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지음/뿔·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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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한테 물어봐.”

공선옥(47)의 소설 <영란>에서 서울에서 목포로 내려온 작가 이정섭에게 목포의 원로 문화인 정영술이 하는 말이다. ‘너 누구냐? 너 왜 거기 그러고 있냐?’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거울 속 사내가 묻는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노라는 하소연에 대한 처방이다.

정영술의 말은 소설 <영란>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영란과 정섭을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은 목포를 만나고 목포를 삶으로써 자신을 괴롭혔던 문제에 대한 답을 확인하고 새로 출발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목포에 오기 전 서울 시절에는 일인칭 단수대명사 ‘나’로만 지칭되던 영란은 목포에 와서야 비로소 영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새로운 정체성을 확보하고 새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목포라는 공간이라 해도 좋다. 영란은 목포의 다른 이름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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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들인 영란과 정섭이 목포로 향한 것은 순전히 우연에 따른 것이었다. 목포에 오기 전 그들의 상태는 아주 나빴다. 어린 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영란은 막걸리와 빵으로 연명하며 삶을 놓아 버린 상태였다. 외도를 들키는 바람에 이혼을 당하고 아내와 딸이 독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정섭의 삶 역시 피폐하기는 마찬가지. 갑작스레 친구의 부음을 들은 정섭이 장례식장이 있는 목포로 가면서 영란 역시 데리고 간다(정섭이 영란 남편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인연으로 두 사람은 구면이다). 상가에서 술을 마시던 중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고, 영란이 홀로 찾아 들어간 곳이 ‘영란여관’이었다. 그곳에서 아이와 남편을 뒤따르고자 손목을 그었다가 되살아난 그에게 여관 주인 할머니가 붙여 준 이름이 바로 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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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공선옥.

식당을 겸하는 영란여관에서 식당 일을 도우며 영란의 목포 살이가 시작된다. 다른 한편으로, 영란과 헤어졌던 정섭 역시 목포에 관한 책을 쓰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는 목포로 내려와 유달산 아래 산동네에 방 한 칸을 얻어 든다. 이후 소설에서 두 사람은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마주치지는 않는 채로 각자의 목포를 만나고 막혔던 삶의 활로를 뚫게 된다.

“‘짜고 낭게 조금만 주소.’/ ‘인자 포도시 이틀째 났는디 못해도 열흘은 배아지가 터지도록 묵어야제…’/(…)/ 나지막한 뱃고동 소리, 서걱이는 무화과 잎사귀, 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 그리고 짜고, 포도시, 배아지 같은 말들이 내 밥술에 같이 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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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주워온 강아지한테 밥을 먹이면서 여관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영란의 마음을 덥히고 영혼을 배불린다. 이 대목을 비롯해 소설 곳곳에서 목포의 말과 음식에 대한 찬탄을 만날 수 있다.

“멸치젓, 새우젓, 바지락젓을 매운 고추 넣고 고춧가루 넣고 무쳐놓았는데 짜지 않고 고소하고 깔끔한 맛이 났다. 처음 맛보는 낙지숙회는 배추와 대파와 함께 익혀 새콤한 국물을 부어 만든 것 같은데(…)묘한 매력이 있는 음식이었다.”

말과 음식의 주인은 물론 사람이다. 영란과 정섭이 목포에서 만나 부대끼며 익숙해지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을 죽음과 상실의 고통에서 건져 올리는 동아줄이라 할 법하다. 남편 김윤을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잃은 여관 할머니와 그 손녀인 수옥, 영란을 짝사랑하는 이웃집 총각 완규, 완규의 어린 조카 수한,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사는 슈퍼 안주인 조인자가 영란의 동아줄이라면, 김윤의 친구인 정영술 선생을 비롯해 죽은 친구의 동생인 호준, 어판장 중개인 영대, 정섭이 세든 집 주인인 황진생과 그의 청각장애인 딸 모란 등은 정섭의 동아줄에 해당한다. 그들이 두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영란여관에 흘러든 떠돌이 가수 태숙에게 주인 할머니가 하는 말에 함축돼 있다.

“우지 마라, 사랑허는 것은 죄가 아닝게 우지를 마라. 사랑허는 그 심으로 살아가라, 아가. (…) 가수는 노래 하나로 세상을 보듬어 분단다. 존 것만 취허지 말고 아픈 것도 다아 니 품 안으로 보듬어 부러라. (…) 세상 아픈 것 짠헌 것 다아 보듬어 불면 큰마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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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목포 하면 어쩐지 서럽고도 따뜻한 느낌이 든다”며 “삶이 피폐해져서 뻘바탕 같은 상태가 되었을 때 기댈 곳은 목포처럼 후미지고 낙후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