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서중 입학을 앞둔 때였다. 달음질을 치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단방약’으로만 치료를 받다가 왼쪽 팔에 장애를 입었다. 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고등공민학교를 2년간 다니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인(3급)의 몸으로 부지런히 일해 논을 2000평까지 늘렸다. 하지만 1999년 사업에 투자했다가 거액을 날렸다. 그때 딸의 권유로 서예에 입문했다.
정제인(75·전남 나주시 문평면)씨는 수요일마다 광주 운암동 무등서예연구원을 찾는다. 벼루 앞에 앉을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장을 지낸 ‘일속’ 오명섭(60) 원장한테서 채본을 받아 집에 와 틈틈이 연습한다.
“저녁때 세 번 써 보고, 잠이 안 오면 밤중에도 일어나 쓰고…. 아침 밥 먹고 써 보고, 점심 먹으러 와서 또 쓰고….” 그런데도 정씨는 “아직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인자 포도시(겨우) 남의 글씨에 흉을 잡지 않는 (마음의 자세를 배운) 정도”라고 했다. 2006년 전라남도 미술대전 서예부문을 시작으로 모두 세 차례 도전에서 입선했다.
정씨는 2004년부터 화요일마다 사자성어를 하나 골라 쓴 뒤, 면사무소에서 60장을 복사해 주민 60명에게 우편으로 보낸다. 정씨는 “좋은 의미가 담긴 말을 혼자만 알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6~12일 광주유스퀘어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리는 ‘제30회 원묵회 서예전’에 참여한다. 원묵회는 무등서예연구원 회원들의 모임이다. 이번 전시회에 작품을 낸 86명 중 국전 초대작가가 6명이고 시·도전 초대작가가 30여명에 이른다. 오명섭 원장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초심’이란 글로 회원전을 격려했다.
정씨는 요즘 남의 논 1만평을 얻어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낙관적이다. 장애를 갖게 된 것도 “부모의 가난 때문이 아니라, 나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장애란 “40㎏짜리 나락 푸대를 들 때 힘들 뿐”인 정도다.
보증 문제로 서운했던 딸과도 마음으로 화해했다. 정씨는 “용서를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년 전 세상을 뜬 아내가 그리울 때면 먹을 갈며 묵향으로 마음을 달랜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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