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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신화 속 ‘신들의 어머니’ 레아 여신을 기리던 봄 축제(5월 둘째 일요일), 영국에선 사순절 중 넷째 주일에 세례 받은 교회를 찾아가는 ‘마더링 선데이’(3월 마지막 일요일)를 어머니날의 유래로 여긴다. 나라마다 뿌리가 다른데, 한국 어버이날의 기원을 추적해보면 미국 여성들의 평화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

버지니아에 살던 앤 리브스 자비스는 자녀 13명 중 많은 아이를 감염병으로 잃었다. 이후 공중보건 운동을 펼치던 그가 평화 운동으로 방향을 튼 계기는 남북전쟁이었다. 자비스는 여성단체들이 남군과 북군 모두를 돕도록 이끌었다. 전쟁 뒤인 1868년에는 평화 증진을 목적으로 ‘어머니 우정의 날’ 행사를 조직했다.

자비스의 활동은 동시대 활동가 줄리아 워드 하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노예제 폐지론자이자 여성인권과 평화 운동가였던 하우는 1870년 ‘어머니날 선언문’을 발표했다. 국적과 관계없는 여성들의 총회를 설립해 세계 평화 증진에 기여하자는 요청이었다.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하우는 1872년부터 매년 6월 둘째 일요일을 ‘평화를 위한 어머니의 날’로 기리자며 그 정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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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자비스와 하우의 활동을 어머니날의 기원으로 평가하지만, 현대적 어머니날의 저작권은 자비스의 딸 애나 자비스에게 있다. 그는 어머니의 기일인 5월9일과 가까운 5월 둘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만들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상징으로 채택했다. 이후 어머니날 감사편지 쓰기 운동이 큰 호응을 얻자,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이날을 공식 국경일로 지정했다.

안타깝게도 이후 어머니날은 주창자들의 이상에서 멀어져 꽃집과 카드 회사의 상술이 판치는 상업적 명절로 변질됐다. 애나 자비스는 1943년 기념일 폐지 청원 운동 등 어머니날의 상업화를 막는 데 전 재산을 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애나 자비스의 후손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어머니날을 기념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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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1956년 유교적 효 사상과 미국의 전통을 결합해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다. 6·25 전쟁 뒤 가사에 생계 부담까지 떠맡은 어머니들의 희생을 기릴 필요가 있었다. 1910년 미국에서 아버지날(6월 셋째 일요일)이 제정될 때처럼, 한국에서도 “아버지날은 왜 없냐”는 여론이 높아졌다. 아버지날을 따로 두는 대신 1973년 어머니날 명칭을 어버이날로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전정윤 논설위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