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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BAS)의 지구종말시계 초침이 지난해 1월28일(현지시각) 자정 89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BAS)의 지구종말시계 초침이 지난해 1월28일(현지시각) 자정 89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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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근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와 팻맨이란 이름이 붙은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그해 핵무기 출현을 주도하거나 아이디어를 낸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 시카고대 과학자들이 모여 원자력과학자회보를 발행했다. 2년 뒤 그 잡지 표지에 랭스도르프가 디자인한 ‘운명의 날’ 시계가 등장했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인류에 경고하기 위해서다. 당시 시계의 초침은 종말을 뜻하는 자정에서 7분 전을 가리켰다.

늘어나는 핵무기 수와 반대로 시간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 2007년부터는 기후변화가 종말의 결정 변수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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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24년부터 인공지능(AI·에이아이)의 잠재적 위협이 처음 반영됐다. 올해는 전년보다 4초나 단축된 자정 전 85초를 가리킨다. 에이아이는 핵무기, 기후변화와 함께 인류를 멸망시킬 3대 위협으로 떠올랐다.

주식시장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한국 증시에 상장된 이티에프(ETF)만 보더라도 에이아이를 갖다 붙인 종목이 90개가 넘는다. 흔한 말로 에이아이는 요즘 가장 ‘핫하다’. 에이아이는 미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에이아이가 미래고, 미래가 곧 에이아이다. 에이아이가 불러올 거대한 변화는 온통 장밋빛 일색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더 나아가 국가든, 에이아이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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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에서 에이아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반향을 얻기 어렵다. 에이아이 시대 인권과 개인정보 보호, 안전장치 마련이나 노동권 약화 방지를 외쳐도 ‘올바르지만 한가한 소리’로 취급받기에 십상이다.

2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 제작 스태프들이 에이아이와 그 뒤에 있는 자본에 맞서 파업했다. 한겨레 기자가 만난 그들은 자본이 비용 절감을 위해 빠르게 도입한 에이아이로 실제 생존권을 빼앗겼다고 외쳤다. 그들이 태평양 건너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다음엔 당신 차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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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로스앤젤레스에서 불과 네댓시간 떨어진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시이에스(CES)가 열렸다. 최고 흥행작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였다. 신화 속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는 인간 노동을 대체할 만한 힘을 상징한다. 2년 안에 공장에 투입된다는 기대감에 아틀라스를 만든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소유한 현대차의 주가가 급등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시이에스(CES) 2026에서 자동차 부품을 옮기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시이에스(CES) 2026에서 자동차 부품을 옮기고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뜨겁게 달아올랐던 주가는 지난주 현대차 노조의 뜻밖의 성명이 나온 뒤 진정됐다. 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는 단 1대의 로봇도 공장에 들여올 수 없다고 했다. 고연봉 대기업 노동자들의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딴죽걸기로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이 느끼는 위협은 실재적이다. 노조는 로봇 대량 양산과 생산 현장 투입 시 고용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노보에 이렇게 썼다. “평균 연봉 1억원을 기준으로 24시간 가동 시 3명(3억원)의 인건비가 들지만, 로봇은 초기 구입비 이후 유지비만 발생하므로 장기적으로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가에 좋은 명분이 된다 … 인공지능 로봇 투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할리우드 노동자 다음 차례가 한국에서는 자동차산업 노동자, 아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이 될지 모른다.

산업혁명 시기 ‘러다이트 운동’(기계 파괴)이 실패했던 것처럼 결국 에이아이가 저항을 뚫고 노동자를 대체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에이아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고 희미해진다는 데 있다. 2~3년 전만 해도 세계 지성들과 명사들은 에이아이 개발에 제동장치를 달지 않으면 인류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외쳤고, 세상은 주목했다. 에이아이의 산파 노릇을 한 제프리 힌턴 교수는 에이아이로 인한 인류의 멸망 가능성을 계속 경고해왔다. 그런 목소리가 이제는 잘 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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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아이가 인류에게 축복이 될 수만은 없다. 누군가의 업무를 보조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번영에 일조하겠지만 어느 시점에 공동체의 생존에 재앙이 될 수 있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하나이자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이달 중순 시엔비시(CNBC)와 인터뷰하면서 에이아이를 ‘램프 밖에 나온 지니’에 비유했다. “핵무기를 개발했을 때, 램프 안 지니가 밖으로 나왔다. 에이아이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에이아이란 지니를 램프 안으로 다시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관하면서도, 에이아이를 주도하는 리더들조차 이 기술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어쩌면 에이아이가 핵무기보다 먼저 인류를, 또 어쩌면 핵무기로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그 섬뜩한 상상은 에이아이가 우리 삶에 어떤 위험이 되고 있는지 인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순간 더 빨리 현실화할 수 있다.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