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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18년 만에 온 ‘18살 선거권’, 그들이 만들었다

등록 :2020-01-04 10:06수정 :2020-03-23 09:56

[토요판] 이슈
‘18세상’을 만든 역사

십수년간 계속된 참정권 투쟁
역사 속 숨은 주역들 뒷이야기

2002년 ‘낮추자 운동’ 시작으로
18년간 계속된 하향 노력들
2005년 19살로 낮아진 성과도

“정치인들 선물이 아닌
우리 손으로 이뤄낸 결과”
그토록 바라온 ‘18살 선거권’이 현실이 된 지난 2일, 우리나라 청소년 참정권 역사에서 주된 역할을 한 다섯명이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왼쪽부터) 2002년 대선 때 청소년이 참여하는 첫 거리투표를 진행한 박준표 오디디이코리아 대표, 2004년 선거권 하향 전국 입법청원을 추진한 신정현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 2012년 총선 때 ‘청소년 없는 투표소 습격’ 1인시위를 벌인 유남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국회 앞에서 43일간 농성을 벌인 이은선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전 공동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토록 바라온 ‘18살 선거권’이 현실이 된 지난 2일, 우리나라 청소년 참정권 역사에서 주된 역할을 한 다섯명이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왼쪽부터) 2002년 대선 때 청소년이 참여하는 첫 거리투표를 진행한 박준표 오디디이코리아 대표, 2004년 선거권 하향 전국 입법청원을 추진한 신정현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청년전태일’ 대표, 2012년 총선 때 ‘청소년 없는 투표소 습격’ 1인시위를 벌인 유남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국회 앞에서 43일간 농성을 벌인 이은선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전 공동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해 12월3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 한 빌딩에서 작은 축하파티가 열렸다. 내년 총선부터 선거연령이 19살에서 18살로 내려간 일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케이크와 장미꽃다발을 놓고 30여명이 둘러앉았다. 지난 2년간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해온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들이었다. 43일간 국회 앞 농성, 삭발식, 자유한국당 기습시위 등 선거권 하향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함께 사진으로 보며 누군가는 눈시울을 적셨고 누군가는 “우리가 해냈다”며 만세를 불렀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27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해 4월 총선부터 2002년 4월 이전에 태어난 18살 유권자(고3 일부 포함)가 투표할 수 있게 됐다. 법안이 통과되는 순간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 일한 이들의 머릿속에는 2002년 ‘낮추자 운동’부터 본격화된 18년 동안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18살이 선거권을 갖게 된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1992년 대선 때 백기완 민중후보의 선거운동에서 고교생 활동가들이 ‘16살 선거권’을 주장하면서 청소년 참정권은 사회의제로 제기됐다. 본격적인 운동으로 이어진 건 18년 전이다. 2002년 대선 때 서울 명동에서 청소년이 참여하는 첫 모의투표가 이뤄졌다. 2004년 수천명의 청소년이 ‘18살 선거연령 인하 입법청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2005년 선거연령이 20살에서 19살로 내려간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 대다수 국가의 선거연령이 18살인 것에 견주면 19살도 높았다. 2008년 첫 직선제 교육감 선거에서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만들기 운동, 2012년 총선에선 ‘청소년 없는 투표소 습격 전국 1인시위’가 벌어졌다. 2017년엔 청소년 참정권을 목표로 하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설립됐고, 결국 2년여의 노력으로 18살 선거권 성과를 이뤘다.

2019년 12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우리끼리 축하파티’에 모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 30여명이 케이크를 놓고 자축하고 있다. 김미향 기자
2019년 12월31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우리끼리 축하파티’에 모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 30여명이 케이크를 놓고 자축하고 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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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더디 온 ‘그날’

‘18살 선거권’ 운동을 했던 누군가는 40대 아버지, 누군가는 30대 현업 정치인이 됐다. 현장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는 20대 활동가도 있다. 그토록 바라온 ‘18살 선거권’이 현실이 된 지난 2일, 우리나라의 청소년 참정권 역사에서 주된 역할을 한 다섯명이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모였다. 그 주인공은 2002년 대선 때 청소년이 참여하는 첫 거리투표를 진행한 박준표(40) 오디디이코리아 대표, 2004년 선거권 하향 전국 입법청원을 추진한 김종민(34) ‘청년전태일’ 대표(민중당 동대문구을 예비후보)와 신정현(39)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 2012년 총선 때 ‘청소년 없는 투표소 습격’ 1인시위를 벌인 유남규(27)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국회 앞 43일간 농성을 벌인 이은선(20)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전 공동대표다.

“이게 진짜 된 건가? 진짜인가? 27일 국회 생중계를 보는데,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한 2~3분 멍 때리다가 빨리 공유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단체 단톡방에 알렸다.”(유남규)

“그동안 우리를 무시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지금 너 누구한테 선동당해서 그런 거냐’는 말을 들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교장 선생님은 저보고 ‘정치인 총알받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했던 법이 통과되니 너무 통쾌하더라. ‘자, 봤지?’ 이런 심정이었다.”(이은선)

이들에게 2019년 12월27일은 너무 더디 온 그날이었다. 이은선 전 대표와 유남규 집행위원장은 2017년부터 단체를 꾸리고 행동을 시작했다. 19살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준 현행 공직선거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고, ‘18살 선거권 하향’을 찬성하는 국회의원실 앞에 모범의원 현판 달기, 자유한국당 기습시위, 43일간 국회 앞 천막농성과 삭발식도 했다.

이들의 활동을 지켜봐온 30대 두 명도 이날 감격에 젖었다. 2004년 꾸린 ‘18살 선거권 낮추기 공동연대’ 대표였던 김종민 대표와 신정현 의원이다. 16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은 현역 30대 정치인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당시엔 청소년 운동을 하는 대학생이었다. 당시 이 단체는 전국 50여개 청소년단체의 연대서명과 2000명의 청원서, 과반 국회의원의 지지서명을 받아 선거연령 18살 인하를 요구하는 입법청원을 했다. 당시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의 당론이 됐지만, 한나라당의 거센 반대로 2005년 선거연령은 20살에서 19살로 내려가는 데 그쳤다. 입법청원 대표자였던 신정현 의원은 “우리는 실패라며 좌절했다. 그때 한 선배가 찾아와 ‘10년 후 미래의 청소년들이 18살로 만들어줄 거야. 그때 우리가 힘이 되어주자’고 했다. 그런데 15년 뒤 그게 현실이 됐다. 우리의 운동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걸 역사가 증명했다”고 감탄했다. 이들은 2016년 청소년이 대거 참여한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인식이 전환됐다고 봤다. 김종민 대표는 “선거연령이 20살에서 19살로 낮아진 2005년에도 청소년들이 사회참여를 활발하게 한 몇몇 이슈가 있었다. 이후 2008년 광우병, 2016년 촛불시위 등에서 청소년이 활발히 목소리를 내면서 18살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다. 그 맥락에서 이번 법안이 통과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청소년들의 정치사회적 행동이 각각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큰 흐름이 되어 오늘의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18살 선거권’ 획득을 위해 싸워온 이들에겐 고통의 순간도 많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청소년 없는 투표소 습격 1인시위’에 참여한 유남규 위원장은 “2012년 우리가 기획한 1인시위가 생각보다 많은 주목을 받는 걸 보면서 한 2015년쯤 되면 법적으로도 선거연령이 내려가지 않겠나 생각했다. 이 여세를 잘 몰아가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결국 2019년 말에야 법이 통과되면서 중간중간 좌절감이 컸다”고 했다. 특히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법안 통과가 번번이 좌절됐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제18대 대통령과 서울시교육감 등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 2012년 12월19일 서울 중랑구 장안중 투표소 앞에서 유남규(19)씨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제18대 대통령과 서울시교육감 등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 2012년 12월19일 서울 중랑구 장안중 투표소 앞에서 유남규(19)씨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0년 교육감 선거 때 청소년 후보를 내자는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 0번 청소년\' 프로젝트의 포스터.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선거운동본부’ 누리집 갈무리
2010년 교육감 선거 때 청소년 후보를 내자는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 0번 청소년\' 프로젝트의 포스터.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선거운동본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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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사이 ‘격세지감’

그래도 이날 모인 이들은 다음 세대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줬다는 기쁨에 설레었다. 새해 마흔살이 된 박준표 대표는 지난 27일 집에서 국회 생중계를 보다 옆에 앉아 있던 다섯살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두발자유운동을 했다. 지금은 아이티(IT) 업체에서 일하며 이젠 40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지만 10대 참정권 운동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 대표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좀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 청소년들은 차비조차 귀했다. 이동권이 제한돼 있었다. 인터넷에 온라인 모임이 시작된 초창기였다. 기성세대들이 이 온라인 공간에 접근하는 방법을 몰라서 없앨 생각도 못했다. 이동 비용을 낮추고 대화할 온라인 공간이 꾸려진 게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시작이다.”(박준표)

“아, 거참, 너무 옛날 사람처럼 이야기하지 말아라. 기성세대 같다.”(신정현)

다 같이 빵 터졌다. 199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 대표는 “당시는 ‘청소년 인권’이란 말이 아주 신선하게 느껴질 때였다. 교실에서 ‘인간은 천부인권이 있다’는 사회 교과서 구절에 밑줄을 치고 있으면, 선도부 교사가 들어와 머리채를 잡고 깎았던 시절이다. 부모님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 ‘네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막 이랬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청소년 참정권이 사회적 메시지에 불과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실제 입법운동은 상상도 못했고 주로 공연과 퍼포먼스로 이슈를 제기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청소년들이 광장에 나와 발언한다.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사회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상대로 운동의 명분 그대로 얘기할 수가 없었다. 반대진영에선 ‘선거연령을 낮추면 교실이 정치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설득을 위해 타협적인 논리를 펼 수밖에 없었다. 신 의원은 “‘학교가 정치판이 되는 게 무슨 문제냐’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8살에게 선거권 줘도 선거권 갖는 고등학생의 숫자가 미미해 학교가 소란스럽지 않다, 적은 숫자에 큰 의미 없으니 그냥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말해야 의원들이 설득될 정도였다”고 15년 전 상황을 전했다. “‘학교가 정치판이 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고 신 의원은 말했다.

2004년 8월5일 청소년 20여명이 서울 영등포구 열린우리당 당사를 찾아 ‘총선에서 공약한 만 18살 선거권을 보장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04년 8월5일 청소년 20여명이 서울 영등포구 열린우리당 당사를 찾아 ‘총선에서 공약한 만 18살 선거권을 보장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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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선거권 나이도 낮아져야

이날 모인 이들은 마냥 기뻐할 때만은 아니라고 했다. 선거권은 가장 소극적인 정치 권한일 뿐 남은 과제가 산적해서다. 선거연령은 18살보다 더 낮아져야 하고, 25살부터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도 선거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교육정책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현재는 교육감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 이은선 전 대표는 “선거에서 연령제한을 두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며 “본인이 선거인 명부를 작성할 수 있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하며 이들이 마주했던 가장 큰 산은 반대진영 정치인도, 교사들도, 부모도 아니었다. 바로 10대 당사자들이었다. 신정현 의원이 2000년대 중반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했을 때 ‘우린 선거권 갖기에 아직 어려요’라는 말하는 청소년들이 상당했다. 하지만 15년여가 지난 지금 신 의원은 “지금 청소년들은 스스로 참정권을 얻는 것에 부담감이 적고, 오히려 스스로 간절히 원한다. 지난 세월은 당사자 스스로가 성숙해진 시간이었다”고 되짚었다.

이은선 전 대표도 “아직도 학교에 가면 ‘내가 미성숙하니 제대로 투표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선거는 성숙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조건부 권리가 아니다. 시민 누구나 갖는 기본권이다. 차라리 미성숙하니까 더 힘을 갖기 위해 투표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낫다. 그게 많은 사람들을 정치적 주체로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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