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식생활은 생존 본능에서 시작됐지만, 문명의 발전과 함께 먹거리가 다양하고 풍부해지면서 점차 먹는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영양 기능이 추가됐다. 그러나 폭주하는 인간 활동이 지구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이제는 사람뿐 아니라 지구 건강까지 생각하는 식생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019년 영양학과 농업, 환경 부문의 국제 연구 조직인 이트(EAT)-랜싯위원회는 이런 흐름을 반영한 지구건강식단(PHD)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위원회가 6년 만에 지구건강식단의 효과와 과학적 근거를 보강한 보고서를 새롭게 내놨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연구진도 16개국 37명에서 35개국 70명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건강식단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통곡물과 과일, 채소, 견과류, 콩류 등 식물성 식품을 주로 섭취하고 소량의 육류, 유제품, 첨가당, 포화지방, 소금으로 필요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으로 돼 있다. 통곡물(하루 210g)과 채소·과일(하루 500g), 우유·유제품(하루 250g)이 하루 식사(무게 기준)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개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면서도 토지와 물 사용,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식품으로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식단이다.

붉은 고기 30%↓, 과일·채소·견과류 60%↑
지구건강식단의 핵심은 단백질 공급원의 중심을 동물성에서 식물성 식품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소고기 같은 붉은 고기는 단백질과 일부 미네랄 함량이 높지만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아 비만과 성인병을 위험을 높인다.
위원회가 권고하는 붉은 고기 섭취량은 하루 15g이다. 일주일에 한 끼 정도만 먹으라는 얘기다. 대신 단백질 공급원으로 콩류와 견과류, 씨앗류를 하루 125g씩 섭취할 것을 권했다. 위원회의 권장량을 요약하면 과일과 채소는 하루 5번, 통곡물은 하루 세 번, 견과류와 콩류, 유제품은 각각 하루 한번, 계란은 일주일에 3~4개, 닭고기와 생선은 일주일에 두 번, 붉은 고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보고서는 이 식단에 맞추려면 세계적으로 붉은 고기는 33% 줄이고 과일, 채소, 견과류는 63%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인은 훨씬 더 많이 줄여야 한다. 한국인의 1인당 붉은 고기 섭취량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합쳐 연간 약 45kg(하루 120g)이다.

하루 4만명 조기 사망 예방 효과
이번 연구에 참여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마르코 스프링만 박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저소득 국가에서는 전분 식품과 곡물 섭취를 줄이고, 고소득 국가에서는 동물성 식품, 설탕, 포화지방, 유제품 섭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를 온라인(https://trainingidn.shinyapps.io/planetary_health_diets/)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활용하면 각자의 취향과 환경에 맞춰 다양한 지구건강식단을 구성할 수 있다.
위원회는 이 식단을 충실히 지킬 경우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암, 치매, 비만, 우울증 위험이 낮아져 조기 사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가 추산한 조기사망 예방 효과는 하루 4만명, 연간으로 따지면 1500만명이다. 전 세계 사망자의 27%에 해당한다.
위원회는 지구건강식단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지구건강식단은 지방산, 섬유질, 엽산, 마그네슘, 아연 등 여러 영양소 측면에서 현재 평균 식단보다 더 좋다”며 “녹색 잎채소, 발효 콩 식품, 해조류를 통해 철분과 비타민 B12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20%, 토지 사용 7% 감소 예상
지구건강식단으로 바꾸면 동물성 단백질 생산량이 줄어 항균제 사용량이 감소하고, 내성균 퇴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살충제 등의 유해 화학물질 사용 감소로 인한 환경과 식수 오염 감소 효과도 있다.
지구건강식단이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기여하는 효과도 만만찮은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 식량 생산, 유통, 소비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3분의 1이나 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보고서는 지구건강식단을 따르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 줄일 경우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 토지 사용은 7%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식품에 지출하는 비용도 줄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에서 4%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상위 30%의 부유층이 식품 관련 환경 영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들어,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단을 위해선 계층간 불균형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구건강식단으로 가는 8가지 실천 방안
연구진은 지구건강식단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실천 방안도 제시했다.
8가지로 이뤄진 실천 방안은 전통 건강식단의 보호, 건강한 식품에 대한 접근성 개선,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 도입, 생태계 보존, 식품 낭비 감소, 농업 종사자의 근로조건 개선,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발언권 보장, 소외계층 보호다.
연구진은 이들 해법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지역 전통 식단을 식품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키고, 건강한 식품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며, 농생태학적 생산 방식을 확산하는 것은 모두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13개 독립 연구기관이 참여해 모의실험한 결과, 이런 통합 접근을 통해 지구의 9가지 위험 한계선 중 5가지(기후, 토지, 담수, 영양소 오염, 화학물질)에 대한 압박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 위험 한계선이란 인류가 안전하게 번영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지구 시스템의 과학적 한계를 가리키는 말로, 이번 보고서 작성을 주관한 요한 록스트룀 이트-랜싯위원회 공동의장(스웨덴 스톡홀름복원력센터) 등이 2009년에 제안한 것이다.

발효 중심 케이-푸드의 잠재력 주목
한국 사회에는 지구건강식단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채식 운동을 펼쳐온 노르웨이 이트(EAT)재단 특별고문 이현주 박사(한약사)는 이번 발표에 맞춰 낸 별도의 자료를 통해 “식물성 기반의 식문화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지속가능 식단 전환 모델 국가’로 자리잡을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장류, 김치, 비빔밥 등 발효 중심의 전통 한식은 그 자체로 지구건강식단의 과학을 자연스럽게 실천해온 모델인 만큼 이를 기반으로 한 ‘저탄소 전통 한식 건강 밥상’을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률은 높지만, 발생량 자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며 음식물 쓰레기 감축 목표를 법제화하고, ‘제로웨이스트 조리법’과 ‘남김 없는 급식 모델’을 만들어 학교·병원·공공기관에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토양 생명력에 기반한 재생농업 확대, 탄소 감축 성과를 반영한 보조금제 도입, 노동자와 생산자 및 소비자 대표가 참여하는 식품정의위원회 운영, 사회 취약계층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식품 접근권 등을 한국형 지구건강식단 정착을 위한 실천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현주 박사의 한국형 지구건강식단 레시피
이현주 박사는 이와 함께 자신이 직접 구성한 한국형 지구건강식단 모델도 소개했다. 현미보리비빔밥을 주메뉴로 하고, 반찬은 청국장(된장)과 제철나물, 김, 묵은지 등으로 이뤄진 식단이다. 그에 따르면 이 식단의 온실가스배출량은 한 끼당 1.05kg으로, 전통 불고기정식에 비해 온실가스는 72%, 토지는 64%, 물은 58% 감소의 효과를 보인다.
반면 불고기정식(쇠고기 120g, 백미밥, 된장국, 나물·김치 반찬, 계란 1개)의 한 끼당 탄소배출량은 3.8kg, 토지 사용 11㎡, 물 소비 3100L로 산출된다.
그는 “건강식이라 여겨지는 한식도 축산 고기 비중이 높을 때는 환경 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발효, 통곡물, 채소, 해조류로 이뤄진 전통 한식 밥상은 이제 단순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의 과학적 해법이자 저탄소 식생활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가 제안한 한국형 지구건강식단의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구성=된장보리비빔밥 + 청국장버섯묵은지찌개 + 제철나물(취나물·고사리·도라지) + 블루베리두유요거트볼(총 열량 1100칼로리)
<된장보리비빔밥>
현미와 보리밥 위에 구운 두부, 콩나물, 당근, 표고를 얹고 된장·매실청·참기름을 섞은 소스로 비빈 뒤, 김가루를 뿌린다.
-재료(1인분) 현미 100g, 보리 100g, 두부 80g, 콩나물 60g, 당근채 40g, 표고 40g, 된장 1큰술, 매실청 1작은술, 참기름 ½작은술, 김가루 1큰술(3g).
-영양: 단백질 18g / 식이섬유 9g / 포화지방 1g이하
-건강 효과: 통곡·발효단백질 조합으로 혈당 완화, 장내 미생물 다양성 향상.
-환경 효과: 쇠고기 비빔밥 대비 온실가스 85% 감소, 토지 사용 ⅓ 수준.
<청국장버섯묵은지찌개>
청국장과 두부, 버섯, 애호박에 묵은지와 다시마육수를 더한 발효 콜라보 찌개. 청국장과 묵은지가 만나 프로·프리바이오틱스 시너지 효과를 낸다.
-재료(1인분): 청국장 50g, 두부 50g, 표고 30g, 애호박 60g, 대파 약간, 들기름 ½작은술, 묵은지 80g, 다시마 5×5cm 1장 + 물 200ml.
-영양: 단백질 20g / 지방 6g / 섬유질 5.5g / 요오드 50µg / 나트륨 +250mg
-건강 효과: 장내 유익균 증식, 면역 조절, 소화 향상.
-환경 효과: 소고기찌개 대비 온실가스 배출 95%, 물 사용량 65% 감소.
<제철나물 3종>
취나물·고사리·도라지를 각각 조리해 한 접시에 담는다. 채소 200g, 단백질 6g, 섬유질 6g, 불포화지방 4g.
취나물: 70g, 간장 ⅓작은술, 들기름 ⅓작은술 → 폴리페놀·칼슘 풍부.
고사리: 60g, 간장 ½작은술, 들기름 ½작은술 → 식이섬유·칼륨 보강.
도라지: 70g, 식초 ½작은술, 매실청 ½작은술, 들기름 ½작은술 → 사포닌·항염 효과.
환경 효과: 국산 로컬푸드, 운송에너지 최소화로 탄소 배출 30% 감소.
<블루베리두유요거트볼>
두유요거트에 블루베리, 바나나, 아몬드슬라이스, 호박씨, 현미플레이크를 더한 후식.
-재료(1인분): 두유요거트 150g, 블루베리 50g, 바나나 50g, 아몬드슬라이스 10g, 호박씨 5g, 현미플레이크 20g.
-영양: 단백질 11g / 불포화지방 8g / 칼슘 120mg / 식이섬유 4g.
-건강 효과: 장내 유익균 + 항산화 + 혈압 안정 + 오메가-6 균형.
-환경 효과: 낙농 대체로 메탄 배출 없고, 물 사용량 60% 감소.
*논문 정보
The EAT–Lancet Commission on healthy, sustainable, and just food systems.
DOI: 10.1016/S0140-6736(25)01201-2 External Link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