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심 판결까지만 5년 걸린 아동학대 사건이 있다. 재판 내내 주목받지 못했고 선고 결과는 기사 한줄 나지 않았다. 아동학대는 드물지 않지만 ‘소년’이 자라 ‘우리’가 되기까지 한국 사회 난제들이 이토록 집약된 사건도 드물다. 아동의 몸을 노린 ‘불의한 정치’와 양육에 이식된 ‘수용’의 유전자, 학교와 낙인, 소년재판 시스템과 자립 지원의 사각, 가해와 피해를 보는 시선 등이 ‘판결문 밖’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당 사건과 현재 시설 거주 아동들은 무관함을 밝힙니다.)

“입사(2015년 5월) 면접 당시 피고 양기태(가명)는 ‘요한반 아이들은 문제가 많으므로 해병대 출신인 피고가 강하게 지도해달라’는 말을 (사용자인 마리아수녀회로부터) 들었다고 하는데, 혹시 들은 적 있는가요?”
요한반 보육사 양기태(2017년 2월 대기발령)의 소송대리인이 2023년 7월 꿈나무마을 초록꿈터 당시 원장에게 물었다.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안종표(가명·24)·백진형(가명·24)·손영조(가명·25)의 아동학대 손해배상청구소송 증인신문 중 나온 질문이었다. 국내 최대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에서 아동·청소년기를 보낸 그들이 보육사 6명과 마리아수녀회를 상대로 2021년 제기한 소송이 만 2년을 채우고 있었다. 초록꿈터 원장이 답했다.
“들은 적 없습니다.”
피고 양기태의 대리인과 다른 피고 마리아수녀회 쪽 증인 간의 문답에서 몰랐던 사실과 쟁점이 확인됐다. 원고들이 “키 180㎝ 이상에 몸무게 100여㎏의 거구”로 기억하는 양기태가 해병대 출신이란 사실. 수녀회가 채용 과정에서 부탁했다는 아동 지도 방향과 학대의 인과 관계.
서울시로부터 꿈나무마을(☞1회 ‘양육에 이식된 수용’)을 위탁받아 운영(1975~2019년)한 마리아수녀회는 사춘기 청소년으로 자란 아동들의 양육에 어려움을 겪으며 문제아반(2015년 요한반과 2016년 마리요셉반)을 개설했다. 양기태와 마리요셉반 보육사 정규성(가명)의 아동 폭행과 학대는 각각 2017년 형사재판(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2016년 검찰 조사(기소유예)로 확정(☞2회 ‘밖이 알려준 것’)된 내용이었다. 수녀회가 가해 보육사들의 학대를 인지했는지, 알고도 묵인·방조했는지, 혹은 지도 방향을 제시하거나 암시했는지는 수녀회의 책임 범위를 가리는 중요 사안이었다. 대리인의 질문에 실린 양기태의 입장은 자신의 아동학대가 사용자의 요청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수녀회는 부인했다. “양기태에게 아동 폭행을 지시하거나 폭력을 방조한 적이 없”으며, 그의 폭행을 알게 된 2017년 2월 “즉시 아동과 분리하고 신고 조치했다”(재판 서면)고 밝혔다. “정규성을 바로 신고·해고하지 않은 것은 정규성이 상습적으로 원고 손영조를 폭행한 것이 아니었”고 “손영조 외에 다른 아동들을 폭행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피고 ㅇ·ㅂ(진형이 9살일 때 생활반 보육사), ㅅ(종표의 8살 시절 보육사)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수녀회는 사회 통념상 용인 가능한 훈육의 수준을 넘어선 사실이 없다”고도 했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손해의 입증책임은 원고에게 있었다. 원고 대리인 박인숙 변호사는 법원을 통해 양기태와 정규성의 형사기록을 확보했다. 그들에 대한 시설의 징계기록과 아동양육일지, 서울시가 꿈나무마을을 조사한 보고서도 받아냈다. 원고들과 함께 생활했던 아동들과 시설 종사자들을 증인 신청해 신문했다. 그렇게 파악한 사실들을 토대로 피고들의 주장을 검증해나갔다.
양기태의 폭행은 2017년 2월보다 9개월 앞서 드러났다. 진형이 2016년 5월 학교 상담교사와 학교전담경찰관에게 피해를 알렸을 때 시설은 양기태에게 시말서만 받았다. 신고도 업무 배제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파악(2016년 9월)한 정규성의 폭행은 영조에게만 두달 사이 3차례였다. 그의 “범죄사실”엔 영조 외 두 아동이 당한 4차례와 1차례의 폭행도 포함돼 있었다.
“원고의 주장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였습니다.”
민법상 ‘소멸시효 완성’(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때)은 피고들의 공통된 소송 전략이었다. 양기태·정규성의 형사기록 탓에 학대를 부인하거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긴 쉽지 않았다. 피고들은 학대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청구권 소멸을 주장했다.
원고들은 반박했다. 15살 당시엔 자신들의 피해가 소송으로 다툴 수 있는 불법행위인지 알지 못했고, 알았다 해도 생활하고 있는 시설을 상대로 소송은 불가능했다고 맞섰다. 의료기관 심리검사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확인한 2021년 7월을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른·사회 향한 극도의 불신
“화병이란 게 정말 있구나.”
고등학생이 됐을 때 종표는 실감했다. “분노 조절이 안 됐”다. “나도 모르게 모든 순간에 화가 났고 화가 나면 때려 부숴야 했”다. 등굣길 복장을 지적하는 교장과 싸우던 중 학교를 뛰쳐나와 자퇴했다. 양기태에게 학대당하며 ‘잘못하면 맞아야 한다’고 내면화했던 종표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동생들이 보이면 내가 맞았던 것처럼 때렸”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일로 경찰 조사를 받고서야 ‘폭력은 나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버림받고 학대당한 시간으로 ‘짧은 평생’을 채운 아이들은 어른과 사회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분노를 껴안고 자랐다.
양기태의 요한반 생활 당시 진형은 “혼자 있을 때면 팔굽혀펴기를 100번씩 했”다. “몸을 키우면 덜 아플까 해서”였지만 “맞는 것보다 맞고 있는 상황이 더 무서웠”다. “누군가와 다투면 학대받으며 참았던 화가 상대에게 폭발”했다.
영조에게 “어렸을 때 맞은 건 성장해서 맞았을 때와 달랐”다. “저항하지 못하고 맞기만 했던 기억은 성인이 돼서도 흐려지지 않았”다. “바닥까지 떨어지는 슬픔과 갑자기 치솟는 분노”가 번갈아 그를 괴롭혔다.

2018년 자퇴 직후 종표의 정신건강의학과 심리평가 보고서는 ‘우울성 행실 장애’를 진단했다.
“권위적 대상이 자신을 수용해주거나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여길 때 그에 따른 좌절되고 불편한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내적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것으로 보임.”
같은 의사가 4년 뒤 재평가한 보고서는 “모든 일이 파국이나 재앙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걱정이나 예상치 못한 사건이 갑자기 벌어져서 삶이 망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수면에도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적었다.
진형도 우울장애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2021년 7월)받았다. “스스로에 대해 불행감과 낮은 자신감”을 보이고 “타인에 대한 표상이 매우 부정적인바 쉽게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적대감과 경계심을 가진다”고 평가됐다.
영조에게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충동조절장애가 확인(2021년 7월)됐다.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관계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면서 애착 손상”을 입었고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외부를 경계하고 강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세다는 걸 알려줘야 나를 안 건드리니까.”
품어주고 지지해주는 어른이 없었던 그들은 “살아남으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진형)고 믿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뒤 후회가 밀어 올리는 기억 속 얼굴들에겐 혼잣말처럼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미안해요. 그때의 내가 못났던 거예요. 맞는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 아픔을 다른 아이를 때려서 풀려고 했어요. 보고 배운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종표)
“나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을 텐데 지금도 그때가 자주 생각나요. 언젠가 그 일로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나는 세상에 상처도 많지만 빚도 많아요. 갚으면서 살고 싶어요.”(영조)
보호 종료도 되기 전에 양육 체계 밖으로 던져진 아이들의 삶(☞3회 ‘소년심판’)은 성인이 돼서도 취약했다.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아 본 적 없는 그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환대한 것은 범죄였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해 일상을 세워가던 진형의 명의를 “인생의 낙도 희망도 없을 때 어울렸던 사람들”이 보이스피싱과 전세 사기에 이용했다. 진형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범죄로 갈취한 돈들을 넣고 뺐다. 진형의 개인정보로 대출을 받고 사업자를 등록해 세금을 물렸다. “그 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진형은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다.
전세·대출 사기와 보이스피싱은 자립준비청년들이 공통으로 겪는 피해였다. 사회 진입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그들의 자립정착금(자치단체별로 1천만~2천만원)도 사기 범죄의 표적이 됐다.
영조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자립정착금도 받지 못한 채 보호 종료(2020년)된 19살의 영조 앞에서 사회는 가차 없이 냉혹했다. 음식 배달과 건설 일용직 등으로 일하며 “절망”한 그에게 모종의 ‘스카우트 제안’(현재 논의 중인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범죄 노출을 오히려 높인다는 우려 제기)이 왔다. 발악하듯 자포자기하듯 ‘위험한 일들’에 자신을 방치했던 영조가 남은 의지를 끌어모아 뛰쳐나왔을 땐 한손으로 벼랑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로웠다.
‘우리’를 향한 반문
박인숙에게 “가장 약자는 유기된 아이들”이었다.
진형과 영조의 문제들이 돌출할 때마다 그가 법률 조력으로 상황 악화를 막았다. “보호자 없는 아이들은 아무도 관심 없고,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으며,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안 보이는 곳에 치워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그들한테 좋지 않은 모습이 보이면 “사회와 어른들은 기다려주는 대신 ‘어쩔 수 없는 애’라며 서둘러 낙인을 찍었”다.
“증인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15년 9월에 두차례에 걸쳐 (은평구) 신사동 인근의 마트에서 물건을 훔쳐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지요?”
2024년 6월 재판에서 마리아수녀회 대리인은 증인으로 출석한 F(마리요셉반에서 영조와 함께 생활)에게 물었다. 영조의 학대 피해 여부 입증과는 무관한 질문이었다.
수녀회 대리인은 법원에 원고들의 학교 선도위원회 기록과 소년재판 보호처분 기록 등도 요청했다. “시설 내 학대 행위를 은폐하고자 시도하거나 방조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자 한다”면서 원고들의 ‘과거’를 끌어들였다.
원고·증인의 ‘피해자다움’을 향한 공격은 대리인 선임 없이 스스로를 변론한 피고 정규성이 F에게 던진 질문에서도 되풀이됐다.
“저한테 맞았다고 하셨는데 혹시 맞은 이유를 기억하시나요? … 술 마시고 담배 피운 거는 기억나지 않나요? … 저한테 맞아서 가출을 했고 그 삶이 반복되다 보니까 시설에 있지 못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더 큰지 아니면 시설 내에서 일으킨 물의가 더 커서 통고(수사기관 거치지 않고 법원에 사건 접수)된 것인지?”
사회는 ‘착한 피해자’와 ‘나쁜 피해자’를 끊임없이 구분했다.
박인숙은 ‘왜 문제 많은 아이들을 돕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시설 규칙을 따르지 않는 문제아였든, 반항을 했든, 담배를 피웠든, 그 어떤 아이도 학대를 당해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 소송은 아동·소년 시기의 피해가 가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기보다 ‘피해자 자격’을 따지는 데 골몰해온 ‘우리’를 향한 반문이었다.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가 그 책임을 어린 가해자들에게 손쉽게 떠넘겨온 결과이기도 했다.
5년 동안 계속된 소송을 무료 변론으로 지탱하기란 쉽지 않았다. 박인숙의 도움 요청에 ‘순수 피해자’가 아니란 이유로 모두 난색을 표할 때 원고들의 피해를 봐주며 소송 지원에 나선 ‘엄마들’이 있었다. (5회 ‘자립의 조건’에서 계속)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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