진술서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현행 대체복무제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피고인 주장을 법원이 ‘복무 강도’에 대한 단순 투정으로 취급하며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체복무자는 현역 육군병(18개월)의 2배인 36개월간 교도소에서 합숙복무한다. 전과 기록만 남지 않을 뿐 징역을 살던 과거와 비교해 처우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ㄱ씨 역시 단순히 대체복무의 고됨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었다. ㄱ씨 변호인인 김진우 변호사는 “현재 대체복무제는 복무영역을 오로지 교정시설로만 한정하며, 복무내용도 재소자가 하는 일과 똑같아서 또 다른 방식의 징벌로 기능하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병역 의무 이행을 갈음하도록 해주는 게 대체복무제의 주된 목적이어야 하는데, 현행 제도는 이들을 모두 사회에서 배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체역 심사 때는 종교적 신념을 증명하기를 강요하다가 정작 대체복무가 시작되면 군인과 동일한 처우를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종교활동을 억압하는 것도 문제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도 지난해 11월 한국 대체복무제가 ‘징벌적’이라며 정부에 개선을 권고했다. 복무기간(36개월)이 지나치게 길고 복무영역이 교정시설에 국한된 것도 우려스럽다는 취지였다. 유엔은 대체복무 적정 기간을 ‘군 복무의 1.5배 이내’로 권하고 있다. 징병제를 채택하면서 대체복무제를 둔 스웨덴·덴마크·이스라엘 등 오이시디(OECD) 국가들은 병원, 사회복지 시설, 환경 시설 등에서도 대체복무가 가능하다.
현행 대체복무제는 국제 기준은 물론이고 헌재 결정 취지에도 반한다. 2018년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공익 관련 업무에 종사하도록 한다면 이들을 처벌해 교도소에 수용하는 것보다 넓은 의미의 안보와 공익실현에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공익 관련 업무’의 사례로 국가기관, 공공단체, 사회복지시설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미 헌재에는 대체복무제의 위헌성을 다투기 위한 헌법소원이 124건이나 제기된 상황이다.
이러한 설시가 판결문에까지 담긴 것은 무척 이례적이지만, 그 논리 자체는 익숙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한국에서 징병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활동가는 “마치 병역거부자에게 군인만큼의 고생을 요구하는 내용 같지만, 사실 군인의 고생을 당연시하고 심지어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는 군 인권 개선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한다”며 “서로 불행 경쟁을 시켜 병역거부자는 물론이고 군인에게도 나쁜 처우를 감내하게 하는 전형적 메커니즘”이라고 꼬집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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