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세상읽기]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대한민국 대통령이 영국의 한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정부는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러시아도 북한에 무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런 러시아 정부 반응에 대통령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4월19일에 벌어진 일들이다.

대통령의 무기 지원 발언은, 미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고 미국 정부의 요구로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한 게 도청 내용에 포함된 사실이 공개되고, 뒤이어 우리 군의 해외 무기반출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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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된다면,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공식화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4년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요구에 모든 것을 내놓으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자초하고, 나아가 5천만 국민의 안전과 생계를 전에 없던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일단 국회가 국정조사안, 무기 제공 결정 및 해외 반출 승인 과정 책임자 탄핵안 발의 등 조처를 해나가면서,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무슨 약속을 하든 돌이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해두는 게 시급하다. 교전국에 살상 목적의 무기 제공은 현행 법률 위반이므로 명분은 현재 상태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미-러, 미-중 갈등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세계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관한 시민적 동의를 묻는 다양한 공론장이 열려야 한다. 국회, 정당뿐만 아니라 학계, 언론, 시민단체, 동네 모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5천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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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대통령실, 관련 장관들에게 위임해두고 이런저런 권고를 하면서 여유롭게 지켜볼 때는 지났다. 대통령이 돌출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숨기기에 급급하고, 정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나 하는 총리를 지켜보며 1년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누가 결정하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사이 한국 정부의 외교는 대일, 대중, 대러, 대미 정책 모든 영역에서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 역대 정부가 유지해온 공통 궤도를 한참이나 벗어나버렸다. 미국 정부가 국제 군사분쟁에 한국 정부를 개입시키려 했던 시도는 늘 있었다.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김대중 정부 때는 아프가니스탄에, 노무현 정부 때는 이라크에 파병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지켰던 것은 ‘평화적 목적’이라는 명분이었고, 그 명분을 고수하면서 전투병 파병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지난 수십년 역대 정부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외교적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교전국에 살상무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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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어느 일방에 휩쓸리지 않고 실리외교를 추구해온 것도 지난 35년 역대 정부의 공통 궤도였다. 북방 정책으로 대중·대소 수교를 이뤄냈던 것은 노태우 정부였고,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면서 중국과 긴장 관계를 만들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결정한 것이 박근혜 정부였다. 역대 정부들이 중국과 러시아가 좋아서 그랬던 게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계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 5천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현안에 관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일본 정부와는 군사적 거리를 유지했던 것도 역대 정부의 공통된 노선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함께 군사훈련을 하거나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역대 정부들이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군사적 밀착을 어떻게 해서든 피해왔던 것은, 5천만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부의 외교는 ‘무능외교’ ‘굴욕외교’라는 단편적 비판이나 희화화의 대상이 될 단계를 뛰어넘었다. 전 국민이 나서 진지하게 우리의 미래를 걸고 현 정부에 물어야 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