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4일 베이징 천단 앞에 서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4일 베이징 천단 앞에 서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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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베이징의 천단은 우주의 질서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명 영락제 때 처음 지어졌지만,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만든 것은 청의 전성기를 과시한 건륭제였다. 자신이 만주족 출신이지만 천명을 받은 천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건륭제는 천단을 자금성의 4배 크기로 확장하고 재위 동안 155차례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청이 부국강병의 정점에 올랐던 시기였다.

지난달 13~15일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한 시진핑 주석은 함께 천단을 둘러봤다. 미국 대통령의 9년 만의 방중은 시 주석이 미국과 대등한 중국, 트럼프의 미국보다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황제’의 모습을 국내외에 연출한 무대가 됐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의를 시작하면서 “세계가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중·미 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기존 패권국이 신흥 강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하면서 전쟁이 벌어지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미국은 쇠퇴하고, 이제 천명은 중국으로 오고 있다. 미국은 이를 인정해야 하고, 미국이 전쟁으로 이를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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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부의 집무실과 거주 공간인 중난하이를 함께 산책한 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방문”이라고 했다.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팩트시트에도 ‘역사적 합의’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렇다면 두 정상이 이번 정상외교에 담은 ‘역사적’이란 의미는 무엇일까. 시진핑이 제안한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라는 미-중 경쟁의 새로운 틀에 트럼프가 동의했다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양국 정상이 중-미 간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를 수립하는 데 동의한 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컨센서스”라고 말했다. 미·중이 “계속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충돌은 방지하는 ‘관리된 경쟁’을 하는 새로운 미-중 관계를 제도화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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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제 미국과 공동으로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앞에 두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가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2013년 6월 시 주석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며 ‘신형 대국관계’를 제안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거부했다. 중국에 비해 훨씬 우세한 국력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 미국은 ‘아시아 회귀’ 전략을 발표해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은 국내 정치의 혼란과 중동 정세에 번번이 발목 잡혀 중국 견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사이 중국은 경제·군사적 능력을 급속히 키웠고,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태평양을 동서로 나눠 중국의 세력권을 인정하라’는 시 주석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시 주석은 상대가 트럼프라는 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금도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대중 강경파들이 우세하다. 하지만, 장기적 전략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중국이 제안한 거래에 동의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중국산 제품에 145% 관세 폭탄을 호기롭게 던졌던 트럼프는 중국의 ‘희토류 카드’에 속수무책이었고 이제는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의 수렁에 빠져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신호는 적어도 트럼프의 남은 임기인 2029년 1월까지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지 않고 거래할 것’이라는 데 트럼프가 합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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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이 ‘이미 미국은 쇠퇴하고 중국의 질서가 왔다’는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자신감이 커졌고, ‘천명을 받은 승리자’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지만, 미·중 국력에 여전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고 앞으로 수십년이 걸릴 치열한 경쟁의 판을 짜고 있다.

2017년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었을 때부터 시진핑 주석은 마오쩌둥의 ‘지구전론’을 계속 인용해왔다. 마오쩌둥이 1938년 일본 제국주의 침공에 맞서는 전략으로 제시한 지구전론은 약자가 강자에 맞서 싸우는 3단계 전략이다. 힘이 상대에 비해 약한 1단계에서는 ‘전략적 방어’, 힘이 거의 비슷해지면 일진일퇴의 싸움을 계속하는 2단계인 ‘교착 상태’(相持), 마침내 적보다 강해진 3단계에서는 ‘전략적 공세’로 최종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지금 중국이 평가하는 미-중 관계는 중국이 강자인 미국의 일방적 공세를 방어하는 1단계가 끝나고 이제 동등한 위치에서 맞서 경쟁할 수 있는 2단계로 들어섰다는 판단이다. 미국이 우위에 있는 ‘군사력’이나 금융 제재를 중국에 함부로 쓰지 않고, 경제, 첨단기술, 군사, 외교 영향력 등에서 이제부터 더 치열하게 경쟁하자는 ‘게임의 규칙’을 중국 주도로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은 첨단기술과 제조업을 더욱 강화하고 아시아와 유럽에서 미국의 동맹 시스템이 흔들리는 상황을 활용해 나갈 것이다.

시진핑 주석에게 ‘천명이 중국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만이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는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대만 문제를 잘못 다루면 미-중 간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건설적 전략 안정관계’가 유지되려면 대만 문제에서 미국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에 대해 시 주석과 “매우 깊이 논의했다”면서 미 의회가 이미 승인한 대만에 대한 130억달러 규모 무기 판매에 대해 자신이 “승인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대만 정책에 대해 중국에 명시적 양보를 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미국이 1982년 대만에 제시한 ‘6대 보장’을 통해 ‘무기 판매를 중국 쪽과 사전 협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깨고 이 문제를 미-중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 자체로도 중국이 중요한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누군가가 ‘미국이 우리를 밀어주니 독립하자’고 말하는 상황은 원치 않는다”고도 했다. 중국이 요구해온 ‘대만 독립 반대’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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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대만을 “협상 칩”으로 지칭하면서, 중국과 거래하겠다는 의도는 명확히 했다. 관세 압박이나 군사력 과시가 중국에 통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한 트럼프는 ‘대만 카드’를 미국의 손에 남은 중요한 협상 칩으로 들고, 중국과 ‘밀당’을 하려 할 것이다. 미국이 대만에 판매하기로 한 무기 수출 품목 가운데 중요한 품목이 빠지거나 판매가 취소될 수도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구체적 성과가 적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것이 트럼프-시진핑 거래의 끝이 아니다. 2026년 한해 동안 추가로 예정된 9월 시진핑의 미국 방문, 11월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1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두 강대국 정상의 회담이 거듭되면서 미·중의 큰 거래들이 완성되어 갈 것이다.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미·중이 설치하기로 합의한 무역위원회와 투자위원회는 미·중의 ‘빅딜’을 실현할 통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첨단기술을 제외한 분야에서 중국의 대미 투자나 수출을 허용하고 반대로 중국은 미국의 농산물과 에너지 등을 대규모로 구매하는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반대급부로 중국이 시장을 미국 기업들에 더 개방하는 거래도 가능하다. 미·중은 인공지능(AI) 관련 논의도 검토 중인데, 인공지능에 대한 국제 규칙을 두 강국 주도로 결정하려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 기업들의 투자에 문을 활짝 연다면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한 한국 등의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도 중국과의 경쟁으로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이 당분간 미-중 충돌의 위험을 낮춘 것은 미·중 어느 한쪽에 줄을 서라는 압박을 줄였다는 점에서 한국 등에 기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세계의 주요한 사안이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간 빅딜’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리스크도 커졌다. 19세기 말~20세기 초처럼 강대국들이 군사력으로 세계를 분할하는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을 수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핵심기술, 사이버, 우주 등 새로운 영역이 더 중요해졌고, 북극 해빙으로 아시아와 유럽, 서반구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지리적 ‘세력권’ 분할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정성철 명지대 교수)이 되었다.

주요 2개국(G2)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장기판 위 말이 되지 않으려면, 한국은 강대국 ‘거래’의 기회와 리스크를 신중하게 따지면서 자강과 연대에 더 힘을 기울일 때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