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미국·일본이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에 나서기로 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원전 굴기’를 견제하려는 전략적 기술동맹의 등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한·미·일 외교장관이 소형모듈원자로(SMR) 보급을 위한 협력각서(MOC)에 서명한 것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이번 협력 각서의 목적은 한미일 원전 업계가 인태 지역을 시작으로 글로벌 SMR 시장에 공동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협력 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한·미·일 외교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소형모듈원자로 보급을 위한 협력각서(MOC)에 서명했다. 이는 가격 경쟁력 등을 앞세워 세계 원전 시장에서 지분을 확대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3국은 초반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소형모듈원자로를 수출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이 소형모듈원자로 도입 계획을 발표했으며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미 미국, 일본과 협력 중이다.
‘원전 공급망의 진영화’ 움직임으로 해석
미국은 소형모듈원자로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시공을 중단했고,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 공급망이 축소된 상황이다. 한국은 1970년대 후반 고리 1호기 건설 이후 원전 시공 역량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납기와 예산을 지키는 데 정평이 나 있지만, 소형모듈원자로 기술력은 미국과 격차가 있다. 결국 미국의 설계 기술, 일본의 공급망, 한국의 시공 능력을 합해 시너지를 내고, 소형모듈원자로 기술의 표준을 만들어간다는 구상이다.
특히 2050년께 전 세계 원전 수요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소형모듈원자로 분야의 한미일의 협력은 상업적·경제적 고려를 넘어, 국가들의 에너지 정책을 좌우하는 전세계 원전 분야에서 중국, 러시아의 급속한 확장을 차단하려는 전략적 고려가 반영된 ‘원전 공급망의 진영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현재 러시아 기업 로사톰은 원전 건설부터 원료 공급, 사용후 핵연료 처리와 폐로까지 원자로와 핵연료 공급을 주도하면서 세계 대형 원전 건설 시장의 강자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도 90% 이상을 국내화한 원전 공급망을 앞세워 앞으로 급속하게 해외로 진출할 잠재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중국은 올해 안에 세계 최초로 상업용 소형모듈원자로를 설치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원전은 건설 시작부터 폐로까지 100년 이상이 걸리는 사업이고 현재 많은 국가들이 원전 건설에 나서면서 중·러 중심의 원전 생태계가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이번 한미일 소형모듈원자로 협력 각서 체결은 미국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일 3국 정부가 “지난해 상반기부터 협의를 개시해 올해 상반기에 문안 내용에 합의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때 열린 3국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서명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인태 지역은 앞으로 신규 원전 수요가 가장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라며 “한미일의 역량이 결합한다면 역내 국가들에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MOC 체결 후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이를 환영하는 반응도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 농축·재처리 협상 긍정적 동력될까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한미일 소형모듈원자로 협력 참여가 차세대 원전기술을 확보하고 표준화에 동참한다는 것과 함께, 진행중인 한미 농축·재처리 협상에도 긍정적인 동력이 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한미일 소형모듈원자로 협력이 한미 농축·재처리 협상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미국과 소형모듈원자로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미국의 원전 공급망 강화에 기여할 역량을 입증하면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에도 도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도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동맹을 아시아 지역에 갖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전에는 비확산 측면에서만 한국을 봤다면, 이제는 미국이 한국을 상호 이익이 되는 원자력 분야 파트너로 보고 SMR 협력을 요청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미 농축·재처리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김지훈 한미 원자력협력 티에프(TF) 부대표도 지난 9일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한미가 핵연료 파트너십을 강화하면 현재는 목표에 불과한 소형모듈원자로를 대규모로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되고 한미 양국의 에너지 안보도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대표는 아직 개발 단계인 소형모듈원자로을 상업화하려면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하다면서 “(한미가) 성공적인 협의를 통해 한국의 민수용 우라늄 농축 역량 확보에 합의한다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안정적이고 믿을 수 있는 농축 우라늄 공급을 확보한다는 목적 달성에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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