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부부 대화는 아주 오래전에 끝났어요.”
우울증으로 상담실을 찾은 40대 주부 ㄴ씨는 남편과 대화가 없습니다. 작은 일에도 눈치를 보고 이 말을 해도 될까 먼저 재는 그녀와 달리 남편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습니다. 처음엔 상처를 받았고, 다음엔 지쳤고, 결국엔 말문을 닫았습니다. “얘기해도 바뀌지 않더라고요. 그냥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상담을 이어가면서 ㄴ씨가 털어놓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남편이랑 얘기하고 싶어요.” 포기했다고 했지만, 포기가 완전하지 않았던 겁니다. 대화를 완전히 놓아버린 사람은 더 이상 아쉽지도 않습니다. 아직 고민한다는 것은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왜 부부의 대화는 이렇게 어긋나는 걸까요?
많은 분이 “우리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라고 말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에서 반복적으로 발견하는 패턴은 성격 차이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서로 상대의 말보다 자기 생각을 먼저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오늘 직장에서 너무 힘들었어.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 때 아내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요? “진짜 그만두려는 건 아니겠지?” “남들도 다 힘들게 다니는데.” 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배가 불러서 그러는 거 아니야?” 남편은 그냥 하소연하고 싶었을 뿐인데, 대화는 순식간에 각을 세웁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힘든 하루를 털어놓을 때 남편은 해결책을 찾으려 합니다. 공감이 아니라 분석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아내는 들어주길 바랐는데, 남편은 고쳐주려 합니다. 선의가 상처가 되는 순간입니다.
결국 대화가 단절되는 건 서로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상대의 말 속에 담긴 진짜 마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의 속뜻은 ‘나 오늘 많이 지쳤어’입니다. “왜 나한테만 이러냐”는 말의 속뜻은 ‘나 좀 봐줘’입니다. 그 마음에 닿지 못하고 말의 표면만 붙잡으면 대화는 매번 엇갈립니다.
말을 닫은 부부 사이에서 제가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은 ‘더 잘 말하기’가 아닙니다. ‘덜 빨리 판단하기’입니다. 상대가 말할 때 내 안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잠깐 내려놓고 저 사람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먼저 헤아려보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연습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향해 잠깐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 말입니다. 그 한 박자가 쌓일 때 오래 닫혔던 문이 조금씩 열릴 수 있습니다.
용인정신병원 스마트낮병원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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