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석은 짓이지요. 하지만 누구라도 이렇게 해놓으면 이걸 밑천 삼아 보완해 더 완벽한 게 나오지 않겠어요? 그러면 국가에서 한국어 말뭉치(컴퓨터가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도록 모은 거대한 언어 자료)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최근 ‘한국어의 한자 및 한문 표기 자료의 목록과 서지’(전 7권, 역락)를 완간한 박형익(73) 경기대 국문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의 방대한 디비를 샅샅이 훑어 한국어가 ‘한자 및 한문(한자 문장)’ 그리고 ‘한글’로 표기된 자료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목록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서기 전부터 2천년 동안 사실상 이 땅에서 나온 거의 모든 문자 자료의 목록화를 시도한 것이다.
첫 결실이 이번에 나온 목록집이며 곧 한국어의 한글 표기 자료 목록도 6권 분량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원래 흥미를 두고 쭉 해오던 게 한글 자료인데요. 그걸 하면서 한글 이전에는 어떤 자료가 있을까 궁금해서 한 게 이번 목록집입니다. 양이 너무 많아 한글 전초전에서 시간이 길어졌죠.”
정년 3년 전인 2016년에 서울에서 강원 강릉으로 이주해 지금은 4년째 속초에서 사는 박 교수를 지난 18일 금호동 자택에서 만났다.
“한글 목록집을 내고는 ‘한국 사전의 역사’를 쓸 생각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네요. 큰일 났어요.”

먼저 이번 목록집에 담긴 자료 분량을 궁금해하자 그는 “너무 많아 세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1권인 서기전~16세기부터, 17세기, 18세기, 19세기 전반, 19세기 후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20세기 전반 순서로 2~7권이 짜였는데 목록만 모두 4천 쪽이다. 한 쪽당 대략 자료 7점이 실린 것으로 계산하면 2만8천점이나 된다.
목록집에는 향찰과 구결 등 이두(한자 뜻과 음을 빌려 한국어를 기록한 표기법)와 돌(乭) 같은 한국에서만 쓰는 한자가 섞인 한자·한문 표기 자료를 모두 망라했다.
“중국인이 알아볼 수 있는 정격한문으로만 100% 쓰인 자료를 빼고는 다 포함시켰죠. 중국 책도 구결로 토를 달거나 주석을 붙였으면 다 목록화했어요.”
그가 이번 작업에 활용한 디비 중 하나인 한국학자료통합플랫폼의 고전 자료만 380만점이 넘는다. 그는 이 디비 자료들이 한국어 표기를 위한 텍스트인지 판별하기 위해 직접 원문까지 뒤져 표기 문자와 문장을 살폈다.
“자료 서지 사항에서 이두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이게 어려우면 직접 원문을 뒤져 이두나 국자(한국 자생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살폈죠. 디비로만 알기 어려우면 제가 따로 원문을 찾아 확인한 경우도 있어요.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등에는 이두가 사용된 경우도 표기 문자를 한자로만 적은 경우가 많아요. 이런 점은 개선되면 좋겠습니다.”
30여년 전부터 한국어 표기 자료가 보일 때마다 연도별로 나눠 컴퓨터에 입력해왔다는 박 교수는 이 작업의 의미를 두고 “한국어 말뭉치를 구축하기 위한 기초 자료 만들기”라고 설명했다.
“제가 만든 목록 자료 원본을 모두 텍스트로 변환해 저장해놓으면 ‘원시 말뭉치’가 됩니다. 여기서 검색도 가능하고 얼마든지 변환이나 응용이 가능해요. 사전도 만들 수 있고요. 국가 정보이죠. 한자로 적혔지만 중국 사람들은 이 말뭉치를 봐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는 목록집이 한국어학은 물론 경제사나 법제사, 사회학 등 한국학의 여러 관련 연구를 할 때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목록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자료는 경제사 연구 자료인 토지 매매 문서다. “집이나 논문서는 재산을 보여주는 문서라 보관이 잘 되었죠. 분재기 같은 상속 문서도 많아요. 이 문서들은 나중에라도 소송이 걸리면 증빙 자료로 쓰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밖에 없어요. 고소장 같은 문서들은 해결되면 버리기 때문에 전해지는 게 많지 않아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해가 1443년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 지난 16세기에 한국어 한자·한문 표기 자료는 더 많이 늘어난다. 이런 증가세는 이후로도 유지된다.
“지식층이 한글을 쓰기도 했지만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다 한문을 썼기 때문이죠. 이게 무르익어 각 전문 분야에서 지식이 향상하면서 자료가 많아졌고 상거래도 활발해져 이 분야 문서도 크게 늘었죠.”
목록집 7권에는 박 교수가 직접 작성한 240쪽 분량의 이두 표기 목록이 실렸다. 그가 헌책방에서 산 일제강점기 책 ‘산림문제해결책’(1924) 부록에 실린 20쪽 이상의 이두 목록도 담겼다. “산림 관련 관공서 문서 작성에 쓰이는 이두를 정리한 거죠. 1920년대 전반에도 이두가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자료이죠.”
박 교수의 주 전공은 어휘 문법론이다. 프랑스 파리7대학 언어학과에서 ‘‘주다’ 동사 구문의 어휘 문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대 부임 이후엔 사전학 연구에 관심을 쏟았는데 한국인의 문자 생활을 탐구하면서 이두까지 깊게 파고들었다.
그는 20여년 전에 한국 최초 한국어 사전 ‘보통학교 조선어사전 3판’(1930년 간행, 1925년 초판)을 찾아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가 50년 이상 한국어 연구에 헌신한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어릴 때 병약해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던 그는 몸을 추스른 뒤 프랑스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프랑스에서 학사부터 시작해 박사까지 언어학으로 학위를 땄다.
“어릴 때부터 시의 매력에 빠져 시를 썼어요. 그러다 왜 시어가 가지는 힘이 일상 언어의 힘과 너무 다른지 궁금하더군요. 도대체 어떤 조화인지 알고 싶어 언어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기왕이면 언어학 연구가 앞선 나라에서 공부하자는 생각에 프랑스로 갔죠.”
그는 7년의 프랑스 유학 기간 파리 최고 관광명소인 루브르 박물관조차 가 보지 못할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단다. “지금도 그 시간을 떠올리면 끔찍해요. 다시 하라면 못하죠. 수업을 따라가려고 토·일요일까지 공부에 매달렸으니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한글을 두고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들 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었다. 그는 동의한다면서 두 가지를 말했다.
“일본만 봐도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한자 세 가지 문자 생활을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자와 이두,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하다 1933년에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낸 뒤로 한글을 많이 쓰면서 문자 생활이 단순화, 표준화되었어요. 일본보다 영리한 문자생활을 한다고 봐야죠. 특히 디지털 시대에 한자 혼용은 맞지 않아요.”
그는 이어 “한글은 로마자(라틴 문자)와 달리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점에서 최고의 글자”라고 했다. “우린 맞춤법이 틀려도 다 읽을 수 있어요. 발음기호처럼 읽으니까요. 하지만 영어를 보세요. 에이(A)만 봐도 실제 발음이 너무나 달라요. 그래서 배우기 어려워 문맹자가 많아요. 영어 알파벳을 포함해 로마자 쓰는 나라에 문맹자가 많아요. 소리대로 안 적어서 배우기 어렵습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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