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문어는 상대를 보지 않고도 짝을 찾고 팔만 뻗어서 짝짓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컷의 오른쪽 세 번째 팔(헥토코틸루스)이 암컷의 호르몬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수컷 문어는 상대를 보지 않고도 짝을 찾고 팔만 뻗어서 짝짓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컷의 오른쪽 세 번째 팔(헥토코틸루스)이 암컷의 호르몬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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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꿈을 꾸기도 하며 다른 해양동물 모습을 흉내 낼 정도로 높은 지능을 지닌 동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연구에서 이들의 신비로운 짝짓기 과정이 공개됐는데, 수컷 문어는 짝짓기할 때 특정한 팔을 이용하며 상대에 가까이 가거나 보지 않고도 암컷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수컷 문어들은 암컷과 달리 이 팔을 매우 신중히 다루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흔히 문어의 팔을 ‘다리’라 표현하지만, 형태나 기능으로 보면 팔에 가깝다.

파블로 빌라르 미국 하버드대 분자세포생물학과 박사 등 연구진은 지난 2일(현지시각) “문어가 맛을 느끼는 촉각기관을 이용해 짝을 찾고, 심지어 서로의 얼굴을 보이지 않고 팔을 쭉 뻗은 거리에서 짝짓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수컷 문어는 짝짓기할 때 오른쪽 3번째 팔인 ‘헥토코틸루스’(hectocotylus)를 암컷의 외투막(머리 뒤쪽에 붙어있는 둥근 주머니형 구조로 심장·생식기관·아가미 등을 감싸고 있음)에 집어넣어 자신의 정낭을 산란관에 전달한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이처럼 수컷 문어가 생식활동에 특정한 팔을 사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짝을 알아보고 정확한 위치에 정낭을 전달하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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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는 우연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이번 논문의 교신 저자인 니콜라스 벨로노 교수는 두족류의 감각 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는데, 연구실에서 일하던 빌라르 박사가 문어의 수용체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하던 중 다른 팔과 마찬가지로 헥토코틸루스에도 수용체가 촘촘히 박혀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의외의 결과였다. 왜냐하면 수컷들은 일반적으로 이 팔을 자신의 몸 가까이 말아두고, 먹이 탐색 등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문어가 세 번째 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 공간을 마련했다. 캘리포니아 두점박이문어 한 쌍을 검은색 칸막이가 처진 수조에 넣고, 칸막이에 문어의 팔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뒀다.

그 결과, 검은 칸막이로 막혀 시각적인 정보가 전혀 없음에도 수컷은 암컷을 정확히 찾아 짝짓기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두운 환경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이런 짝짓기 행동은 수컷 두 마리가 있을 때는 일어나지 않았다. 빌라르 박사는 “수컷과 암컷 모두 정낭을 주고받는 동안 때로는 한 시간 이상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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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이런 점을 종합해, 문어들이 그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성적 신호를 방출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암컷의 생식기관 조직 샘플을 분석한 결과, 난소와 피부에서 여성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 풍부하게 검출됐다. 실제 두 가지 추가 실험을 통해 수컷의 헥토코틸루스가 암컷의 호르몬을 감지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수컷의 팔은 절단된 상태에서도 프로게스테론을 접촉했을 때 활발하게 움직였다. 또 수조 속에 프로게스테론이 묻은 관과 그렇지 않은 관을 번갈아 넣어봤는데 호르몬이 묻은 관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짝짓기를 시도했다.

일본 나가사키대 연구진의 실험에서 수컷 문어는 먹이를 탐색할 때는 생식활동에 활용하는 세 번째 팔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일본 나가사키대 연구진의 실험에서 수컷 문어는 먹이를 탐색할 때는 생식활동에 활용하는 세 번째 팔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인 니콜라스 벨로노 하버드대 교수는 “문어가 단독생활을 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메커니즘은 놀랍지 않다”면서 “우연한 만남에서 수컷의 팔은 암컷의 위치와 난관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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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컷 문어는 생식 활동에 활용하는 이 팔이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키 게이치로 일본 나가사키대 박사 등 연구진이 일본 소형문어 암컷(41마리)과 수컷(32마리)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암컷은 먹이활동 등으로 세 번째 팔이 절단된 경우가 13마리로 많았지만, 수컷은 단 한 마리만 이 팔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암수가 팔을 달리 사용한다고 판단해 수조 안에 납추와 새우 등을 넣고 수컷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암컷과 달리 수컷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먹이를 탐색할 때 헥토코틸루스 이외의 7개 팔을 이용했다.

하루키 박사는 “만약 헥토코틸루스를 한 번 잃으면 새 팔이 자라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린다”면서 “(수명이 1~2년에 불과한) 수컷 문어로서는 번식 능력을 잃는 것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동물행동학’에 공개됐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