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 논설위원
전후 80년간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각각 추진해 왔던 미국과의 관계를 기축으로 삼는 외교안보 정책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사실상 파탄에 이르게 됐다. 양국 모두 미국이라는 절대적 패권국과 동맹을 맺으며 안전을 보장받았고, 또 이 나라가 제공하는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지금의 놀라운 번영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두 나라 국민들이 흘린 피땀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 전략이 ‘온실 속의 화초’와 같은 꿀 빠는 길이었음을 부정하긴 쉽지 않다.
3년 뒤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하면, 미국이 다시 예전 같은 ‘자애로운 패권국’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까. 최근 미국 내의 여러 처참한 현실을 보고 있자면, 트럼프 현상은 미국 파멸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한·일은 전후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온실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게 작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개인적 결론이다.
‘미국의 몰락’과 함께 두 나라의 전략적 곤경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움직임은 북이 멀쩡히 핵을 손에 쥔 채 오랜 고립에서 차츰 빠져나오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자신감을 회복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핵무장은 “우리 국가의 생존이냐 사멸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취한 필수불가결의 선택”이었다며 “비핵화는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진보 정부의 이른바 ‘햇볕정책’에 대해 일본의 보수들은 한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이 접근법의 숨겨진 본질이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중심으로 한 흡수통일이었음을 부정할 수 있는 한국인은 사실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해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었다”는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지난해 1월2일 담화는 역대 한국 진보 정부가 추진해온 대북 정책의 의미를 정확히 꿰뚫은 것이었다. 이런 냉정한 전략적 심사숙고 위에서 튀어나온 것이 이른바 ‘적대적 2국가론’일 테니 이재명 정부가 아무리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북한을 움직이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의 사정은 더 우울하다.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지난해 10월 펴낸 책 ‘숙명의 아이’(아베 신조 전 총리를 이르는 말)에 극히 흥미로운 대화가 등장한다. 2022년 1월11일 취임 석달째를 맞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아베 전 총리를 도쿄의 일본요리점인 ‘와다쿠라’로 초대했다. 대북 정책과 납치 문제 등에 대해 조언을 듣기 위해서였다.
한동안 선문답을 늘어놓던 아베는 결국 김정은 체제의 붕괴 없이 납치 문제 해결(나아가 북-일 관계 정상화)은 불가능하다는 ‘진심’을 내뱉고 만다. “완전 해결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의 김 왕조가 끝나서 어떤 레짐(체제)이 생겨나든, 그것이 중국의 영향력이 강한 괴뢰정권이라 해도 그런 모양이 갖춰지지 않는 한 어렵지 않겠나.” 결국 김 정권이 살아남았으니 핵·미사일·납치라는 3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아베식 대북 정책은 처참히 실패했다고 결론 내야 한다.
그리고 중국으로 눈길을 돌려 보면, 사실상 답이 없다. 일본에는 “대만 유사사태는 곧 일본 유사사태”라는 용감한 말을 하는 정치가가 있지만, 이 모든 ‘말잔치’는 미국이 서태평양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 사태에 적극 개입할 때나 통용될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뜻 밝히듯 미국이 대만 사태에서 발을 빼게 된다면, 한·일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지난 10여년 동안 일본의 주류 보수 사이에선 진정한 한-일 협력을 위해선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한국을 멸시하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피차 서로의 손을 잡았던 것은 한·미·일 3각 협력의 틀이 필요하다는 ‘도구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극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역시 2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이며 “국제 사회의 여러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어, 김(!)·화장품·드라마를 언급하며 “미래 지향”을 입에 담았지만, 예상대로 ‘역사를 직시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곧 다가올 ‘미국 없는 국제 질서’ 속에서 두 나라는 더 긴밀히 협력해야 할 텐데, 고작 꺼내 든 말이 김이라니…,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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