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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논술 / ⑪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는가

관련 논제 해결하기 [난이도 = 고등][논제 1](나), (다), (라)에는 인간 행동의 동기를 설명할 수 있는 각기 다른 관점이 나타나 있다. 이들 각각을 적용해 (가)에 예시된 행위를 설명하시오.(600±50자)

[논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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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 1)에서 적용한 세 입장 중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입장을 하나 선택하고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400±5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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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평생을 홀로 살아온 한 할머니가 대학에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거금을 쾌척해 화제다. ○○○ 할머니는 ○○대학교를 찾아와 학생들과 학교의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2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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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계자는 ○○○ 할머니가 1993년부터 매년 3천만원씩 법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왔는데, 기부할 때 항상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이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며 “○○○ 할머니의 도움으로 공부하다가 법조인이 된 학생들이 꽤 있는데 이들은 현재 ○○○ 할머니의 가족이나 다름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교에서는 이 학교 학생들을 자식처럼 아끼는 ○○○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지난 4월 신축 개관한 건물에 할머니의 이름을 붙였다. ○○○ 할머니는 이날 개관식에서 “교문을 들어서면서 못 배운 한 때문에 울고 말았다“며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배우고자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내가 가진 걸 내놓는다. 내 재산이 세상을 밝히는 법조인들을 양성하는 데 쓰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실제 기사에 나온 사례를 발췌해 일부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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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것과 같다.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가지 않는 물이 없듯이 그 본성이 선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물을 손으로 쳐서 사람의 이마 위로 튀어오르게 할 수가 있고, 또 거세게 흘러가게 한다면 산에라도 올라가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물의 본성이 아니다. 물에다 외부의 힘을 가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본성 또한 이와 같이 바깥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중략)

타고난 성정을 그대로 좇으면 누구나 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선하다고 말한 까닭이다. 선하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타고난 성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며,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밖에서 안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본래부터 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구하면 얻을 것이요, 버리면 잃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맹자> 중 ‘고자 상편’

(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그것이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지금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하는 것이 없어진다. 나면서부터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잔적이 생기고 충과 신이 없어진다.

나면서 이목의 욕망을 갖고 있어서 소리와 색깔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음란이 일어나고 예의와 문리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본성을 따르고 사람의 정을 따른다면 반드시 쟁탈로 나아가게 되어 분수를 무시하고 이치를 어지럽히는 데로 합쳐져 난폭함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반드시 장차 사법의 교화와 예의의 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사양으로 나아가고 문리에 합치되고 다스림으로 귀결된다. 이것으로써 살펴본다면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은 분명하며, 그것이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굽은 나무는 반드시 도지개에 넣거나 불에 쬐어 바로잡은 연후에 곧게 되고, 무딘 쇠붙이는 반드시 숫돌에 간 뒤에 날카롭게 된다. 이제 사람의 악한 본성은 반드시 스승이나 법도를 기다린 후에 바로잡히며 예의를 얻은 후에 다스려진다. (중략)

어떤 이가 묻기를, “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면 예의가 어떻게 생기는가?” 하였다. 이에 대답한다. 무릇 예의란 성인의 인위에서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도공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데, 그릇은 도공의 인위에서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공인은 나무를 잘라서 기구를 만드는데, 기구는 공인의 인위에서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성인은 사려를 축적하고 인위적인 일에 익숙하여 예의를 만들고 법도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예의와 법도는 성인의 인위에서 생기는 것이지 사람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저 눈으로 색을 좋아하고 귀로 소리를 좋아하며 입으로 맛을 좋아하고 마음으로 이익을 좋아하며 육체와 피부로 편안함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성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느껴서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일삼기를 기다린 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느껴도 그러하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일삼는 것을 기다린 후에 그렇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일러 ‘인위’라 이른다. 이것이 성과 인위가 생기는 바로서 그 서로 다른 징표이다. 따라서 성인은 성을 변화시킴으로써 인위를 일으키고, 인위가 일어나자 예의를 만들었고, 예의가 생기자 법도를 제정하였다.

-<순자>중 ‘성악편’

(라)

본래적 가치는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을 말한다. 행복, 의식, 쾌락, 즐거움, 만족 등이 그 예이다. 다른 것들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이러한 본래적 가치를 증진시켜 주는 정도에 달려 있다. “모든 쾌락은 본래적으로 선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쾌락주의자라고 하는데, 이들의 주장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첫째, “모든 쾌락은 본래적으로 선하다.”는 명제는 “오직 쾌락만이 선하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쾌락주의자는 쾌락 이외에도 많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느끼는 통증조차도 좋은 것일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만약 통증이 없다면 우리는 신체의 일부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완전히 알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쾌락주의자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자아실현 등과 같은 다른 여러 가지 활동을 동시에 추구한다. 다만 이러한 다양한 활동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쾌락에 봉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 쾌락과 쾌락의 근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쾌락을 얻는 근원이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저차원적 활동(예를 들면, 타인에게 욕설을 하는 것), 또는 이기적인 행동(예를 들면, 도둑질)을 통하여 쾌락을 얻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고차원적 활동(예를 들면, 깊은 명상에 잠기는 것), 또는 이타적인 활동(예를 들면, 자선 활동)을 통해서 쾌락을 느낀다. 따라서 쾌락을 추구한다고 반드시 저차원적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쾌락주의자가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오해다. “쾌락만을 탐닉할 때, 오히려 고통을 느끼고, 쾌락을 멀리 할 때, 쾌락은 따라온다.”는 쾌락주의의 역설은 많은 경우에 참임을 알 수 있다.

즉, 쾌락을 주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활동만을 과다하게 반복해서 행할 때, 오히려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도박, 마약, 술, 담배 등이 단기적으로 많은 쾌락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독이 되면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명한 쾌락주의자는 장기적인 쾌락을 즐기게 마련이다. -고등학교 <철학>(대한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