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책으로 오픈마켓 정산기일을 의무화하고 정산 대금을 별도 관리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지만, 업계에서는 ‘사후약방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전자상거래업체(이커머스)는 이미 정부 방안보다 훨씬 짧은 주기로 판매자에게 정산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대책의 영향은 소규모 업체에만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한다.
7일 정부는 오픈마켓의 정산기일을 최장 40일 이내로 의무화하고, ‘돌려막기’를 방지하기 위해 입점업체에 지급해야 하는 정산대금의 일정 비율을 별도로 관리하도록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상품 중개 업무만 하는 탓에 거래 당사자가 아닌 오픈마켓의 특성상 일반 유통업자(60일)보다 더 짧은 정산기일을 적용해 원활한 정산 의무를 부여하겠다는 취지다. 쿠팡과 컬리처럼 직매입과 오픈마켓을 동시에 운영하는 업체들의 경우, 직매입은 기존 60일 내 정산(위탁판매는 40일), 오픈마켓은 최장 40일 내 정산 규정을 각각 적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뒤늦은 대처라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가 많이 이용하는 업계 상위권 오픈마켓은 대부분 정산주기가 정부 방안(최장 40일)보다 짧고, 에스크로(구매안전서비스) 등 대금 유용방지책이 마련돼 있다”며 “업계에서 가장 위험도가 높았던 티메프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뒷북 대책을 내놓은 듯싶다”고 말했다.
실제 네이버쇼핑과 신세계그룹 계열 옥션·지마켓, 에스케이(SK)그룹 계열 11번가 등 대형 업체들은 소비자 구매확정 기준으로 1~7일 안에 판매자에게 대금을 정산하고 있다. 쇼핑 플랫폼인 카카오 지그재그·무신사·에이블리 등도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30일의 정산주기로 운영한다. 또한 이들 업체는 에스크로를 도입했거나 정산 계좌를 따로 운영 중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소규모 버티컬 플랫폼(특정 카테고리에 집중하는 업체) 중 일부는 이번 조처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보고플레이, 올해 바보사랑 등의 업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대금 정산을 못 해 도산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정산기일을 2~3달로 운영해왔던 업체들은 정산 기일이 절반 이하로 줄어 자금흐름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적용 유예기간을 설정해 업체가 적응할 시간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티메프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 원인은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플랫폼들이 상품 판매 수수료 수입보다 더 많은 할인 마케팅을 벌이면서까지 몸집을 불린 데 있다고 진단한다.
한 업체 임원은 “수수료 수입보다 많은 할인을 하며 시장 점유율 높이기에만 골몰하고 손실이 난 부분을 저금리에 기대 투자를 받아 메우는 방식으로 영업해 온 전자상거래업체들의 관행이 근본적 문제”라며 “코로나 전까지는 장기간 저금리가 이어져 투자받는데 어려움이 덜했고, 옥석이 가려지지 않아 거품도 심했다. 티메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투자가 막히자 판매자 정산대금을 이용해 돌려막기까지 하면서 사태가 오늘에 이른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런 관행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의 규제는 그저 표면적인 대책에 그치고, 그 구멍을 이용하는 또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