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들끼리 믿고 중딩들 고딩들 거 영상 363개. 전부 다 해서는 5만5천원에 가져갈 분.”
지난 3월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성매매 피해를 감시하려 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뒤지던 십대여성인권센터(센터)의 ‘레이다’에 그들의 활동이 감지됐다. 센터는 그동안 날마다 채팅 앱이나 에스엔에스(SNS)를 모니터링해서 의혹이 있는 게시물을 캡처해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신고해왔다. 하지만 두 기관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센터 쪽이 이번만큼은 직접 나서기로 한 까닭이다. 구매자를 가장해 직접 영상을 받아보기로 했다.
센터 쪽이 랜덤채팅 앱을 통해 영상을 사고 싶다고 쪽지를 보내자 판매자는 곧 “영상은 363개지만 100개당 1만5천원에도 판다”며 “입금되면 바로 보내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는 “영상이 더 생기면 글 쓰니까 가끔 보시면 될 것”이라며 ‘고객 관리’용 인사까지 잊지 않았다. 영상 1개에 150원. 5만5천원을 보내고 영상을 구매하니 한눈에 봐도 10대 소녀이거나 교복을 입은 학생의 성착취 동영상이 센터의 전자우편으로 도착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동영상 판매자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센터 쪽의 고발 뒤 판매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기고 영상을 소지한 이들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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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웹 없어도 쉽게 구하는 성착취 영상
“다크웹(아이피 주소 추적이 어려운 인터넷 공간)이요? 10대들에 대한 성착취 동영상은 거기까지 갈 것도 없어요. 기가 막힌 현실이죠.”
지난 30일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최근 다크웹 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누리집 ‘웰컴투비디오’의 영상 유포에 수백명의 한국인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며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암호를 입력해야 접근할 수 있는 다크웹까지 가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에선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이 랜덤채팅 앱 등에서 버젓이 공유된다. 특히 이런 랜덤채팅 앱은 아동·청소년의 영상이나 사진 등의 성착취가 이뤄지는 1차 피해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이를 재배포하는 2차 피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에게 온라인 공간에서 가해지는 ‘이미지 기반 성착취’는 그 자체로 엄연한 성범죄로 받아들여지는 게 추세다. 모니터 너머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이나 성매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노출 영상을 보내라’고 해서 이를 소장하면 그 자체로 아동·청소년에 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대법원 판례를 보면, 피해자인 여성 청소년에게 노출 영상을 찍게 해 전송받아 개인적으로 소지했던 남성이 2년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직접 아동·청소년의 면전에서 촬영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만드는 것을 기획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촬영 행위를 하게 하거나 만드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며 아청법 위반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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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이어지는데도…미온적인 경찰·방심위
게다가 랜덤채팅 앱에서의 성착취는 오프라인 성범죄로도 이어지기 쉬운데도 경찰과 방심위 등 관계 기관의 대응은 여전히 미온적이었다는 게 활동가들의 지적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 4월 문제의 ‘363개 중·고등학생 영상’을 경찰에 신고할 당시 경찰은 센터 쪽에 ‘영상 하나하나 왜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지’ 적어서 고발하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판매자가 ‘중딩·고딩들 영상’이라고 적은 제목을 캡처하고 영상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분별의 책임을 고발인에게 돌린 것이다. 이 때문에 센터 쪽은 “육안으로 볼 때 발육 상태나 교복 등 너무나 명확하게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영상들(63개)만 추려서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조진경 대표는 “사이버경찰청에 성매매 의심 업소 등을 신고해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게 다반사였다”며 “다크웹 사건이 안 터졌다면 경각심을 전혀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일선 경찰서의 경우에는 랜덤채팅 앱을 통한 영상 유포 외에도 접수된 사건 자체가 많기 때문에 신고나 고발이 들어온 것 위주로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랜덤채팅 앱에 대한 제재 권한을 가진 방심위도 소극적인 건 마찬가지다. 유해 콘텐츠 게시자들에 대한 계정 정지를 권고하는 게 현재로선 방심위가 랜덤채팅 앱 서비스 업체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제재라고 설명한다. 방심위 관계자는 “우리도 자체 모니터링을 하고는 있지만 불법 정보임이 확인이 돼야 제재 조처를 할 수 있는데, 게시물만 보고 일반 성인 간 만남을 제안하는 글인지 아동·청소년 성착취 문제가 있는 글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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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 피해자인데 ‘범죄 가담자’로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