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어드립니다
0:00
지난 9월28일 경찰 합동감식반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 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지난 9월28일 경찰 합동감식반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 감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광고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정부 전산망 마비 사태를 불러온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는 전산실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옮기는 공사를 하면서 배터리랙 전원을 다 끄지 않은 채 전선 분리 작업을 하다가 불이 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재용 국정자원 원장을 비롯해 공사업체 관계자 등 19명을 무더기 입건했다.

대전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지난 9월26일 발생한 국정자원 화재 사건 관련 업무상 실화와 전기공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19명을 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업무상 실화 혐의 입건자는 국정자원에서 이재용 원장과 담당 과장·팀장·직원 등 4명, 하도급 시공업체(ㄱ업체) 현장소장·작업자 등 3명, 감리업체 책임·보조감리 2명, 슈퍼바이저(작업 관리·감독자) 역할의 재하도급 업체(ㄴ업체) 대표 1명 등 총 10명이다.

광고

불법 하도급을 주고받아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이들은 국정자원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ㅇ업체와 ㄴ건설사의 대표·임원 3명, 수주업체로부터 공사 하도급을 받은 ㄱ업체의 대표·이사·팀장 4명, ㄱ업체로부터 재하도급받아 공사에 참여한 ㄴ업체(업무상 실화 혐의로도 입건)와 ㅁ업체의 대표·직원 3명 등 총 10명이다.

경찰은 이날 수사 결과 설명회에서 “관련자 진술과 압수물 분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종합하면, 국정자원 화재는 작업자들이 (배터리랙) 전원을 차단하지 않고 전기 작업을 진행하다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산실 배터리를 이전하기 위해선 유피에스(UPS·무정전전원공급장치) 본체 전원을 차단한 뒤 8개(1∼8번) 배터리랙의 전원도 모두 끄고 랙에 연결된 전선을 분리해야 하는데, 작업 당시 1번 랙을 제외한 나머지 7개 랙의 전원은 켜진 상태였다는 것이 경찰 설명이다. 배터리 이설 작업 매뉴얼도 없었다.

광고
광고

조대현 전담수사팀장(대전청 형사기동대장)은 “슈퍼바이저(작업관리감독자·재하도급 ㄴ업체 대표)가 작업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범으로 1번 배터리랙 전원을 차단했는데, 정작 실제 작업할 작업자 2명은 그때 사다리를 구하러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그 설명을 듣지 못했고 나머지 2∼8번 배터리랙을 다 켜놓은 채로 전선 분리 작업을 했다”며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전선 분리를 하다가 스파크 등으로 불이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고, 배터리 충전율이 높은 상태에서 불이 더 빠르게 번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국과수 감정 결과”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정자원으로부터 30억원짜리 배터리 이설 공사 사업을 수주한 ㅇ업체와 ㄴ건설사가 소규모 전기업체(ㄱ업체)에 불법 하도급을 줬고, ㄱ업체는 부족한 인력을 채우려 ㄴ업체와 ㅁ업체에 각 약 4천만원을 주고 재하도급을 준 사실도 확인했다. ㄱ업체 소속 현장소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공사를 수주한 ㅇ업체에 입사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도 했다.

광고

공사 수주업체들은 하도급 업체에 19억원을 주며 공사 일체를 맡기고, 본인들은 하는 일 없이 남은 11억원을 약 6대 4 비율로 나눠 챙겼다. 공사를 하도급 받은 ㄱ업체는 전기공사 전문업체이긴 하나 이런 대규모 배터리 이설 공사 경험은 전무했고, 작업관리·감독자 역할을 한 재하도급 ㄴ업체는 배터리 설치 경력만 있을 뿐 전기공사업 자격은 없는 무등록 업체였다. 전기공사업법상 전기 공사의 경우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줄 수 없다. 국정자원 관계자들은 공사 과정에서 불법 하도급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자원이 평일 근무시간이 아닌 야간·주말에만 배터리 이설 작업을 하도록 시방서를 작성해놓고, 감리업체와는 ‘공사 현장 감리는 주간에는 4명, 야간·휴일에는 1명도 가능’이라고 계약을 맺은 사실도 확인됐다. 배터리 이설 공사가 시작된 9월26일 저녁에도 책임감리 없이 보조감리 1명만 현장에 나와 있었고, 공사 시작 1시간여만인 그날 저녁 8시15분께 불이 났다.

조 팀장은 “입건한 피의자들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사건을 검찰로 넘길 것”이라며 “위험성이 큰 리튬이온배터리 이설 작업 관련 매뉴얼을 정비하고, 불합리한 전기공사업 관련 규정에 대한 개선안 마련을 관련 부처와 협회 등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