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려 일어서는 사람들, 어딘가에서 볼일을 마치고 합류하는 사람들, 그저 돌부처처럼 붙박이로 있는 사람들까지 자신의 리듬에 따라서 흐르거나 멈추기를 거듭하던 지난겨울의 거리에서 나를 스쳐 갔던, 내가 스쳐 갔던 광장의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전직 대통령이 벌인 미욱하고 어이없는 짓 때문에 얼음장 같은 찬 바닥에서 고생을 했지만 그 겨울의 시간은 모든 것이 명징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탄핵하라!’ ‘파면하라!’ ‘체포하라!’ 단호한 어휘로 민주주의를 습격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고 반드시 이겨야 했던 싸움이었다. 홀로 나와 앉아 있어도 호의가 오고 받은 호의를 다시 호의로 돌려주며 따뜻했다. 방한에 필요한 물품이 때맞춰 건네지고 달고 뜨시고 든든한 요깃거리가 부족하지 않아 허기를 느낄 새가 없었다. 그것은 꼭 겨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같은 방향으로 걷는 이들이 있어서 낯선 동네의 밤길이 무섭지 않았고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 몇분 사이에 서로의 광장에서의 수고를 격려하고 다음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그 겨울 이후 끝나야 할 일은 끝나고 시작해야 할 일은 시작되어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더 분명해져야 할 것들이 있지만 그 끝의 시작에서 법률과 행정과 언론과 같은 시스템을 굴리는 이들이 자기의 일을 해내려 애쓰고 있다.
이제 나는 명징해 보이던 것 너머 생략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지치지 않고 내달렸고 마침내 도착했지만 그곳은 사실 내가 출발한 원점이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끝에서 다시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광장을 통과한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는 상상력이 없으면 생성될 수 없는 것이다.
회색 교복에 패딩도 걸치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움츠린 남학생들이 내가 앉은 아스팔트 바닥으로 들어와 앉을 때, 남는 깔개며 신문지 뭉치를 모아 그들의 엉덩이 아래로 밀어 넣어주었지만 목례를 하는 그 학생들이 수능을 치른 고3일지 취업을 앞둔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일지는 알 수 없었다. 혼자인 나의 옆에 혼자인 또 다른 여성이 앉아서 전화기를 붙들고 “한시간만 있다가 갈게” 허락을 구하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도 그 사연을 궁금해할 수는 없었다. 옷가게 점원으로 일한다는 젊은 여성이 시간이 날 때마다 나오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처음 해보는 데모가 재미있다고 어깨를 으쓱할 때, 그의 서울살이는 어떠한지 오순도순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일을 하고 다시 광장으로 나오려면 쉬어야 했다. 연설 잘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위원장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다며 ‘조합장’이라 부르는 그의 말이 구수해서 웃었던 것 같다. 열차가 들어와 반대 방향으로 헤어질 때의 여운이 남아서 나는 그가 서울의 어느 옷가게에서 일할까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피난처가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여성, 학기가 끝나가는 학교의 교문을 나섰을 때 마땅히 갈 곳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열여덟 혹은 열아홉의 청소년들, 얼음 아스팔트 위라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곳이 따뜻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광장에 있었다. 연결을 꿈꾸는 사람들이 광장에 나온 것이라면 광장은 너무 컸고 성겼다. 그래서 광장의 시민과 개인 사이, 아스팔트와 골방 사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장소를 떠올렸다. 옷가게 점원과 내가 우리 생활의 불안을 넘어 꿈꾸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광장보다는 조금 더 작고 낮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했다.
나의 상상력이란 건 이렇게 보잘것없는, 광장에 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 좀 더 작은 공간에서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작은 상상조차 가능성이 되려면 다른 언어로 말하는 다른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외로운 이들로 붐볐던 지난겨울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생활세계와 유리된 그들만의 정치의 관람객이 되고 주식 그래프를 해설하는 경제 뉴스의 관람객이 되었다.
거대 빵집에서 일하던 청년의 과로 사망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그저 진공의 경기장, 원래 서 있던 트랙 위로 돌아왔구나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숨 막히는 경기장에서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노동이 점점 외로워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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