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검색하다 1994년의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대해 쓴 글을 보았다. 많은 화제꺼리를 남긴 영화, 드라마가 쏟아졌고 이에 따라 소위 뜬 스타들도 적지 않았다.
1994년에 난 괌 건설현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14년 전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에 전쟁이 난다’는 소식이었다. 괌에 있어서 당시 그런 이야기가 나온 한국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전쟁이 난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무튼 전쟁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 되었는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김일성 사망’소식이 날아들었다. 어린 시절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수라고 배운 그 김일성도 세월의 무게는 이기지를 못한 것이다. 이후 전쟁이야기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날씨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다.
그 해 여름은 무척 더웠나 보다.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덥다는 이야기를 매일 들었고, 비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최고기온은 기상대 관측 사상 기록이고, 가뭄도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난데없이 성수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리 상판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러한 경우를 본 적도 없고 건축지식이 없던 나(건설현장의 관리직이었음)로서는 이틀 뒤 배달된 신문(당시에는 ‘정보의 바다’가 없었음)을 보고서야 그 참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묻지마 살인의 시초격인 지존파 소식도 들려왔다. 이렇게 한국의 1994년은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한 해였다.
이렇게 무거운 사회적인 분위기에 반해 대중문화에는 화제가 만발했다. 다방면에서 인기 있는 작품과 인기스타의 탄생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TV 드라마를 보자.
1994년 연예계 최고 화제는 단연 심은하의 탄생을 꼽을 수 있다.
심은하는 장동건, 손지창과 함께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농구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여주인공 다슬이로 출연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0년의 최진실 신드롬을 단숨에 이어받은 것이다. 심은하는 이 드라마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M'이라는 쓰릴러 드라마에 첫 단독주연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이어가게 된다. 장동건도 ’우리들의 천국‘에 이어 ’마지막 승부‘의 인기를 바탕으로 본격 브라운관의 최고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다음으로 한석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 MBC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후반부에 주인공 최수종의 대학친구로 잠깐 얼굴을 비친 한석규는 멋진 목소리와 차분한 연기로 호평을 받는다. 곧이어 역시 최수종과 ‘파일럿’에 준주연급으로 출연하여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최민식, 채시라와 함께 출연한 ‘서울의 달’에서 미워할 수 없는 건달로 나와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넘버3, 초록물고기, 쉬리 등이 대박을 터뜨리며 그는 일약 한국 최고의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그 해 ‘마지막 승부’에 이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가 몇 편 더 있다.
다루기 어려운 소재로 여겨졌던 병원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종합병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여기에서 중성적인 매력을 발산한 신은경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가죽점퍼, 오토바이, 색소폰으로 상징되는 ‘백마 탄 왕자’ 신드롬을 일으킨 차인표가 등장한다. 그는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작품에서 신애라와 같이 출연해 평생 반려자의 관계를 맺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4년의 한국영화계에서는 대작이 없었다. 그 와중에 투자사들이 한국영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도록 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고소영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구미호’다. 내용이나 흥행면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으나 사람얼굴에서 구미호로 변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특수효과기술을 구사함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이는 공중파 9시 뉴스에 나올 정도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그리고 엉덩이가 이쁜 여자인 정선경이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데뷔하였다.
반면 할리우드 영화는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대작이 많이 나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가 그 해 나왔다. Running time(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을 넘고 흑백으로 촬영한 필름에다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주었지만 감동적인 내용으로 국내외의 호평 속에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았다. 그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작품상 등 7개부문을 수상하는 당연한(?)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톰 행크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2년 연속 수상케 한 ‘포레스트 검프’가 이 해 나왔다. 케네디와 닉슨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 등 과거의 역사적인 현장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작품성과 톰 행크스의 명연기로 큰 인기를 모았다.
또 우리에게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을 소개한 ‘스피드’가 나와 1994년의 영화계를 풍성하게 했고, 영화보다 비디오 시장에서 매니아층을 형성한 짐 캐리도 ‘마스크’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미국 역대 최고수입을 올린 ‘라이언 킹’이 나왔다. 스토리가 탄탄한 권선징악의 내용에다 세계적인 팝가수 엘튼 존이 부른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Circle of life' 그리고 ’The lion sleeps tonight' 등 뛰어난 삽입곡 덕분으로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그 결과 한국에서 최다 관객을 동원한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쉬운 대화들이 많아 영어공부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교재였다. 그래서 난 아이들과 수십 번을 보았고 아직까지 그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작품성이 뛰어난 곡과 신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실력 있는 신인들의 활동이 계속 이어지지 못해 못내 아쉽다.
팝으로는 셀린 디온의 ‘The power of love'를 괌에서 지겹도록 들은 기억이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1993년에 앨범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오히려 1994년에 더 인기를 끌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렇게 1994년의 한국사회는 우리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블로그] 1994년의 기억
- 수정 2008-10-30 15:02
전쟁발발 소문, 김일성의 죽음으로 막 내리고
뜨거운 여름만큼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드라마, 영화 그리고 스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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