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열흘동안 4만7천명 투입
8일 오전 11시께, 서울 성동구 경일고등학교 졸업식장은 학업을 마친 학생들과 이를 축하해주러 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입춘이 지나 날씨는 따뜻했고, 눈이 다 녹은 학교 안 벚나무 가지는 햇볕에 도드라졌다. 어느새 짧아진 갈색 교복 바지를 입은 졸업생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에 들어섰다.
교문에서 졸업생들을 맞은 건 ‘학생주임 선생님’이 아니라 낯선 ‘경찰’이었다. 교문 앞에는 정복 차림의 의경 2명이 배치됐고, 또다른 의경들은 2인1조로 학교 안을 돌며 학생들의 동태를 살폈다. 의경들은 “옷을 찢거나 밀가루를 뿌리는 ‘졸업빵’을 단속하라고 지시받았다”고 전했다. 경찰차 한 대가 학교 안을 돌고, 경찰이 학생들에게 뒤풀이 장소를 묻기도 했다. 이날 학교에는 성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소속 경찰관 3명과 서울숲지구대 소속 경찰관 10명, 의경 8명 등 모두 20여명이 배치됐다.
이 학교뿐 아니라 전국의 중·고등학교 졸업식 풍경이 이처럼 달라졌다. 본격적인 졸업 시즌에 맞춰 경찰과 교육과학기술부가 잘못된 졸업식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대대적인 ‘선도 활동’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31일 “졸업 시즌인 2월8~17일 열흘 동안 4만7천여명을 동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최근의 졸업식 행태는 잘못된 문화이므로 대책을 적극 강구할 것”이라는 ‘대통령 지시사항’이 담긴 공문을 각급 학교에 내려보냈다.
이날 졸업식이 열린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기상업고등학교에는 종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과 강력계장, 정보과 형사, 파출소장 등이 참석했고, 정복 차림의 의경 6명이 학교 안을 순찰했다. 지난달 28일 졸업식을 치른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신일중·고등학교에도 경찰관·의경 26명과 순찰차 4대가 배치됐다. ‘교복 찢기’를 막겠다는 학교 방침에 따라 모든 졸업생들은 정장 차림으로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날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소지품 검사를 하려는 경찰과 교사, 학생들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졸업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경찰이 있어 안심이 된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학교 안에 배치된 경찰을 보고 불쾌함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경복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순찰중인 경찰들의 무전 소리를 듣고 일부 학부모가 “무슨 데모 현장이냐”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부모 천성민(48)씨는 “아이들이 사고를 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학교 안에 들어오니 보기에 좋지 않다”며 “아이들을 범죄자로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도봉구 정의여중 학부모 전현태(44)씨는 “(알몸 뒤풀이 등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고 아이들 스스로 판단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경찰이) 그렇게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요 졸업식 사건·사고가 서울 1건, 경기 2건 등 모두 5건에 불과해 경찰의 대응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일부 학교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문제 삼아 전체 학교에 경찰을 배치하는 것은 과도한 조처”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졸업식장 지도는 교육청에서 할 일이지 경찰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졸업식 때마다 당직을 빼고는 모두 학교로 이동하는 바람에 업무 부담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졸업식 단속은 17일까지 계속된다.
박보미 박태우 이유진 김지훈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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