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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19여순사건 때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민간인들을 진압작전을 지휘한 미국 임시군사고문단원이 지켜보고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1948년 10·19여순사건 때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민간인들을 진압작전을 지휘한 미국 임시군사고문단원이 지켜보고 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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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포고령 위반 혐의로 희생된 민간인 11명이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용규)는 13일 포고 제2호 위반 혐의를 받은 희생자 11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모두 고인이 된 상태에서 이뤄진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포고령 2호의 내용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일반 국민이 법률에 따라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조차도 예견하기 어려웠다”며 “포고령 2호가 죄형법정주의에 명확하게 위배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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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포고령 2호(1945년 9월7일)는 ‘공중 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등을 점령군 군율 회의(군법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한다고 규정한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8월15일 수립되면서 미군정은 종식됐는데도 여순사건(1948년 10월) 당시 군법회의는 폐지된 포고령을 적용 법조로 삼아 사람들을 처벌했다.

김영규 부장판사는 “유족들이 평생 겪었을 고통을 재판부로서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무죄 판결이 피고인들의 명예 회복과 실질적인 권리 구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과거 국가 권력을 대신해 사죄드린다”며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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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순천지원은 지난해 9월과 지난 3월, 포고령 2호 위반죄로 유죄 판결받은 여순사건 희생자들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뒤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1일까지 군경의 진압 과정에서 전남, 전북, 경남도 일부 지역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