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오전 10시께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됐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 입구에서 765㎸ 초고압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농성을 하던 주민 10여명은 잔뜩 긴장했다. 길바닥에서 식사하던 노인들이 공사 현장을 오가는 차량 이동에 방해가 된다고 경찰은 진압의 이유를 밝혔다. 경찰 병력 300여명이 이미 주변을 통제하고 있던 터였다. 주민 중 절반 이상은 할머니였다. 여경 60여명은 인근 공터에서 ‘예행연습’도 했다. 주민들은 자신을 끌어내려고 경찰이 ‘합’을 맞추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할머니마다 여경 6명과 남성 경찰 1명이 붙었다. 남성 경찰 1명은 할머니의 다리를 붙잡았다. 할머니들은 붙들린 채 두려움에 떨었다. 주민들은 차례로 경찰이 예행연습을 하던 공터까지 30여m를 들려 갔다.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지난 2일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인권침해감시단(감시단) 소속 활동가인 오진호(29)씨는 “할머니들이지만 그래도 다리 힘이 가장 세기 때문에 남성 경찰이 다리를 잡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때 또다른 활동가 미류(가명·여)씨는 자신의 몸으로 한 할머니의 몸을 포갰다. 미류씨는 공사가 재개된 다음날인 3일 밀양으로 내려왔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곧바로 연행된 뒤 구속영장이 기각돼 풀려났다. 미류씨가 감싼 할머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경찰들에게 고함치며 온몸을 버둥거렸다. 미류씨는 경찰을 향해 “한발만 물러서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뜻에 반해 경찰들에게 사지를 붙들린 할머니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감시단의 무기는 시간대별 상황이 꼼꼼히 적힌 수첩과 기록용 카메라다. 이들의 목표는 주민을 향한 공권력 행사를 ‘시선의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실태는 보고서 형태로 ‘인권운동사랑방’(sarangbang.or.kr)과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누리집(my765kvout.tistory.com)을 통해 매일 공개된다. 때에 따라 동영상도 활용한다. 몸싸움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래서 자주 답답하다.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어야 해서다. 활동가 두인(가명·남)씨는 “감시단이 주민과 너무 밀착되면 보고서의 객관성이 떨어지지만 어르신들이 들려 가는 장면을 보면 차라리 같이 싸우다 잡혀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16일치 보고서는 상세한 진압 과정과 함께 “경찰은 한전(한국전력공사)의 편의를 위해 주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실신 등 사고 발생 위험이 매우 높다. 물리적 공권력의 남용은 밀양 주민들의 삶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고 적었다.
인권침해의 현장에서 ‘2차 인권침해’는 경계의 대상이다. 한 할머니의 웃옷이 진압 과정에서 벗겨진 일도 있었다. 그 자체로 커다란 인권침해였다. 감시단은 이 장면을 촬영해 공개했다. 활동가 기선씨는 “동영상에서 얼굴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것이 할머니에게 수치심을 강요할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당사자의 양해를 구한 뒤 그대로 영상을 내보냈다”고 전했다.
공사 재개 직후 경찰은 음식물과 의료진의 통행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산길을 겹겹이 막은 경찰을 피해 주민들은 새벽마다 비탈을 탔다. 미류씨가 연행된 것은 125·126번 송전탑 현장에 이르는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벌어진 경찰과 주민들의 몸싸움 과정에서였다. 당시는 주민들의 옷과 음식도 농성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음식물과 의료진의 통행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재가 있었던 7일 이후에야 허용됐다. 미류씨는 “사태 초반에는 인권이라는 말을 하기도 부끄러운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인권침해는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심각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사진으로 채증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존재는 주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다. 오진호씨는 “수백, 수천명의 경찰이 밀양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 자체가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에게는 숨 막히는 협박이고 인권침해다. 경찰은 물리력을 행사하기 전에 제대로 경고방송도 하지 않는다. ‘어떠어떠한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으므로 해산하라’는 것이 아니라 ‘들어내겠다, 끌어내겠다’는 표현을 동원하는 식이다. 주민들은 엄청나게 위축되어 있다”고 말했다.
강제 진압보다 주민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절망감이다. 오진호씨는 “주민들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경찰에 대항해서 공사를 막아낸다든지 저지선을 뚫고 현장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다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새벽부터 공사장 앞을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주민들은 자신의 몸에 쇠사슬을 묶거나 공사장 앞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누웠다. 그리고 번번이 경찰의 물리력에 무릎을 꿇었다. 미류씨는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인권침해다. 게다가 사태 이후 일부 언론은 계속해서 외부세력 운운하고 있다. 이렇게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다 보니 주민들은 ‘이 나라가 나를 버렸다’는 절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 ‘인권’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주민들은 인권침해감시단이라는 문구가 적힌 연두색 조끼를 입고 현장을 누비는 감시단의 존재가 일종의 방패막이라는 것을 경험 속에서 깨닫는다고 했다. 한 주민은 “색깔이 똑같아가, 경찰인 줄 알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진호씨는 “감시단이나 희망버스를 타고 온 시민들, 취재진의 눈이 없을 때를 틈타 경찰이나 한전 직원이 주민들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거나 진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현장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장면 동화전마을 주민인 박아무개(60·여)씨는 “우리가 경찰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노. 저런 사람들(감시단)도 있구나 하는 걸 이번에 알았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용해마을 주민 최아무개(78·여)씨가 되물었다. “우리가 싸우기 전에는 인권이라는 말을 우째 들어봤겠노? 그냥 농사나 짓고 이웃끼리 오손도손 살면 그만이었지….”
송호균 기자, 밀양/박수지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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