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체
인간되기에 관하여
티머시 모턴·도미닉 보이어 지음, 안호성 옮김 l 갈무리 l 1만7000원
인류가 지구의 지질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는 ‘인류세’ 담론을 들여다보면, 꽤나 얄궂은 역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가 지구를 인류세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면,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책임에 걸맞은 행위를 하라고 인류에게 요구하는 것은, 애초 이 위기를 만들어낸 인간-비인간의 이분법과 거기에 담긴 인간중심주의를 방향만 바꿔서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인류가 여태껏 그래왔듯 사물들을 자기만의 목적으로 형성해내는 능력을 발휘해 “답을 찾아”낸다면 그만인 걸까?
티머시 모턴(56)은 이른바 ‘객체지향 존재론’(OOO, Object-oriented ontology)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전개해온 철학자·생태이론가다. 그는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자, 곧 사물들의 비환원적이고 개별적인 본질에 주목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토대로 삼아 새로운 ‘생태정치’를 추구하는데, ‘초객체’(hyperobjects)는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초객체란 국지적인 범위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그걸 존재자라고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물을 말한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 블랙홀, 스티로폼, 항생제, 자본주의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기 위한 시도다. 2021년 모턴이 인류학자·미디어 제작자 도미닉 보이어와 함께 펴낸 ‘저주체’는 초객체적인 시대에 우리가 어떤 실천을 해나갈 수 있을지 탐색하는 책이다. 엄밀하고 탄탄한 논증 대신 놀이처럼 때론 혼잣말 같고 때론 대화 같은 즉흥적인 진술을 이어가는, 실험적인 작업이다.


제목인 ‘저주체’(hyposubjects)는 초객체, 그리고 초객체의 시대를 만들어온 ‘초주체’(hypersubjects)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크고 많은 초객체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시대에 와 있는데, 세계를 이런 초객체들의 시대로 인도한 것은 바로 초주체로서의 인간이다. 단순히 말해 초주체는 생각하거나 상정하는 능력을 지닌 주체가 객체들을 가지고 실재적인 것을 만들어낸다는 식의 서구 전통의 이원론에 충실한 주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의 주된 방법은 ‘초월’(transcendence)이다. 초월은 자신의 물질적 조건을 ‘넘어가서’(trans) “나보다 훨씬 더 큰 그리드형 구조에, 나를 훨씬 더 강력하게 만드는 훨씬 더 나은 방식으로 거주”하는 일이다. 그 핵심 전제는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이다.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보다 크기 때문에 부분은 더 큰 방식으로 존재하기 위해 전체에 속한다. 지은이는 농업 문명 이후 끈질기게 이어온 이런 전체론을 ‘폭발적 전체론’(explosive holism)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초객체들을 다루기 위해 더 초월적인 주체가 필요한 것일까? 되레 지은이는 “초객체 시대의 동반자가 될 것은 초주체성이 아니라 저주체성”이라 말한다. 인간 종은 그 자체로 이미 시공간에 걸쳐 분산된 거대한 초객체지만, 지구 온난화든 자본주의든 더 거대한 초객체들에 둘러싸여 스스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작아졌고, 또 적어졌다고 느낀다. 스스로가 초객체라는 사실을, 곧 인류세라는 조건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저주체로 나아갈 경로(‘저주체적 조건’)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저주체는 초월과는 반대로 ‘저월’(subscendence)이란 걸 한다. 저(sub)는 가깝게 있음, 아래에 있음, 안에 있음, 보다 작음 등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저월은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자연·생명 같은 인간중심적인 개념(이를테면 ‘가이아 이론’)이 아닌, 모든 사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존재론 위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만약 ‘연결되어 의존한다’는 것을 “생명이란 이름 아래 맺는 종들 간 동맹” 따위의 인간중심주의로 풀어내게 되면, ‘토끼에게 친절한 것처럼 토끼 기생충에게도 친절하라’거나 ‘에이즈 바이러스도 에이즈에 걸린 사람만큼 현존할 권리가 있다’ 같은 역설 속에 무너지고 만다.

지은이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작다”는 존재론을 펴고, 이는 인간을 초주체가 아닌 저주체로 가는 길로 이끈다. 이것은 전체론에 대한 부정이나 ‘개별 존재자가 전체에 우선한다’ 같은 신자유주의 논리가 아니다. 사물은 막혀서 고립된 형태가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려 서로 침투하고 넘나드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나란 인간은 장내 미생물 없이 살아갈 수 없고, 세포는 아예 박테리아와 공생한 결과다. 따라서 사물은 언제나 우리의 추정보다 ‘작게’ 존재하고,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착상은 신플라톤주의적 형태를 통해 다듬어진 농업 시대의 유일신교에서 유래한 일종의 트윗”이라고 비판한다. ‘더 크게 존재할 수 있다’며 전체를 앞세우는 것은 그 속의 사물들을 갈아치워도 무관한 기계 속 부품처럼 취급하게 만든다. 또 우리를 압도해오는 거대한 초객체들의 문제에 대해 그저 “다룰 방법이 없다”고 냉소하게 만든다.
사물 내부가 숭숭 뚫려 있다면 그것들이 모인 전체는 구멍투성이다. 따라서 전체를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은이는 “우리가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은 신자유주의, 지구 온난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가정하는 것보다 실제로는 존재론적으로 더 작고 약하다는 것을 알아내는 거”라고, 또 “우리 자신을 포함한 그것들의 구성요소는 존재론적으로 쉽게 그것들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식과 체계의 힘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초월’이 아니라, 약하고 하찮은 존재로서 서로를 감각하고 보살피는 ‘저월’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답을 찾아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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