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00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 관련’ 5개 영화단체 및 한국성폭력상담소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 관련’ 5개 영화단체 및 한국성폭력상담소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여성영화인모임(이하 여영모)과 손잡고 영화계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예방 교육 사업을 위해 7년간 운영해온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과의 계약을 지난해 5월 종료했다. 영진위가 이를 조달청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영리 노무법인이 사업 수행 기관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피해자 지원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이유로 여영모는 최저가 업체를 선정하는 입찰 방식을 반대했지만, 영진위는 밀어붙이며 든든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9개월 간 영화인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으나 바뀐 건 없다. 이로 인해 고통받는 건 영화계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여영모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6개 단체는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 ‘시장화’ 중단 및 든든의 정상화를 촉구했다.

여영모가 공개한 경과 보고를 보면, 기존에 든든에서 지원받던 피해자 19명 중 8명만이 영진위가 정한 노무법인으로 사건을 이관했고, 11명은 든든에 남았다. 또 영진위 지원이 끊기면서 법률 및 의료 지원이 제한됨을 고지했음에도 든든 쪽에 새로 상담·신고를 접수시킨 피해자가 16명이나 추가됐다. 성폭력 예방 교육 역시 예산이 사라지면서 정기 교육 프로그램은 아예 없어지고 수시 교육도 피교육자 자부담이 됐지만, 신청 건수(2025년 6~8월)가 영진위 지정 노무법인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광고

왜 피해자들은 굳이 자기 돈 들여가며 든든을 찾아오는 걸까. 영화 현장은 일반 기업과 전혀 다른 노동 환경이다. 일반 노무법인보다 현장 경력이 풍부한 영화인단체가 영화계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높을 수밖에 없다. 또 7년간 든든이 성폭력 전문 변호사들과 연계해 피해자 지원을 하면서 쌓아온 신뢰는 1년짜리 단기입찰경쟁 방식으로 선정되는 업체들이 갈음할 수 없다.

이날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최근 성폭력 상담의 시장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돈을 쓰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민관 거버넌스의 유일한 성공 사례라 할 수 있는 사업(든든)을 포기하고 정부가 나서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영리적으로 접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광고
광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된 지적이 나오고, 국회는 2026년도 예산을 의결하며 문체부에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안정적 운영 방안을 마련하라고 부대 의견을 명시했지만, 문체부와 영진위는 요지부동이다. 문체부는 이와 관련한 영화인들의 간담회 개최 요구를 두달 가까이 ‘읽씹’ 하고 있다. 영진위 역시 영리법인 위탁의 적법성 검토 요구를 한달 가까이 묵살하다 “법률상 의무 사항에 해당되기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왔을 뿐이다.

문체부는 최근 죽어가는 영화계를 살리겠다며 과감한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돈에 앞서 재능 있는 영화인들, 이들의 열정을 뭉쳐내는 상호 신뢰가 만든 체계 위에서 꽃피웠다. 수백억원의 지원을 언급하면서 연간 3억원 예산의 인적 자원 보호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문체부와 영진위가 영화 산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선아 여영모 이사장은 “문체부와 영진위가 계속 문제 해결을 회피한다면 장관 면담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장관이 나서야만 이 간단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문체부와 영진위가 말하는 한국 영화 위기 극복은 ‘공무원 마인드’를 포장한 공염불일 뿐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