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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한 부대 동원과장으로 근무하던 김아무개 소령은 경찰 등 다른 기관들과의 회의 뒤 같은 차를 타고 오던 연대장에게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김 소령은 부대에서 16㎞ 떨어진 자신의 집 근처 o식당으로 장소를 정했고, 퇴근했던 후배 두 사람을 더 불렀다. 후배들은 자동차를 몰고 왔고, 자신은 집에 들렀다가 걸어서 식당으로 왔다. 두 시간 반 남짓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은 뒤, 대리기사를 불러 8㎞ 떨어진 ㄷ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 1시30분까지 3시간40분가량 술을 더 마셨다. 1·2차 술값은 모두 김 소령이 카드로 결제했다. 연대장을 집으로 보낸 뒤 방향이 같은 후배의 차를 운전할 대리기사를 불렀지만, 늦게 온 데다 값을 비싸게 부른다는 이유로 대리기사와 싸우고 되돌려보냈다. 김 소령은 후배가 화장실에 간 사이 혼자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김아무개 소령’뿐 아니라 ‘회사원 김씨’도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갑작스런 ‘번개’ 모임도 잦기 마련이다. 그런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던 김 소령은 새벽 2시10분께 취한 채 빗길을 걷다 지나던 화물차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김 소령의 부인 한아무개(45)씨가 청주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등록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김 소령의 경우처럼 개인이 자발적·즉흥적으로 제안한 회식, 즉 ‘번개’는 업무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런 모임 뒤 귀가하다 사고로 사망해도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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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도중이나 회식 뒤 귀갓길에 사고를 당해 장해를 입거나 사망했을 때는 대체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 2차 회식 뒤 일어난 사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군·경의 경우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경우에는 국가유공자로 등록된다. 국가유공자 등의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은 ‘순리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의 사고나 재해’ 또는 ‘소속 상관이 지휘한 단체 행동 중의 사고나 재해’로 인한 사망과 부상은 직무수행 중 또는 공무로 인한 것으로 본다. 대신 자해행위, 공무 이탈 상태에서의 재해, 사적 행위가 원인이 된 재해는 여기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김 소령의 경우와 같은 ‘번개’ 모임은 공식 회식이 아니라 ‘친목 도모를 위한 사적인 모임’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소령이 먼저 연대장에게 제의해 즉흥적으로 회식이 이뤄졌고 △업무수행을 목적으로 연대장 주관하에 이뤄지는 통상의 회식과는 참석자나 강제성 여부 등에서 다르고 △1·2차 회식 모두 김 소령이 개인적으로 비용을 지급했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사건 회식을 소속 부대장의 지휘하에 공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이루어진 단체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김 소령이 일단 집으로 퇴근한 시점에서 퇴근행위는 종료한 것”이라며 “그 이후 이 사건 회식에 참석했다가 귀가중 사고를 당했다면 ‘퇴근을 위한 순리적인 경로’를 이미 벗어나 ‘사적인 행위’ 중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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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이런 원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앞서 “퇴근 중 사고가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으려면 근무장소와 주거지 사이를 순리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퇴근을 하던 중에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며 “사적인 행위 중에 발생한 사고로 사망한 경우까지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 소령은 지난 2009년 2월 지역통합방위 회의에 참석한 뒤 동료와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에 김 소령의 부인 한씨가 청주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유족등록 신청을 냈지만, ‘단체행동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고, 사고는 본인 중과실’이라는 등의 이유로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소속 상관의 지휘 아래 공무와 관련 있는 단체행동”이라는 등의 이유로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으나, 2심에선 이를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