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드라마에서 비운의 왕으로 그려졌던 단종(1441~1457)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얘기다. 16살에 죽음을 맞이한 단종(박지훈)과 단종의 주검을 수습한 것으로 기록된 엄흥도(유해진)의 삶이 영화의 중심축이다. 애잔한 슬픔이 깔린 이 영화가 ‘일’을 냈다. 지난 24일 기준 누적 관객 수가 600만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넘었다. 개봉한 지 20일 만에 터진 ‘대박’이다. 1천만 관객 고지가 멀지 않았다. 영화의 흥행 돌풍은 ‘영월 여행’도 달구고 있다. 강원도 영월문화관광재단은 지난 설 연휴 기간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다녀간 여행객이 1만641명이었다고 19일 밝혔다. 지난해 설 연휴에 견줘 5배나 늘어난 방문객 숫자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에 둘러싸인 데다. 나머지 한 면엔 험준한 육육봉이 들어서 있다. 배를 타고 들어간다. 3분 남짓이면 도착한다. 처음 만나는 건물은 단종이 머문 단종어소다. 그 안에 전시된 유배 조형물과 물품 등은 단종의 애잔한 삶을 반추하게 한다. 낡은 한옥처럼 보이는데 뜻밖에 1996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1457년 이 지역에 큰 홍수가 나면서 단종은 거처를 옮겼다. 고증을 통해 물에 잠겨 사라진 옛집을 재현한 것이다. 영조 39년에 세운 ‘단묘유지비’가 근거가 됐다. 이 비는 단종이 기거했던 옛집 터임을 알리는 표지다.
이곳에서 단연 눈에 띄는 볼거리는 ‘엄흥도 소나무’다. 가지가 굽어 뻗은 모양새가 충신 엄흥도를 연상하게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도 볼거리다. 나이가 600살로 추정된다. ‘볼 관’(觀) ‘소리 음’(音)이란 이름엔 전설이 깃들었다. 이 소나무가 어린 단종을 보며 매일 울었다는 사연이다. 뒷산엔 단종이 쌓아 올린 망향탑이 있다. 아내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올린 탑이다. 정순왕후는 15살에 왕비로 책봉된 단종의 아내다. 단종이 폐위되자 궁에서 쫓겨나 신분이 노비로 강등됐다. 평생 단종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감했다. 서로를 향했던 어린 부부의 마음이 여행객의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홍수로 단종이 옮긴 거처는 영월읍에 있는 관풍헌이다. 관풍헌엔 자규루가 있다. 2층 규모의 누각이다. 본래 이름은 매죽루였으나 단종이 이곳에 올라 자작시 ‘자규사’를 읊으면서 명칭이 바뀌었다. 자규사는 총명하면서도 감수성이 풍부했던 단종의 단면을 드러낸 시다. 자규(두견새)에 빗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한시다. 단종은 이곳에서 생의 마침표를 찍는다. 1457년 10월24일 세조의 명으로 이곳에 온 금부도사 왕방연이 내린 사약을 받는다. 숙종 24년 복원된 단종의 무덤 장릉도 가볼 만하다. 언덕에 자리한 장릉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장릉에 오르는 길에 서 있는 소나무들이 신하들이란 말도 돈다. 서 있는 모양새가 고개 숙인 신하처럼 보여서다.

영월엔 갈 만한 여행지로 청령포만 있는 건 아니다.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삿갓의 묘가 와석리에 있다. 그 일대에는 ‘난고 김삿갓 문학관’등이 조성돼 있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1807~1863). ‘삿갓’은 그가 방랑할 때 사용한 이름이다. 그는 조선 세도가 안동 김씨 자손이었으나 순조 11년에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을 막지 못해 가문이 몰락하면서 방랑 시인으로 살았다.
영월엔 국내 손꼽히는 천문대도 있다. ‘별마로천문대’는 해발 799.8m 봉래산 정상에 있다. 지름 80㎝의 주 망원경과 여러대의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별마로’는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란 뜻이다. 청령포에서 가까운 ‘한반도 지형 전망대’도 명소다. 전망대에 오르면 평창강과 주천강이 합쳐지면서 서강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한반도 지형’이 보인다. 모양새가 한반도를 닮았다. 2011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인근엔 영월지오뮤지엄이 있다. 지질 박물관이다. 영월은 국내 대표 지질 여행지다. 약 4억5천만년 전 고생대 퇴적물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데가 여럿 있다.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등이다.



영월에 역사와 지질 여행지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예술이 만개한 여행지도 있다. 2019년에 개관한 ‘젊은달와이파크’에선 설치미술가가 차린 강렬한 색채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019년에 연 이 예술 공간은 단박에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영월에서 가장 ‘힙’한 여행지로 소개되고 있다. 동강사진박물관도 역사 깊은 예술 여행지다.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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