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의 재밌게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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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이레 펴냄

누군가가 묻는다. 자업자득으로 고통받을 때, 누구에게 화풀이도 할 수 없고, 변명도 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답은 이렇다. “고통 또한 살아 있기에 가능한 맛이니까, 고통의 미식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거 너무 무난한 대답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뒤에 이어지는 말이 웃음을 베어물게 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고금동서로 수많은 종교가 해답을 마련해 두었지만, 그거, 별로 믿을 게 못 돼요. 돈만 빼앗겨요.”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는 말랑말랑한 대답으로 ‘난 행복해’ 하는 자기최면을 거는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인생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다고 과장해 소개할 생각도 없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인터넷 신문인 <호보일간 이토이 신문>에 연재된 일종의 상담 글 모음이다. 누구나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데, 위에 예로 든 문답처럼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없는 내용이 대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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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답변이라 해도 반쯤은 농담처럼 들린다. 아무리 심각한 질문을 받아도 대답하는 쪽은 정색하는 법이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 남편은 ‘빚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그걸 다 갚았습니다. 도무지 반성도 하지 않는 그런 인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반성하지 않는 인간을 꽃피우기는 인간의 솜씨로는 힘들지 않을까요.

특히 아내가 남편을 교정한다는 것은 큰 사업이라 평생을 다 바쳐도 힘들지 모릅니다. ‘교정’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혼, 동반자살, 또는 신흥종교에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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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취권의 고수처럼 몸에 힘을 빼고 흐느적거리지만, 그래도 할 말은 다 한다는 식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왜 결국 사라지고 마는 걸까, 죽기 싫은데 왜 죽어야 하는 걸까. 사실 이 책은 속시원한 해답을 안겨주지 않는다. 다만 같이 고민하는 시늉을 하며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는 정도다. 뭐, 그걸로 족하다. 어차피 식을 거 알고도 사랑하고, 죽을 거 알고도 살고 있으니까.

이다혜 좌충우돌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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