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이 4년 징역을 구형하며 내달 선고만을 남겨두게 됐다. 전 수행비서인 김지은씨가 지난 3월 방송에 나와 피해를 고발한 이후 진행된 공방과 재판 과정은 우리 사회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 어느 성폭력 피해자든 고통의 경중을 따질 순 없는 일이지만, 안씨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이자 평소 젠더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을 해온 그이기에 더더욱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너나없이 #미투 이후 한국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후 과정을 짚어보면 근본적으로 얼마나 달라졌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문제삼는 지라시가 돌며 ‘피해자의 순수성’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특히 법정에서 피고인 쪽 변호인이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학벌 좋은 여성” 운운한 것은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침묵할 수밖에 없게 했다는 사실을 외면한 발언이었다. 애초 재판 전 과정을 비공개로 해달라는 검찰의 요청을 법원이 일부만 받아들인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안씨 쪽 증인들이 피해자의 평판과 행실을 문제삼는 발언만 여과없이 보도되는 길을 터준 셈이 됐다. 그렇다고 언론의 책임이 결코 가벼워질 순 없다. 일부 언론은 증거자료로 낸 김씨의 병원진단기록까지 선정적인 제목으로 내보냈다. 아무리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 해도 용납될 수 없는 이런 보도 행태는 많은 피해자들에게 성폭력 증언을 하는 일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줄 뿐이다.
안씨에게 적용된 혐의인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최고 징역 5년 이하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1년 이상 실형이 선고된 예가 드문 데서 보듯, 그동안 법은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감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을, 권력관계 속에서 피해가 더 지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안희정 재판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미투 이후 우리 사회 변화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안씨가 ‘지위로 위력을 행사한 적 없다’고 주장한 가운데 김씨는 이날 재판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를 살게 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말했다. 공정한 법의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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