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작가의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2021)는 알려진 것처럼 제주4·3을 다룬 소설입니다. 지난 10월10일 노벨위원회와 전화 인터뷰에서 작가 스스로 꼽은 입문 추천작이기도 하지요.
이 작품을 둘러싸고 한국에서는 다소 기이한 사건이 진행 중입니다. 보수우파 일각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을 가리켜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을 폈고, 한 언론사가 ‘그 주장이야말로 역사 왜곡’이라며 팩트체크 리포트를 내보내자, 다시 ‘이 보도가 진실을 왜곡했다’는 민원이 접수되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심의에 나섰습니다. ‘한강이 역사 왜곡 소설을 썼다’는 주장을 바로잡은 언론사 보도에 심의 기관이 팔을 걷어붙인 셈입니다.
먼 훗날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대사건의 주변 끄트머리 어딘가에 유별난 후일담으로 남을 것만 같은 이 사태의 자초지종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남로당’을 빠뜨렸나”

말씀드렸듯, 서로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세 편의 진술이 엉겨 있습니다.
먼저,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이자 소설가인 김규나 작가가 지난 10월11일 페이스북에 ‘노벨문학상 수상 의미’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일부 표현이 거북할 수 있겠으나 원문을 옮깁니다.
”…수상 작가(한강)가 써 갈긴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를 담았다는 소설들은 죄다 역사 왜곡이다. ‘소년이 온다’는 오쉿팔(5·18)이 꽃 같은 중학생 소년과 순수한 광주 시민을 우리나라 군대가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이야기고, ‘작별하지 않는다’ 또한 제주 4·3 사건이 순수한 시민을 우리나라 경찰이 학살했다는 썰을 풀어낸 것이다.”
무엇이 역사 왜곡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은 없지만, 광주5·18과 제주4·3에서 국가권력의 민간인 학살은 없던 일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문화방송(MBC)은 10월14일 ‘뉴스데스크’에서 ‘알고보니’라는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김 작가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제주4·3 관련 대목만 보겠습니다.
제주4·3 역시 역사적 평가가 끝났습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정한 4·3 희생자는 1만4000여명. 이 가운데, 군인과 경찰 토벌대에게 희생당한 경우가 84.3%였고, 무장대로 인한 피해는 12.3%였습니다…(중략)…당시 순수한 시민이 경찰에 희생당했다는 한강 작가 소설의 배경은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겁니다…(중략)…이렇게 역사적 평가가 끝난 5·18과 4·3을 거론하며 한강 작가의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왜곡이자 가짜뉴스입니다.
이 보도가 있고 얼마 뒤, 방심위에 민원이 접수됩니다. 문화방송의 팩트체크 보도가 도리어 ‘진실을 왜곡했다’는 내용인데,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방송 보도에서) ‘토벌대’는 ‘군인과 경찰 토벌대’라고 구체적으로 소개한 반면, 공산주의 세력인 남로당 무장대는 단지 ‘무장대’라고만 언급할 뿐 이들이 공산주의 세력이었던 것은 밝히지 않아 군인·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방심위는 이 민원을 지난달 18일 전체회의에 ‘신속심의 안건’으로 올렸고, ‘당사자 의견진술’을 듣기로 전원일치 의결했습니다. 의견진술이란 법정제재 여부를 결정하기 전 보도 책임자의 반론을 듣는 절차입니다. 법정제재를 받은 방송사는 재허가·재승인 심사에서 점수가 깎이게 됩니다.

‘공산 폭동’ 왜곡 프레임
‘남로당’ 표현을 빠뜨린 일이 ‘방송심의 규정’(9조 공정성)을 위반한 왜곡 보도인지, 징계 사안인지는 추후 방심위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입니다. 그 논박의 현장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당시 전체회의에서 짤막하게 지나간 심의위원의 발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수 심의위원은 민원 취지에 공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4·3 사건에 대해서, 희생자가 너무 많이 나왔고 또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측면도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중략)…다만 사건의 원인을 봐야 하고, 토벌대에 의해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되었다기보다는 공산당, 특히 남로당의 5·10 총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측면에서 소동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양민들이 연루되면서, (4·3 사건은) 그런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후략)
4·3의 원인은 남로당이 일으킨 ‘소동’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반정부 폭동’을 일으키자 국가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연루되어 희생됐다는 논리 구조이지요. 조심스레 표현을 골랐지만, 사실 이러한 논지는 유구한 4·3 왜곡 프레임과 궤를 같이 합니다.
지난달 28일 제주4·3평화재단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4·3 역사 왜곡 미디어 모니터링 결과보고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2∼4년간 제주4·3 관련 언론 보도와 유튜브 영상은 물론 댓글까지 긁어모아 언어 지형을 분석한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온라인 공론장에서 작동하는 4·3 왜곡의 유형을 ‘남로당 중앙 지시’, ‘공산 폭동’, ‘진상규명·보상’, ‘반공주의’, ‘지역주의’ 등 다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이 프레임은 대부분 남로당, 좌익, 공산당을 강조하고 나아가 북한까지 끌어들이며 사태의 복합적 성격을 색깔론으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공산 폭동’ 유형이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데, 이용성 민언련 정책자문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공산 폭동 왜곡 유형’은 (남로당 무장봉기 이전) 3·1절 경찰 발포 사건이나 민관 총파업 등 사건을 (4·3에서) 분리하고, 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4·3무장봉기(1948년) 만을 강조하는 해석이다…(중략)…진상조사보고서는 남로당의 무장봉기 이유에 △경찰과 우익청년단 탄압에 대한 저항 △단일정부·단일선거 반대와 조국의 통일독립 △반미구국투쟁 등을 내세웠으나, ‘공산 폭동 유형’은 오직 ‘대한민국 정부수립 반대’에만 목적이 있는 것으로 축소한다.
‘공산 폭동 왜곡 유형’은 남로당의 ‘반정부 폭동’이 4·3의 발단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원인을 제공했으니 군과 경찰의 토벌 작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합리화로 이어집니다.
소설 바깥 ‘애도의 서사’
한국 사회가 합의한 진실은 다릅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는 반세기 만에 이루어진 첫 국가적 진상규명의 결과물인데, 이 보고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있었던 1948년이 아닌 1947년 3·1절 경찰 발포를 4·3사건의 발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남로당이 선을 넘기 전에, 정부와 경찰 쪽에서 제주 민심을 들쑤시며 과열된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지요.
4·3의 배경은 복합적입니다. 외지로부터 오랜 세월 핍박받아온 섬이라는 제주 공동체의 특수한 기억과 당대 한반도를 휘감은 냉전기 국제 사회의 경직된 공기, 그러한 긴장 상태에서 일촉즉발로 튀어 오른 3·1절 경찰 발포와 대대적인 검속·고문치사 사건, 서북청년단의 백색 테러 등을 남로당 무장봉기와 함께 살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합니다. 이어 남로당의 과오를 짚는 한편, 군·경 토벌대의 민간인 살상은 당시 국제법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유린이었으며 그 최종책임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강경작전을 지시한 이승만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지요.
한국전쟁과 보도연맹사건이 맞물리며 1954년까지 수많은 제주 주민이 희생되었고, 이 7년7개월에 걸친 집단적인 인명 피해를 보고서는 ‘제주4·3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조사위원회가 접수한 피해자 신고는 문화방송이 보도한 대로 약 1만4000여명이지만, 보고서는 미확인 피해자가 많아 실제 사망자는 잠정적으로 2만5000∼3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여기에는 전국 각지 형무소로 이송되었다가 한국전쟁 발발 뒤 즉결처분 당한 4·3사건 관련 수형인 약 3000여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유해조차 찾지 못했지요.

‘작별하지 않는다’는 구체적으로 이 수형인 희생자의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족의 유해를 찾아 평생을 바쳐야 했던 어느 4·3 생존자의 투쟁기가 서사의 한 줄기를 이룹니다. 이는 지난 반세기 국가가 내팽개친 과업이기도 하지요. 스스로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유족의 수난사는 그로부터 딸에게로, 그리고 외지인 주인공에게로 대물림되는데 이때 트라우마와 고통도 함께 전이됩니다. 아픔을 직시하는 것 밖에 진실을 알아보는 방법은 달리 없다는 듯, 한강의 문장은 눈발을 헤집으며 전진해 나갑니다.
이 소설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주장, 그 주장이 역사를 왜곡했다는 보도, 이 보도가 (‘남로당’을 빼먹어) 진실을 왜곡했다는 민원. 바로잡아야 할 왜곡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지, 방심위의 결론이 궁금합니다. 다음 전체회의는 오는 9일입니다.
미디어 잔혹사는?
유튜브 댓글부터 저녁 뉴스 날씨예보까지 미디어의 영토는 드넓습니다. 늘 논쟁이 끊이질 않는 영역이지요. 이곳에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선이 들어섰습니다. 언뜻 정치적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연루된, 자유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 투쟁담을 중계해드립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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